아라비아의 로렌스 - 사막의 신(神)이었던 사나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MBC TV를 통해 일요일 오후 방영되던 젊은 MC 손석희 진행의 ‘퀴즈 명화여행’에서였습니다. 영화를 짤막하게 소개하며 게스트에게 영화의 장면을 맞히도록 하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서양인 남성이 아랍 전통 의상을 입고, 너무나 기뻐하며 단검을 뽑아 들어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는 이채로운 장면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명절 특선으로 TV에 방영되었을 때 처음 시청하였고, 1990년 후반 대한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바뀌기 전 고별상영전에서 필름으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와이드스크린 영화 특별전’을 통해 세 번째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관람했는데, 터키군의 철도를 파괴하는 중반부까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장면들은 처음 보는 영화처럼 새로웠습니다. 내러티브와는 무관하지만, 대한극장에서 10여 년 전 처음 관람했을 때에는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관람한 필름에는 휴식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휴식 시간의 유무 여부와는 반대로, TV로 시청했을 때와 대한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에는 삭제되어 있었던 서곡과 종곡의 존재도 이번 관람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좀처럼 졸지 않는 편이라, 졸았던 영화를 꼽아보는 것이 빠른데, 이전에 두 번 관람했을 때 졸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장면들은 꽤나 낯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20대 시절까지만 해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후반부 장면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 듯싶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전쟁 영웅의 행적을 선망하듯 뒤따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 부족들을 이끌고 터키군과 싸워 기적과 같은 전과를 거둔 사나이의 이야기이지만, 그 사나이는 자기애로 충만한 괴짜였고, 영국인과 아랍인 어느 쪽도 되지 못했으며,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을 넘어 결국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체스 판의 말에 불과했고, 영국과 아랍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용당한 후 용도폐기 됩니다. 로렌스의 광기는 순수함이 지나친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도로를 바이크로 질주하다 갑작스런 사고로 로렌스가 사망하는 오프닝은, 극중의 주된 시간적 배경과 20여 년 가까운 격차가 있기 때문에 내러티브와는 무관한, 뜬금없는 인상입니다. 하지만 210여 분의 러닝 타임 속에서 로렌스의 여정과 함께 하면, 왜 그렇게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광활한 사막은 시시각각 색다른 풍광을 제시하며 매혹하는데, 존재 의의와 같았던 짜릿한 공간인 사막을 떠나며,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황급히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입니다. 로렌스는 사막을 떠난 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취미로 폭주를 선택했다 사라진 것으로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210여 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랍의 사막을 떠나는 로렌스의 지프 앞으로 바이크가 추월하는 것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영화를 ‘촬영과 편집의 속임수 예술’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CG가 일반화된 현시점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제시하는 스펙타클은 그야말로 ‘진짜’, 아니 ‘생짜’로 규정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실존 인물인 로렌스가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해 성공했는데, 끝없는 사막의 모래바람, 그리고 더위와 싸우며 엄청난 인원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박력 넘치는 대작이자 걸작을 연출하는데 성공한 데이비드 린 감독을 또 한 명의 로렌스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피터 오툴과 오마 샤리프, 안소니 퀸, 그리고 알렉 기네스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과 같은 대배우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이성적이며 신뢰를 지켰던 로렌스의 친구 알리 역의 오마 샤리프와 탐욕스럽지만 직선적이어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우다 역의 안소니 퀸이, 로렌스 역의 피터 오툴과 삼자대면하는 첫 장면에서는 세 배우의 카리스마가 터질 듯 와이드스크린을 채웁니다. 우아하면서도 정치가답게 노회한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까지 더하면,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여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이를 먹으며 걸작을 재관람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미묘한 의미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두 번째 이 영화를 봤을 때, 최고의 장면은 이미 언급한 아랍 전통 의상을 처음 입고 기뻐하는 로렌스의 모습이라고 여겼는데, 어제 다시 관람하니 기차 위에 올라가 발밑으로 굽어보는 아랍인들에게 신처럼 추앙받으며 자족하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기회에 또 다시 필름으로 관람하게 되면, 손꼽는 명장면은 또 바뀌겠지만, 그보다 먼저 블루레이로 소장하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와이드스크린의 감동을 블루레이가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만.

콰이 강의 다리 - 전쟁의 집착과 광기를 차분히 조명한 걸작

by 디제 | 2009/11/09 09:12 | 영화 | 트랙백

용쟁호투 - 이소룡의 아우라, 드디어 필름으로 만나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브루스 리’가 아니라 ‘이소룡’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보다, 아시아권에 널리 통용된 중국식 예명을 사용해야 그의 진정한 아우라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유명세를 접하고 한참 뒤에야 ‘아니, 이소룡이 죽은 사람이었단 말야?’라고 사망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소룡이 죽었을 리 없어!’라며 그것을 마음속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요절하여 신화로 남은 사람은 불사조로 각인되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소룡입니다.

이소룡의 실질적인 유작 ‘용쟁호투’를 처음 본 것은 1980년대 MBC TV의 명절 특선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dvd를 구입해 이미 포스팅한 바 있지만, 아직껏 이소룡의 출연작을 필름으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극장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그의 괴성과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쌍절곤 묘기를 필름으로 접하고픈 소망이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아트시네마의 ‘와이드스크린 영화 특별전’을 통해 ‘용쟁호투’를 드디어 필름으로 만났습니다. 구 허리우드 극장인 서울아트시네마의 관람 환경은 이미 일반화된 멀티플렉스에 비해 낙후된 것이 사실입니다. 의자가 작고 불편한데, 앞좌석과의 간격이 좁고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어 앞좌석의 관람객이 허리를 곧추세우기라도 하면 스크린을 가립니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모처럼 꽃피기 시작한 예술 영화 붐이 IMF로 인해 소멸해 버린 아픈 경험을 회상하면,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입니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문화예술계 전반에 군사정권 시절과 같은 독재의 퇴행이 몰아치고 있어, 서울아트시네마 역시 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새로운 프로그램들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맞이해주는 것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와이드스크린 영화 특별전’을 통해 상영되고 있는 7편의 영화 중 ‘용쟁호투’는 가장 작품성이 처지는 영화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소룡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필름을 통해 스크린으로 뿜어져 나온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35년도 더 된 무협영화를 매끈한 멀티플렉스에서 관람하는 것은, 이미 신혼을 한참 지나 아이 엄마에 익숙해진 아내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옛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구수한 서울아트시네마야말로 ‘용쟁호투’의 완벽한 관람 환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의 아우라를 체험하기 위해 모인 다국적의 관람객들이 스크린을 지켜보는 가운데, 불로불사의 이소룡은 마음껏 쌍절곤을 휘두르고, 와이드스크린을 꽉 채우는 시원시원한 발차기로 불사조임을 과시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 문을 나서는 20대 초반의 여성 관객이 ‘이소룡, 뼈밖에 없어서 안쓰러워. 그래도 정말 멋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엿들으며, 그의 아우라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으며, 스크린 속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당산대형 - 이소룡 신화의 시작
정무문 - 쌍절곤으로 일본인들을 때려 눕히다
맹룡과강 - 중화 세계의 수호자 이소룡
용쟁호투 - 이소룡 주연의 블록버스터

by 디제 | 2009/11/08 09:34 | 영화 | 트랙백

요짐보 - 리메이크가 넘볼 수 없는 오리지널의 매력

※ 본 포스팅에는 ‘요짐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1964년 작 ‘황야의 무법자’와 월터 힐 감독,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1996년 작 ‘라스트맨 스탠딩’의 원작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61년 작 ‘요짐보’를 서울아트시네마의 ‘와이드스크린 영화 특별전’을 통해 드디어 필름으로 만났습니다.

줄거리는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산쥬로라는 가명을 쓰는 사무라이(미후네 도시로 분)가 두 폭력 집단이 판을 치는 마을에 들어가 양쪽을 넘나들며 모두 파멸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라스트맨 스탠딩’을 가장 먼저 접했고, ‘황야의 무법자’를 관람한 다음, 이번 기회에 ‘요짐보’를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화려한 액션으로 대변되는 헐리우드 웨스턴으로 거듭난 두 리메이크의 오리지널이기에, ‘요짐보’ 역시 활극의 요소로 가득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이 산쥬로가 활약하는 격투 장면은 세 장면 밖에 없으며,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고 할애된 시간도 짧습니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산쥬로의 격투 장면은 매우 속도감 넘치게 연출되어,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누가 어떻게 당한 것인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보면, 1대 다수의 격투 장면을 롱테이크로 매끄럽게 소화한 미후네 도시로의 액션 연기능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과 운명, 그리고 역사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라면 으레 떠오르는 요소들이 ‘요짐보’에서는 깨끗이 배재되어 있어, 완벽한 오락 영화라 할 수 있는데 현시점에서 보면 액션보다는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가뜩이나 공간적 배경이 작은 마을이라 연극적 느낌이 강하며, 등장인물들 또한 인간의 이기심을 고발한다기보다 마치 만화의 캐릭터들처럼 희극적인 개성을 발휘합니다.

양대 세력이 으르렁거리며 일촉즉발로 대립하는 순간, 높은 망루 위에서 굽어보며 즐기는 산쥬로의 모습은, 그가 견지하는 방관자적 입장을 대변하는 명장면으로, 리메이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모든 활극의 영웅적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그도 감금과 린치를 피할 수 없지만, 그 위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에서 산쥬로는 자신과 여유가 넘치는 남자다운 인물로, 미후네 도시로의 배우로서의 마초적 매력을 극대화하여 발산합니다.

두 편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에 비해 오리지널만의 압도적인 매력은 조연급 캐릭터들의 개성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황야의 무법자’와 ‘라스트맨 스탠딩’에서는 주인공과 라이벌 의 대립 구도 외에는 다른 조연급 캐릭터들이 평면적이었던 것과는 대별됩니다. 산쥬로의 최대 라이벌인 총잡이 우노스케(나카다이 타츠야 분)는, 광기와 예리함이 결합된 개성 넘치는 악역입니다. 우노스케의 권총에 맞서 산쥬로는 사무라이라면 결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기책인, 식칼로 격퇴합니다. 산쥬로의 식칼은 ‘황야의 무법자’의 조(클린트 이스트우드 분)에게 철판으로 계승된 바 있습니다. 우노스케의 형인 얼간이 이노키치로 분한 가토 다이스케의 우스꽝스런 표정 연기도 압권입니다. 가토 다이스케는 ‘7인의 사무라이’에서 축조술에 능한 시치로지로 출연한 바 있는데, 시치로지의 상관이자 7인의 사무라이의 리더였던 캄베이 역의 시무라 다카시가 입을 잔뜩 일그러뜨린 탐욕스런 양조업자 도쿠에몬으로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이처럼 강렬한 캐릭터들을 뒷받침하는 사토 마사루의 음악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무라이 활극의 전형적인 배경 음악인 일본의 전통 음악 스타일에 머무르지 않고, 흥겨운 재즈 풍으로 편곡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흑백 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화 전반에 독특한 리듬을 창조합니다.

라쇼몽 - 변덕과 욕망, 허위와 거짓
이키루 - 관료주의 vs 시한부 인생
7인의 사무라이 - 시민 계급의 등장
거미집의 성 - 배신으로 일어선 자, 배신으로 망하다
란(亂) - 셰익스피어와 불교적 세계관의 조우
란(亂) - 필름으로 만난 압도적인 걸작

by 디제 | 2009/11/07 08:31 | 영화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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