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9일
아라비아의 로렌스 - 사막의 신(神)이었던 사나이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후반 MBC TV를 통해 일요일 오후 방영되던 젊은 MC 손석희 진행의 ‘퀴즈 명화여행’에서였습니다. 영화를 짤막하게 소개하며 게스트에게 영화의 장면을 맞히도록 하는 퀴즈 프로그램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소개되었던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서양인 남성이 아랍 전통 의상을 입고, 너무나 기뻐하며 단검을 뽑아 들어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추는 이채로운 장면에, 기회가 되면 반드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명절 특선으로 TV에 방영되었을 때 처음 시청하였고, 1990년 후반 대한극장이 멀티플렉스로 바뀌기 전 고별상영전에서 필름으로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와이드스크린 영화 특별전’을 통해 세 번째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관람했는데, 터키군의 철도를 파괴하는 중반부까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이후의 장면들은 처음 보는 영화처럼 새로웠습니다. 내러티브와는 무관하지만, 대한극장에서 10여 년 전 처음 관람했을 때에는 중간에 휴식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오늘 관람한 필름에는 휴식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휴식 시간의 유무 여부와는 반대로, TV로 시청했을 때와 대한극장에서 관람했을 때에는 삭제되어 있었던 서곡과 종곡의 존재도 이번 관람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좀처럼 졸지 않는 편이라, 졸았던 영화를 꼽아보는 것이 빠른데, 이전에 두 번 관람했을 때 졸았던 기억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장면들은 꽤나 낯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20대 시절까지만 해도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후반부 장면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인 듯싶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전쟁 영웅의 행적을 선망하듯 뒤따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랍 부족들을 이끌고 터키군과 싸워 기적과 같은 전과를 거둔 사나이의 이야기이지만, 그 사나이는 자기애로 충만한 괴짜였고, 영국인과 아랍인 어느 쪽도 되지 못했으며, 자신감이 지나쳐 자만을 넘어 결국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체스 판의 말에 불과했고, 영국과 아랍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용당한 후 용도폐기 됩니다. 로렌스의 광기는 순수함이 지나친 결과물이었던 것입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한적한 시골 마을의 도로를 바이크로 질주하다 갑작스런 사고로 로렌스가 사망하는 오프닝은, 극중의 주된 시간적 배경과 20여 년 가까운 격차가 있기 때문에 내러티브와는 무관한, 뜬금없는 인상입니다. 하지만 210여 분의 러닝 타임 속에서 로렌스의 여정과 함께 하면, 왜 그렇게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광활한 사막은 시시각각 색다른 풍광을 제시하며 매혹하는데, 존재 의의와 같았던 짜릿한 공간인 사막을 떠나며,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황급히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 때문입니다. 로렌스는 사막을 떠난 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취미로 폭주를 선택했다 사라진 것으로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압도적인 210여 분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아랍의 사막을 떠나는 로렌스의 지프 앞으로 바이크가 추월하는 것도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흔히 영화를 ‘촬영과 편집의 속임수 예술’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CG가 일반화된 현시점에서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제시하는 스펙타클은 그야말로 ‘진짜’, 아니 ‘생짜’로 규정하는 편이 어울릴 정도입니다. 실존 인물인 로렌스가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해 성공했는데, 끝없는 사막의 모래바람, 그리고 더위와 싸우며 엄청난 인원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박력 넘치는 대작이자 걸작을 연출하는데 성공한 데이비드 린 감독을 또 한 명의 로렌스라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피터 오툴과 오마 샤리프, 안소니 퀸, 그리고 알렉 기네스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거인과 같은 대배우들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입니다. 이성적이며 신뢰를 지켰던 로렌스의 친구 알리 역의 오마 샤리프와 탐욕스럽지만 직선적이어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우다 역의 안소니 퀸이, 로렌스 역의 피터 오툴과 삼자대면하는 첫 장면에서는 세 배우의 카리스마가 터질 듯 와이드스크린을 채웁니다. 우아하면서도 정치가답게 노회한 파이잘 왕자 역의 알렉 기네스까지 더하면,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여배우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나이를 먹으며 걸작을 재관람하는 것은 매우 매력적인 일입니다. 이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미묘한 의미들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10여 년 두 번째 이 영화를 봤을 때, 최고의 장면은 이미 언급한 아랍 전통 의상을 처음 입고 기뻐하는 로렌스의 모습이라고 여겼는데, 어제 다시 관람하니 기차 위에 올라가 발밑으로 굽어보는 아랍인들에게 신처럼 추앙받으며 자족하는 장면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기회에 또 다시 필름으로 관람하게 되면, 손꼽는 명장면은 또 바뀌겠지만, 그보다 먼저 블루레이로 소장하는 편이 빠를 것 같습니다. 와이드스크린의 감동을 블루레이가 대신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만.
콰이 강의 다리 - 전쟁의 집착과 광기를 차분히 조명한 걸작
# by | 2009/11/09 09:12 | 영화 | 트랙백



그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브루스 리’가 아니라 ‘이소룡’이라고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보다, 아시아권에 널리 통용된 중국식 예명을 사용해야 그의 진정한 아우라를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망했지만, 그의 유명세를 접하고 한참 뒤에야 ‘아니, 이소룡이 죽은 사람이었단 말야?’라고 사망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소룡이 죽었을 리 없어!’라며 그것을 마음속으로 인정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요절하여 신화로 남은 사람은 불사조로 각인되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소룡입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1964년 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