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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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이터 - 두 번째 감상 영화

케이프 피어 - 가학이 주는 쾌감
에비에이터 - 속내를 들킨 것 같은 작품

같은 영화를 두 번 보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을 것입니다.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소수의 사람 중 그것도 극장에서 두 번 보는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입니다. 이글루에는 한 작품을 극장에서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들이 비교적 흔한 편이고 그렇지 않다해도 그런 사람들을 이해해주는 분위기이지만 직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뭐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그런 건 극장 갈 필요 없이 다운받아 보면 되잖아’라는 핀잔과 함께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시선을 받기 십상입니다. 한 달에 극장에만 열 번을 간다거나 dvd도 몇 장이나 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수집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결코 직장에서는 털어 놓지 않습니다. 따라서 제게 있어 이글루의 필요성이 다시 한 번 증명되는 것입니다.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이유는 책을 두 번 이상 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반적으로 책을 처음 읽으면 전체적인 흐름이나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문체나 사소한 장치들까지 신경쓰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세부적인 요소들은 두 번 이상 읽을 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죠. 회화나 조각과 같은 예술 작품도 한 번만 보고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듯이 예술 작품은 반복 감상할수록 그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에비에이터’를 다시 한 번 보면서 저는 행복했습니다. 줄거리를 허겁지겁 쫓아가며 불쑥불쑥 등장하는 초호화 캐스팅에 놀라지 않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와 배우들의 연기, 사소한 극적 장치, 하워드 쇼어의 웅장한 주제 음악 등을 차분히 음미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분한 주인공 하워드 휴즈가 저와 비슷하다는 면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의 상황이 제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어도 캐릭터가 저와 닮았다고 느낀 것은 난생 처음이었습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전기와 OST도 구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외에도 재즈가 울려 펴지는 낭만적인 20세기 초중반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 비행기, 그것도 프로펠러기가 주름잡는 영화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청문회 장면에서는 ‘대부2’나 ‘래리 플린트’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169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다는 평이 일반적입니다만 재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영화가 그렇게 허술하고 만만하게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기 시작한 하워드 휴즈는 비행기 공장을 청소하는 노인이 자신을 바라본다는 이유만으로 해고하라고 명령하는데 이 장면에서 방안에 틀어박혀 면도도 하지 않은 채 같은 말을 반복하며 중얼거리는 훗날의 장면이 몇 초 정도 삽입된 것도 재감상하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몇 개의 상을 휩쓸지 않는 한 ‘에비에이터’를 극장에서 재감상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dvd로 발매되어 구입하고 세 번, 네 번 감상하면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발견할 수 있겠지요. 반복 감상을 하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발견’입니다.

덧글

  • 스푸키요원 2005/02/24 12:44 #

    저도 그런 핀잔들 너무 싫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의 '발견'
    정말 동감합니다. 저도 재미없게 보지는 않았는데 조금 길다는 느낌은 있었구요 그리고 곳곳에서 거장의 연출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디카프리오의 열연도 보기 좋았고 다만 아쉬운 건 예고편에서 그 좋았던 영화음악을 정작 극장에선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네요. 다시 보기엔 볼 영화들이 너무 많은데 말이죠.
  • 조군 2005/02/24 14:42 #

    재밌게 봤읍니다만, 엉덩이가 많이 아팠다는.... --;
  • shyuna 2005/02/24 17:17 #

    반복 감상을 하는 가장 큰 매력이 '발견'이라는 말.. 정말 그렇죠.. 지난 번에 못 보고 지나간 장면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뭐라 말 할 수가 없는 기쁨이에요^^
  • 디제 2005/02/24 17:28 #

    스푸키요원님/ 그래서 저는 주변에 아예 영화를 본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2월~3월은 아카데미 후보작이 많아서 볼 영화가 많죠.
    조군님/ 저는 다시 볼 때에도 러닝 타임이 별로 길게 느껴지지 않던 걸요. ^^
    shyuna님/ 반복 감상하며 발견하는 것은 영화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 작품에 해당되는 것이죠.
  • shuai 2005/02/25 00:47 #

    마지막 문장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 펑크난내인생 2005/02/25 06:09 #

    저같은 경우에는 극장에서 같은 영화를 두 번 본 적은 없어요. 아무래도 학생이다보니, 돈이 압박이 크다고 할까요. 그치만 비디오는 두번씩 볼려는 편이에요. 그게 요즘 들어 굉장히 뜸해지고 있네요. 두번씩이나 볼만한 것들을 못 만나서 그런 것도 있지만, 동네 비디오 가게의 1박2일 압박 때문에 여러모로 힘든 차에, 그러니깐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든든한 구원군이라도 만난 기분입니다. ^-^
  • 디제 2005/02/25 19:37 #

    shuai님/ ^^
    펑크난내인생님/ 저도 그래서 직장에 다니기 전까지는 영국 문화원과 프랑스 문화원을 전전했었습니다. 직장에 다니며 좋아진 것은 소비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죠.
  • earthchild 2005/02/26 23:11 #

    저는 이해력이 느린 관계로 약간의 스포일러(랄까 정보랄까;)를 보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_= 유쥬얼 서스펙트 류만 아니면, 뭐가 어떻게 된다더라-뭐가 중요하다더라-를 챙겨보는 편이 영화를 잘 따라가겠더라구요.

    불행히도 콘스탄틴은 무심코 봐버려서, 자막 올라간 뒤의 장면을 놓쳐버렸지만요;ㅁ;
  • 아가새 2005/03/01 23:36 #

    저희 동네 극장 너무 빨리 내려서 속상해 죽겠습니다 ;ㅅ;
  • 디제 2005/03/02 16:02 #

    earttchild님/ 엔드 크레딧은 우직하게 OST를 들으며 버티고 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엔드 크레딧을 보면서 천천히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거든요.
    아가새님/ 제 '동네 극장'은 강변 CGV라 그런 면에서는 좋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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