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이트 스콜’, ‘워터 월드’, ‘컷스로트 아일랜드’, 그리고 ‘마스터 앤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와 같은 해양 어드벤쳐 영화들은 제작 비용에 비해 상업적 흥행에는 실패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해양 어드벤쳐 영화는 재앙에 가깝다는 편견이 생겨났는데 이를 보기 좋게 깨뜨린 작품이 ‘캐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였습니다.
장르가 해양 어드벤쳐 영화였지만 막상 시원스레 보이는 바다의 전경을 잡는 샷은 많지 않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 블랙 펄의 저주’의 주인공은 바다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죠. 올란도 블룸, 키라 나이틀리, 제프리 러쉬, 그리고 조나단 프라이스에 이르기까지 제법 호화로운 캐스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쩐지 영화는 잭 스패로우 선장으로 분한 조니 뎁의 카리스마에 철저히 의존합니다. 능청스러운 조니 뎁의 연기는 ‘돈 쥬앙’을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그를 보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블록 버스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조니 뎁이었는데 그가 이런 영화에도 출연하나 싶어 놀라웠습니다.
더욱이 제리 브룩하이머 표 영화답게 쉴 틈이 없습니다. 사소한 장치들과 끊임없는 장면 전환 그리고 결투 장면으로 해양 어드벤쳐 영화가 망하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한다는 듯이 최선을 다합니다. 해적들의 정체에 대한 설정도 좋았고 중간중간 실소를 자아내는 장면도 좋았습니다. 비록 ‘더 락’과 별로 차별화되지 않은 사운드 트랙이지만 화면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DTS를 지원하는 사운드도 레퍼렌스 급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쓸만했습니다. 역시 훌륭한 오락 영화답습니다.
하지만 바다, 라면 남자의 로망이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혹은 어릴 적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흑백 TV로 보았던 데자키 오사무의 애니메이션의 ‘보물섬’의 존 실버와 라이벌 그레이의 장중함과 중후함을 여지껏 잊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해적 영화가 저렇게 가벼워서 어디에 쓰겠어,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저도 아저씨가 다 되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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