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1월 13일
월드 오브 투모로우 - 마음에 든 범작
흔히 ‘콩깍지 씌워졌다’, ‘사마귀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반하게 되면 단점도 단점으로 보이지 않게 되고 푹 빠져드는 것을 말합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수많은 단점이 훤히 보이는 영화였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훌륭한 영화도 되기 어렵고 비슷한 취향이 아니면 권해주기도 힘든 영화입니다. (따라서 저는 남들 앞에서 영화 이야기를 꺼내거나 권해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임지는 것도 싫어하고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주절거리고, 어지간히 마음이 맞는 사람이 아니면 영화를 함께 보러 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우선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좌우하는 서사 구조는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군데군데 눈에 띄지만 활용하지는 못합니다. 힘들게 납치된 덱스가 왜 납치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탈출했는지 불분명합니다. 프로펠러기 파일럿이 혼자 지구를 구한 스토리도 허황되게 느껴질 뿐입니다.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흑백 영화에 가까운 복고적인 화면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한국 관객에게 향수(영화 중간에 삽입된 ‘오즈의 마법사’의 ‘somewhere over the rainbow’에 향수를 느끼는 한국 관객이 몇이나 될까요.)를 불러일으키기 어려우며,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나 헐리우드 영화 ‘로켓티어’, ‘허드서커 대리인’ ,‘브라질’(국내 비디오 출시명 ‘여인의 음모’)의 분위기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흑백 영화에 가까운 미장센은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의 미모를 갉아 먹으며 그나마 신경 쓴 전투 신을 답답하게 가려놓는 구실 밖에 하지 못합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로봇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의 거신병이나 ‘라퓨타’의 라퓨타 성의 관리 로봇을 연상케 하며, 쥬드 로의 프로펠러기와 공중전을 벌이는 날개를 퍼덕이는 전투기도 사람만 탑승하지 않았을 뿐, ‘라퓨타’의 공적(空敵)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수많은 클리셰들의 융합인 ‘월드 오브 투모로우’(원제는 ‘스카이 캡틴과 월드 오브 투모로우’입니다만 차라리 제목을 ‘스카이 캡틴’으로 하는 편이 쉽게 국내에서 어필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요.)는 이렇듯 좋은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작품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왠지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로봇이 등장해 파괴를 일삼고, 그 로봇을 배후 조종하는 인물은 인류의 멸망을 획책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이며, 이에 잘생긴 히어로가 혼자 힘으로 맞선다는, 어릴 적부터 너무나 익숙해있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슈퍼 로봇물의 갈등 구조를 실사(물론 대부분 CG이겠지만)로 재현했다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시대적 배경과 사이버 펑크를 결합한 듯한 독특한 분위기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마치 흑백 만화를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 말입니다.
캐스팅도 볼 만합니다.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가 아웅다웅하는 귀여운 (하지만 둘의 다툼이나 유머는 좀 썰렁합니다.) 연인으로 등장하고 안젤리나 졸리가 출연 시간은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선사합니다. 애꾸눈에 정복을 입고 영국식 액센트를 쓰는 안젤리나 졸리에게서 처음으로 아버지 존 보이트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외에도 로렌스 올리비에와 바이 링(‘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에도 출연하는군요.)이 출연합니다. 두 배우가 어디에 등장하는지는 눈여겨 보십시오. 비록 범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든 ‘월드 오브 투모로우’는 서플과 커멘터리만 쓸만하다면 dvd로 구입하게 될 것 같습니다.
# by | 2005/01/13 22:44 | 영화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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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엽기의 공중전투신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인상깊은건 그 기계 앞에서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가는 모습에서 대폭소.;
님의 글에서, 염맨님의 '묘하게 재미는 있습니다만'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오. 이야호, 나, 아직, 괜찮아.
미야지카 하야오의 세계관도 슬쩍 보이는 것이, 신선한 감독이 무척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이 퍽이나 마음에 들어 하고 있다오.
염맨님/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것은 아니었고... 내러티브의 연결 고리가 허술했던 것이겠죠.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hardbolied님/ 슈퍼 히어로물처럼 코믹북을 원작으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순수히 감독의 아이디어로 이 정도의 세계관을 창조하고 비주얼로 보여주었다면 그런대로 감독이 재능은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 여름에 개봉할줄 알고 기다린게 언제부터인지, 엉엉.
마리님/ 하긴 이 영화 국내 개봉이 많이 늦은 편이죠.
THX1138님/ 둘 다 보세요. 그러고보면 제 블로그가 영화 뽐뿌가 될 수도 있겠군요. ^^
내용은 기대에 좀 못미쳤지만, 정말 콩깍지가 씌었는지 좋은 쪽으로만 보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