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유대인 질(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 분)은 나치 독일의 학살을 면하기 위해 ‘레자’라는 이름의 페르시아 인을 자처합니다. 독일군 장교 코흐(라르스 아이딩어 분)는 질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질은 살아남기 위해 가짜 페르시아어 단어를 급조해 코흐에게 가르칩니다.
생존을 위해 가짜 언어 창조
바딤 피얼만 감독의 2020년 작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국적을 속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실화에 기초한 볼프강 콜하세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유대인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기지를 발휘해 생존 분투하는 줄거리는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를 연상시킵니다. 서두에서 질이 살아남는 결말을 이미 제시하지만 수용소 장면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팽팽하고 묵직한 긴장감이 압도적이라 스릴러와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인 질은 향후 페르시아로의 이민을 꿈꾸는 코흐의 눈에 들어 중노동이 아닌 상대적으로 편한 주방 일과 유대인 명부 정리를 맡게 됩니다.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질은 유대인 수용자들의 이름에서 단어를 만들어 코흐에게 가르칩니다. 생존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질이 만든 ‘페르시아어’는 모두 죽은 유대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코흐의 부하와 동료들은 질은 페르시아 인이 아닌 유대인이며 코흐가 질에게 속았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코흐가 질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지닌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코흐가 여성 대원들에게 무관심한 가운데 질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반에는 코흐도 질이 페르시아 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신과 체면이 걸린 코흐는 차마 질이 유대인이라고 동료들에게 털어놓지는 못합니다. 중노동에 시달리던 질은 ‘페르시아어’를 혼수상태에서도 중얼거려 코흐의 신뢰를 회복해 살아남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에서 비롯된 ‘페르시아어’
요리를 담당하는 코흐는 자신은 유대인을 살인하지 않았으며 좋은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연합군의 반격이 수용소로 향하자 나치는 수용소의 명부를 비롯한 관련 서류를 전부 불태웁니다.
코흐는 질을 데리고 수용소를 탈출합니다. 둘의 작별 직전 질은 코흐에게 ‘페르시아어’가 가짜였음을 밝히지는 않지만 “살인자들을 배불리 먹였다”며 코흐가 살인자와 다르지 않다고 규정합니다.
벨기에인으로 신분을 가장한 여권을 소지한 코흐는 페르시아에 도착해 갈고닦은 ‘페르시아어’를 유창히 말하며 입국 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인들에게 질이 만든 ‘페르시아어’가 통할 리는 없습니다. 코흐는 체포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질은 연합군과 만나 자신이 기억하는 2840명의 유대인 희생자의 이름을 차례로 술회하며 울먹입니다.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 덕분에 살아남은 질의 처지가 역설적이라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생존을 위해 가짜 언어 창조
바딤 피얼만 감독의 2020년 작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살아남기 위해 국적을 속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합니다. 실화에 기초한 볼프강 콜하세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했습니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유대인이 나치의 수용소에서 기지를 발휘해 생존 분투하는 줄거리는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 ‘쥐’를 연상시킵니다. 서두에서 질이 살아남는 결말을 이미 제시하지만 수용소 장면은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팽팽하고 묵직한 긴장감이 압도적이라 스릴러와 다르지 않습니다.
유대인 질은 향후 페르시아로의 이민을 꿈꾸는 코흐의 눈에 들어 중노동이 아닌 상대적으로 편한 주방 일과 유대인 명부 정리를 맡게 됩니다.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질은 유대인 수용자들의 이름에서 단어를 만들어 코흐에게 가르칩니다. 생존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창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질이 만든 ‘페르시아어’는 모두 죽은 유대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코흐의 부하와 동료들은 질은 페르시아 인이 아닌 유대인이며 코흐가 질에게 속았다고 여깁니다. 그들은 코흐가 질에게 동성애적 감정을 지닌 것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합니다. 코흐가 여성 대원들에게 무관심한 가운데 질의 얼굴을 쓰다듬으려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중반에는 코흐도 질이 페르시아 인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신과 체면이 걸린 코흐는 차마 질이 유대인이라고 동료들에게 털어놓지는 못합니다. 중노동에 시달리던 질은 ‘페르시아어’를 혼수상태에서도 중얼거려 코흐의 신뢰를 회복해 살아남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에서 비롯된 ‘페르시아어’
요리를 담당하는 코흐는 자신은 유대인을 살인하지 않았으며 좋은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연합군의 반격이 수용소로 향하자 나치는 수용소의 명부를 비롯한 관련 서류를 전부 불태웁니다.
코흐는 질을 데리고 수용소를 탈출합니다. 둘의 작별 직전 질은 코흐에게 ‘페르시아어’가 가짜였음을 밝히지는 않지만 “살인자들을 배불리 먹였다”며 코흐가 살인자와 다르지 않다고 규정합니다.
벨기에인으로 신분을 가장한 여권을 소지한 코흐는 페르시아에 도착해 갈고닦은 ‘페르시아어’를 유창히 말하며 입국 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인들에게 질이 만든 ‘페르시아어’가 통할 리는 없습니다. 코흐는 체포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질은 연합군과 만나 자신이 기억하는 2840명의 유대인 희생자의 이름을 차례로 술회하며 울먹입니다. 희생된 유대인들의 이름 덕분에 살아남은 질의 처지가 역설적이라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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