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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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상상 – 하마구치 류스케 통찰력-천재성 번뜩여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우연과 상상’은 3부작 구성의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제목 그대로 우연과 상상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삼각관계의 출발점?

1부 ‘마법(보다도 불확실한 것)’은 삼각관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패션모델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 분)는 코디이자 절친한 친구 츠구미(현리 분)로부터 첫 만남에서 강렬한 호감을 느낀 남자 이야기를 듣습니다. 메이코는 그 남자가 2년 전 자신이 바람을 피워 헤어진 남자친구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 분)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를 사무실로 불쑥 찾아갑니다.

택시 뒷자리에서 이동 중에 메이코와 츠구미가 대화를 나누는 긴 장면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안긴 ‘드라이브 마이 카’를 연상시킵니다.

친구 사이이지만 츠구미와 메이코는 성격이 대조적입니다. 츠구미는 카즈아키와의 첫 만남에서 강렬한 이끌림에도 불구하고 동침하지 않고 악수하고 헤어질 만큼 신중합니다. 반면 메이코는 츠구미로 인해 질투심이 치솟아 당장 카즈아키를 사무실로 찾아가 유혹할 만큼 충동적입니다.

만일 카즈아키가 냉정하다면 메이코를 문전박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메이코와 헤어진 뒤에도 2년 동안 잊지 못했던 그는 메이코의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에 이릅니다. 메이코가 유혹을 하면서도 츠구미와 파탄 나는 것은 물론 자신과도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 현실적으로 경고해도 카즈아키는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우유부단한 카즈아키는 부하직원이 우연히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메이코와 동침했을 수도 있습니다.

카즈아키는 메이코를 ‘너(お前)’라 낮춰 부르고 메이코는 왜 그렇게 부르는지 항의합니다. 하지만 한글 자막은 ‘お前’를 ‘당신’으로 번역해 어색합니다.

5일 후 츠구미와 찻집에서 차를 마시던 메이코는 카즈아키가 우연히 동석하자 둘의 과거를 츠구미에 폭로합니다. 하지만 이는 상상임이 드러나고 메이코는 둘을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납니다.

과연 카즈아키가 츠구미에만 전념할지, 그리고 메이코는 카즈아키를 유혹하지 않을지는 관객의 상상에 맡깁니다. 카즈아키와 메이코의 성격으로 인해 결국 츠구미만 상처받을 것이라 예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악의가 선의로, 하지만 악의가 승리

2부 ‘문은 열어 둔 채로’는 교수와 학생을 둘러싼 악의와 우연한 실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방송국 입사를 앞두었으나 교수 세가와(시부카와 키요히코 분)의 학점을 받지 못해 입사가 취소된 사사키(카이 쇼마 분)가 섹스 파트너 나오(모리 카츠키 분)를 앞세워 미인계에 빠뜨리려 합니다.

유부녀 나오는 세가와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사사키와의 관계가 끝날까 두려워해 세가와를 유혹합니다. 세가와는 제목 그대로 교수실 문을 항상 열어둔 채로 두는 반듯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세가와가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같이 섹스 묘사가 직설적입니다. 나오는 스마트폰으로 몰래 녹음을 하며 오럴 섹스 묘사 장면을 낭독해 세가와를 유혹합니다.

소설의 섹스 묘사는 매우 적나라한 가운데 나오는 매우 진지하고 세가와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가만히 듣는 장면은 웃음을 유발해 블랙 코미디입니다. 여성이 남성 앞에서 소설의 섹스 묘사를 낭독하는 장면은 ‘아가씨’를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세가와는 끝내 유혹을 뿌리쳐 나오는 그의 반듯함에 감복합니다.

세가와는 순수한 이유로 나오의 낭독 녹음 파일을 요구하지만 나오는 실수로 파일을 세가와 가 아닌 학교 관계자에 이메일로 전송합니다. 세가와는 파멸하고 나오도 이혼합니다. 악의로 출발해 선의로 전환되었으나 우연에 의해 최초 출발점인 악의가 승리한 것입니다.

훗날 사사키와 우연히 만난 나오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연락처를 주고 키스합니다. 결혼을 앞둔 사사키에 대한 나오의 복수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나오가 내린 뒤 사사키가 탑승 중인 버스가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가해의 근원이 된 사사키의 삶이 암흑에 빠질 것으로 암시한다고 해석됩니다.

착각에서 비롯된 치유

3부 ‘다시 한번’은 착각이 겹쳐 비롯된 우연한 만남을 묘사합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중년 여성 나츠코(우라베 후사코 분)가 고향 센다이를 방문해 과거 사랑했던 고교 동창 미카(카와이 아오바 분)를 역 앞에서 우연히 만납니다. 미카의 집에 가 대화를 나누던 나츠코는 그가 미카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아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야 역시 나츠코를 과거 친했던 노조미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학창 시절 반짝거렸던 추억과 마주하고픈 두 여성의 시도는 잠시 길을 헤매지만 치유를 받아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옵니다. 일면식도 없었던 나츠코와 아야는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교감해 힐링 영화와 같은 해피 엔딩으로 귀결됩니다.

‘다시 한번’은 인터넷 바이러스 ‘제론’의 창궐로 인해 인터넷의 사용이 불가능해져 전화와 전신만이 가능해진 퇴행적 시대라는 SF적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왜 나츠코와 아야가 각각 옛 친구와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졌는지 뒷받침합니다.

공간적 배경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지역인 센다이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인터넷 바이러스는 다수의 실종자 발생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의 행방을 알 수 없게 된 동일본 대지진의 은유로 해석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깊이 있는 통찰력 두드러져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 소설에 체호프의 희곡을 접목한 매우 문학적인 영화였습니다. ‘우연과 상상’ 역시 하루키 소설이 떠오르는 가운데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고 공간적 배경이 제한적이라 연극적입니다. 각본을 약간만 손보면 연극 상연도 충분할 듯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천재성은 ‘우연과 상상’에서도 번뜩입니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눈요깃거리와 같은 오락성과는 거리가 있으나 누구나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해프닝을 통해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공감대를 자아냅니다. 우연과 상상에 의해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는 삶과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력이 두드러집니다.

드라이브 마이 카 –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루키 소설, 체호프 연극, 그리고 영화의 완벽한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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