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갱단의 중간 보스 아화(유덕화 분)는 친척의 부탁으로 병원 진찰을 받아야 하는 아오(장만옥 분)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아화는 동생처럼 아끼는 부하 플라이(장학우 분)가 말썽을 부려 조직 내부의 토니(만자량 분)와 반목합니다. 아화와 아오는 사랑에 빠지지만 플라이로 인해 아화는 위기에 처합니다.
몽콕의 카르멘
1988년 작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홍콩에서 개봉된 원제는 ‘몽콕하문(旺角卡門)’으로 몽콕은 야시장으로 유명한 홍콩의 뒷골목이며 하문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뜻합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몽콕의 카르멘’입니다. 한국 개봉명 ‘열혈남아(熱血男兒)’는 대만 개봉명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카르멘’은 치정극이지만 ‘열혈남아’는 치정극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아화와 아오의 사랑에 딱히 방해꾼은 등장하지 않으며 아오는 자신을 치료하던 주치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오에 전념합니다. 주치의를 연기한 것은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서 미술, 의상, 편집 등을 담당하는 ‘오른팔’ 장숙평입니다.
‘열혈남아’를 상징하는 아화와 아오의 공중전화 키스 장면은 격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고지순해 판타지에 가까운 로맨스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 결말은 ‘카르멘’과 ‘열혈남아’가 동일합니다.
홍콩 느와르 전성기에 탄생한 왕가위 데뷔작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에 탄생한 영화답게 ‘열혈남아’의 서사 및 캐릭터 구조는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 요소들에 충실합니다. 묵직한 성격의 주인공과 가볍기 짝이 없는 그의 동생(부하), 주인공을 사랑하는 청순한 여주인공과 비열한 악역, 의리를 지키다 결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 등의 요소는 여타 홍콩 느와르 영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화와 플라이, 그리고 아소(황빈 분)의 관계는 혈연이 아니지만 형제로 통칭됩니다. 아화와 아오 역시 실제로는 혈연이 아니지만 사촌지간으로 불립니다. 서양에서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동양적인 혈연 호칭 역시 홍콩 느와르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하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요소들은 ‘열혈남아’에서도 눈에 띕니다. 홍콩 느와르가 감정적으로 신파를 앞세웠던 것과 달리 ‘열혈남아’는 상대적으로 감정 표현이 간결합니다. 신파로 흐를 만한 장면에서도 적절한 선을 지킵니다. 이후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 비하면 ‘열혈남아’는 감정 노출에 충실한 편이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분명 차별화되어 ‘쿨함’의 여지를 선보입니다.
‘영웅본색’을 필두로 갱, 킬러, 도박사 등 암흑가의 사나이들을 멋들어지게 표현해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당대의 영화들과 달리 ‘열혈남아’는 아화를 비롯한 갱이 결코 멋들어지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대책 없고 철없는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열혈남아’는 홍콩 느와르의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결코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도모한 변주와 같은 작품입니다.
액션 참신하지만 음악 아쉬워
무엇보다 ‘열혈남아’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다운 것은 특유의 액션 연출입니다. 스텝 프린팅, 점프 컷, 핸드 헬드가 뒤섞인 참신한 연출 장면은 슬로 모션이 남발되어 매너리즘에 빠졌던 홍콩 느와르의 액션과는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
촬영은 왕가위 감독의 전성기에 그의 왼팔과 같았던 크리스토퍼 도일(두가풍)이 아닌 훗날 ‘무간도’의 공동 감독으로 기억되는 유위강이 맡았습니다. 하지만 푸른 숲 장면은 ‘아비정전’, 옥상에서 바라본 도시의 검푸른 하늘의 야경은 ‘중경삼림’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이 이별한 전 여친과 조우하는 장면도 ‘중경삼림’에서 되풀이됩니다. ‘열혈남아’는 비극답게 씁쓸하게 묘사되는 반면 ‘중경삼림’은 밝은 분위기답게 유머러스하게 묘사됩니다.
‘열혈남아’의 최대 약점은 음악입니다. 후속작 ‘아비정전’을 기점으로 왕가위 감독 연출작의 음악은 기존의 곡을 활용하든 아니면 새롭게 작곡하든 간에 배우의 연기와 장면에 대한 관객의 감정 이입을 극한으로 몰입시킵니다.
하지만 ‘열혈남아’의 신디사이저 위주의 배경 음악은 초보 감독의 예산 부족을 탓한다 해도 귓전을 부담스럽게 때리며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두고두고 논란이 되는 ‘Take my breathe away’의 번안곡 삽입도 차라리 없는 편이 낫습니다.
장학우-만자량 연기 인상적
장만옥은 12년 뒤인 ‘화양연화’의 우아한 유부녀의 이미지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풋풋한 소녀처럼 등장합니다. 유덕화와 장만옥은 ‘아비정전’에는 감정이 엇갈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이로 출연합니다.
감정의 폭이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장학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그가 연기한 플라이(Fly)는 대사에도 암시되듯 ‘파리’를 뜻하는 별명입니다. 성마르고 가벼우며 암흑가에서도 하찮게 무시당하는 존재이기에 붙은 이름으로 해석됩니다.
아쉬운 것은 장학우가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에서 비슷한 연기를 되풀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장학우의 연기력 한계보다는 비슷한 캐릭터를 시공간만 바꿔 재활용하는 왕가위 감독의 책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악역 전문 배우 만자량의 정석적인 연기도 볼거리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는 전형적인 악역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선악 구분이 모호한 것이 특징입니다. ‘동사서독’은 김용의 원작인 ‘사조영웅전’의 악역 서독조차 장국영이 연기한 주인공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열혈남아’만큼은 선과 악의 구분이 선명합니다.
‘영웅본색’의 마카오 장면에 악역으로 등장했던 진지휘는 중반 고양이를 학대하는 악역으로 출연합니다. 현재였다면 고양이 학대 장면은 CG로 연출되어도 용납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비정전 - 왕가위 월드의 원형
동사서독 - 사랑의 기억마저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
동사서독 리덕스 - 오리지널과 무엇이 달라졌나?
중경삼림 - 도시적이고 쿨한 감수성
중경삼림 - 12년 만에 필름으로 재회한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 왜 우리는 이 영화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중경삼림 - 공간과 소품으로 본 ‘중경삼림’
타락천사 - 우울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다
타락천사 - 헤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해피 투게더 - 아휘, 다시 시작하자
화양연화 -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화양연화 - 고통스럽고 행복한, 사랑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 ‘이별 연습’ 하면 안 아플까?
2046 - 엇갈린 사랑의 공허함
2046 - 두 번째 감상
2046 - 세 번째 감상
2046 - 네 번째 감상
에로스 - 세 편의 알듯 말듯한 사랑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배경만 바꾼 왕가위의 동어반복
일대종사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일대종사 - 7번의 기념사진, 그리고 궁이
http://twitter.com/tominodijeh

몽콕의 카르멘
1988년 작 ‘열혈남아’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입니다. 홍콩에서 개봉된 원제는 ‘몽콕하문(旺角卡門)’으로 몽콕은 야시장으로 유명한 홍콩의 뒷골목이며 하문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을 뜻합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몽콕의 카르멘’입니다. 한국 개봉명 ‘열혈남아(熱血男兒)’는 대만 개봉명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카르멘’은 치정극이지만 ‘열혈남아’는 치정극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아화와 아오의 사랑에 딱히 방해꾼은 등장하지 않으며 아오는 자신을 치료하던 주치의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오에 전념합니다. 주치의를 연기한 것은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서 미술, 의상, 편집 등을 담당하는 ‘오른팔’ 장숙평입니다.
‘열혈남아’를 상징하는 아화와 아오의 공중전화 키스 장면은 격정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고지순해 판타지에 가까운 로맨스를 상징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 결말은 ‘카르멘’과 ‘열혈남아’가 동일합니다.
홍콩 느와르 전성기에 탄생한 왕가위 데뷔작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에 탄생한 영화답게 ‘열혈남아’의 서사 및 캐릭터 구조는 홍콩 느와르의 전형적 요소들에 충실합니다. 묵직한 성격의 주인공과 가볍기 짝이 없는 그의 동생(부하), 주인공을 사랑하는 청순한 여주인공과 비열한 악역, 의리를 지키다 결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 등의 요소는 여타 홍콩 느와르 영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화와 플라이, 그리고 아소(황빈 분)의 관계는 혈연이 아니지만 형제로 통칭됩니다. 아화와 아오 역시 실제로는 혈연이 아니지만 사촌지간으로 불립니다. 서양에서 보면 이해가 쉽지 않은 동양적인 혈연 호칭 역시 홍콩 느와르의 요소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하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요소들은 ‘열혈남아’에서도 눈에 띕니다. 홍콩 느와르가 감정적으로 신파를 앞세웠던 것과 달리 ‘열혈남아’는 상대적으로 감정 표현이 간결합니다. 신파로 흐를 만한 장면에서도 적절한 선을 지킵니다. 이후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 비하면 ‘열혈남아’는 감정 노출에 충실한 편이지만 시대적 분위기를 감안하면 분명 차별화되어 ‘쿨함’의 여지를 선보입니다.
‘영웅본색’을 필두로 갱, 킬러, 도박사 등 암흑가의 사나이들을 멋들어지게 표현해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당대의 영화들과 달리 ‘열혈남아’는 아화를 비롯한 갱이 결코 멋들어지게 묘사되지 않습니다. 대책 없고 철없는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열혈남아’는 홍콩 느와르의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결코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도모한 변주와 같은 작품입니다.
액션 참신하지만 음악 아쉬워
무엇보다 ‘열혈남아’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다운 것은 특유의 액션 연출입니다. 스텝 프린팅, 점프 컷, 핸드 헬드가 뒤섞인 참신한 연출 장면은 슬로 모션이 남발되어 매너리즘에 빠졌던 홍콩 느와르의 액션과는 분명한 선을 긋습니다.
촬영은 왕가위 감독의 전성기에 그의 왼팔과 같았던 크리스토퍼 도일(두가풍)이 아닌 훗날 ‘무간도’의 공동 감독으로 기억되는 유위강이 맡았습니다. 하지만 푸른 숲 장면은 ‘아비정전’, 옥상에서 바라본 도시의 검푸른 하늘의 야경은 ‘중경삼림’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이 이별한 전 여친과 조우하는 장면도 ‘중경삼림’에서 되풀이됩니다. ‘열혈남아’는 비극답게 씁쓸하게 묘사되는 반면 ‘중경삼림’은 밝은 분위기답게 유머러스하게 묘사됩니다.
‘열혈남아’의 최대 약점은 음악입니다. 후속작 ‘아비정전’을 기점으로 왕가위 감독 연출작의 음악은 기존의 곡을 활용하든 아니면 새롭게 작곡하든 간에 배우의 연기와 장면에 대한 관객의 감정 이입을 극한으로 몰입시킵니다.
하지만 ‘열혈남아’의 신디사이저 위주의 배경 음악은 초보 감독의 예산 부족을 탓한다 해도 귓전을 부담스럽게 때리며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두고두고 논란이 되는 ‘Take my breathe away’의 번안곡 삽입도 차라리 없는 편이 낫습니다.
장학우-만자량 연기 인상적
장만옥은 12년 뒤인 ‘화양연화’의 우아한 유부녀의 이미지로부터는 상상할 수 없는 풋풋한 소녀처럼 등장합니다. 유덕화와 장만옥은 ‘아비정전’에는 감정이 엇갈려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이로 출연합니다.
감정의 폭이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장학우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특히 그가 연기한 플라이(Fly)는 대사에도 암시되듯 ‘파리’를 뜻하는 별명입니다. 성마르고 가벼우며 암흑가에서도 하찮게 무시당하는 존재이기에 붙은 이름으로 해석됩니다.
아쉬운 것은 장학우가 ‘아비정전’과 ‘동사서독’에서 비슷한 연기를 되풀이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장학우의 연기력 한계보다는 비슷한 캐릭터를 시공간만 바꿔 재활용하는 왕가위 감독의 책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악역 전문 배우 만자량의 정석적인 연기도 볼거리입니다.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에는 전형적인 악역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선악 구분이 모호한 것이 특징입니다. ‘동사서독’은 김용의 원작인 ‘사조영웅전’의 악역 서독조차 장국영이 연기한 주인공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열혈남아’만큼은 선과 악의 구분이 선명합니다.
‘영웅본색’의 마카오 장면에 악역으로 등장했던 진지휘는 중반 고양이를 학대하는 악역으로 출연합니다. 현재였다면 고양이 학대 장면은 CG로 연출되어도 용납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비정전 - 왕가위 월드의 원형
동사서독 - 사랑의 기억마저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
동사서독 리덕스 - 오리지널과 무엇이 달라졌나?
중경삼림 - 도시적이고 쿨한 감수성
중경삼림 - 12년 만에 필름으로 재회한 인생의 영화
중경삼림 - 왜 우리는 이 영화에 그토록 열광하는가
중경삼림 - 공간과 소품으로 본 ‘중경삼림’
타락천사 - 우울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다
타락천사 - 헤어지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
해피 투게더 - 아휘, 다시 시작하자
화양연화 -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화양연화 - 고통스럽고 행복한, 사랑
화양연화 리마스터링 – ‘이별 연습’ 하면 안 아플까?
2046 - 엇갈린 사랑의 공허함
2046 - 두 번째 감상
2046 - 세 번째 감상
2046 - 네 번째 감상
에로스 - 세 편의 알듯 말듯한 사랑 영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배경만 바꾼 왕가위의 동어반복
일대종사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일대종사 - 7번의 기념사진, 그리고 궁이
http://twitter.com/tominodijeh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