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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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레터 – 화이트 이와이 월드의 동창회, 혹은 자기복제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년 여성 유리(마츠 타카코 분)는 언니 미사키가 사망한 뒤 언니의 동창회에 참석해 부고를 전하려 하지만 외려 미사키로 오인됩니다. 부고를 전하지 못한 유리에게 미사키를 사랑했던 오토사카(후쿠야마 마사하루 분)가 접근해 연락처를 교환합니다. 미사키로 행세하는 유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오토사카는 고교 시절을 회상합니다.

동일본 대지진의 치유?

2020년 작 ‘라스트 레터’는 이와이 슌지 감독이 자신의 첫 장편 영화 1995년 작 ‘러브 레터’의 연장 선상에 두고 연출했습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직접 집필한 2018년 작 동명의 소설을 각색해 중국에서 영화화한 뒤 다시 일본에서 영화화했습니다.

중반 이후부터 주인공으로 부상하며 로드 무비의 성격을 부여하는 오토사카를 연기한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잘생긴 얼굴을 덥수룩한 머리, 안경, 콧수염으로 가려 이와이 슌지 감독의 페르소나처럼 보입니다. 오토사카는 한 편의 소설밖에 출간하지 못한 교사이지만 자신이 내세우는 직업은 소설가입니다. 이와이 슌지 감독 역시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주된 공간적 배경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고향인 미야기현입니다. 삶과 죽음을 소재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 지역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해 ‘치유’와 ‘격려’를 의식한 듯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설정해 서사시의 요소를 갖췄으면서도 등장인물 중 단 한 명도 일대 사건인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 외려 어색한 것은 의도적으로 해석됩니다. 드론을 활용해 미야기의 곳곳을 부감으로 잡는 촬영 방식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답지 않은 스펙터클을 제시합니다.

‘러브 레터’와 ‘4월 이야기’ 계보 이어

‘라스트 레터’는 ‘러브 레터’와 ‘4월 이야기’로 이어져 순수함을 강조하는 ‘화이트 이와이’에 충실합니다. 두 작품을 사전에 관람했다면 ‘라스트 레터’는 오랜 친구와의 재회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전반부를 이끌어나가는 유리 역의 마츠 타카코는 ‘4월 이야기’의 주연이었습니다. ‘러브 레터’에서 연인으로 출연했던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는 후반에 카메오처럼 등장합니다. 만일 사전에 캐스팅을 모르고 관람했다면 매우 반가울 것입니다. 마츠 타카코는 여전히 우아하지만 나카야마 미호와 토요카와 에츠시는 세월의 풍파를 겪은 캐릭터를 연기하기에 ‘러브 레터’와는 이미지가 사뭇 다릅니다.

캐스팅뿐만 아니라 서사 전개와 소품 배치까지 ‘러브 레터’와 ‘4월 이야기’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사를 이끌어나가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고교 시절의 풋풋한 사랑(첫사랑/짝사랑 혹은 둘 다)이 출발점이지만 대학 시절에 연애하는 전개의 생략도 세 작품이 동일합니다. 성인이 된 뒤의 사랑, 즉 섹스가 개입되는 사랑은 순수함이 떨어진다는 판단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러브 레터’와 ‘라스트 레터’ 모두 참배/장례식으로 출발하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은 인물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회상합니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과거의 학교를 촬영하는 주인공과 생활감으로 가득해 세트처럼 보이지 않는 일본인들의 집 내부도 공통적입니다.

제목부터 ‘러브 레터’의 후속작과 같은 ‘라스트 레터’를 극 중에도 등장하는 ‘동창회’로 볼 수 있으나 ‘그 밥에 그 나물’과 같은 ‘자기복제’로 비판받을 여지도 충분합니다.

유서가 삶을 긍정해 앞뒤 안 맞아

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츠 타카코, 나카야마 미호, 토요카와 에츠시에 현재 일본에서 각광받는 히로세 스즈, 카미키 류노스케, 그리고 유리의 남편인 만화가 소지로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감독 안노 히데아키까지 캐스팅이 매우 화려합니다. 하지만 과거 회상 장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10대 오토사카 역의 카미키 류노스케와 10대 유리 역의 모리 나나는 연기력이 처집니다. 섬세한 표정 연기가 되지 않아 어색하고 뻣뻣합니다.

아내 유리의 불륜에 대해 짧은 반응 이후 더 이상 의심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소지로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중반까지의 전개는 흥미진진하나 벌려놓은 이야기를 수습하는 후반은 다소 힘이 떨어지는 가운데 신파로 흐릅니다.

10대와 중년, 그리고 노년까지 모든 세대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을 묘사하며 전술한 바와 같이 삶에 대한 의욕을 환기하는 주제 의식은 명확합니다. 하지만 자살한 미사키가 남긴 유서가 10대 시절 오토사카와 완성했던 삶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한 졸업사라는 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미사키의 자살에 지병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지만 구체적 묘사는 없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라스트 레터(Last Letter)’ 즉, 유서를 남기는 순간까지 삶의 가능성을 소중하게 여겼던 이가 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하는 원론적 의문을 피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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