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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리마스터링 – ‘이별 연습’ 하면 안 아플까?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2000년 작 ‘화양연화’가 리마스터링되어 개봉되었습니다. 서두에는 왕가위 감독의 영상 인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상의 톤이 전반적으로 밝아지고 뚜렷해진 데다 음향도 왕가위 감독 연출작 특유의 배경 소음이나 음악 소리 등이 분명히 전달됩니다. ‘타락천사’의 리마스터링에 대한 논란과 달리 ‘화양연화’의 리마스터링은 매우 훌륭합니다.

이별,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냐

‘화양연화’의 최대 볼거리인 수리챈(장만옥 분)의 치파오는 리마스터링을 통해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옵니다. 수리챈과 이웃에 살며 사랑에 빠지는 차우(양조위 분)의 의상은 매우 단조롭기에 수리챈의 치파오의 화려함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부각됩니다.

장만옥과 양조위의 연기도 의상만큼 차별화되는 듯합니다. 장만옥은 입체적이면서도 개성적인 마스크로 다양한 표정을 연기합니다. 반면 양조위는 포커 페이스 속에서도 섬세하면서도 미묘한 변화를 선보입니다.

장만옥은 조명으로 인해 광대뼈를 중심으로 드리워지는 그늘과 같은 그림자가 표정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면 양조위는 큰 눈에 망설임과 진심을 모두 담아냅니다. 소위 ‘이별 연습’ 장면에서 장만옥은 얼굴 표정이 드러나지만 양조위는 등만 보입니다.

‘이별 연습’ 장면은 웃음을 유발하지만 이별을 연습한다 해서 실제 이별이 덜 아픈 것은 절대 아닙니다. 진짜 이별은 예감하지 못한 순간에 별안간 불쑥 머리를 쳐듭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것이 진짜 이별이었으며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기 마련입니다.

아름다운 불륜극

차우와 수리챈은 자신들은 불륜이 아니라 여깁니다. 바람을 피우며 함께 일본 여행을 다니는 자신들의 배우자들과 달리 자신들은 섹스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dvd의 삭제 장면에는 차우와 수리챈이 섹스를 시도하다 실패한 뒤 “그들(배우자들)은 섹스를 어떻게 했을까?”하고 의아해하는 영상이 있습니다.

왕가위 감독은 지나치게 직접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섹스 실패 장면을 본편에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사와 뉘앙스를 통해 두 주인공이 섹스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암시합니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았던 믿었던 두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들의 사랑이 떳떳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수리챈이 차우의 집에 머물다 수리챈의 집주인 손 부인(반적화 분)이 예상보다 빠르게 귀가하자 두 사람은 집 안에 갇힙니다. 수리챈은 차우의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해 결근하게 됩니다. 만일 수리챈이 떳떳했다면 손 부인이 보든 말든 차우의 집 밖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손 부인은 수리챈의 불륜을 눈치채고 점잖게 충고합니다. 이때 수리챈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범주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음을 명확해집니다. 수리챈은 자신의 고용주이며 바람을 피우는 호(뇌진 분)와 자신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도 직감했을 것입니다.

불륜극을 우아하면서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유미주의를 추구하는 왕가위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입니다. 두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감정 이입은 주연 배우들의 연기 덕분입니다. ‘화양연화’의 러닝 타임 동안 관객은 두 주인공에 대한 거부감을 거의 느낄 수 없습니다.

헤어진 뒤

차우는 일 때문에 싱가폴로 향하며 수리챈에 함께 가자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왕가위 감독의 연출작이 그러하듯 해피 엔딩은 없습니다. 단지 수리챈이 차우의 싱가폴 빈집을 한 번 찾아와 미련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사랑하는 이의 빈집을 찾아가는 여성 캐릭터는 왕가위 감독의 전작 ‘중경삼림’과 ‘타락천사’에도 등장한 바 있습니다. 빈집은 주인 잃은 사랑과 공허함을 상징합니다.

결말에서 수리챈은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지만 여전히 외로운 삶을 삽니다. ‘동사서독’에서 장만옥이 연기했던, 구양봉의 형수와 마찬가지 행보입니다. 차우는 후속작 ‘2046’에서 홀로 지내며 뭇여자들을 만나 아내와 이혼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어떤 여자에게도 정착하지 못한 채 수리챈과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2046’은 ‘화양연화’에서 차우와 수리챈의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던 차우의 호텔 집필실의 번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철저한 미니멀리즘

‘화양연화’은 미니멀리즘에 충실합니다. 등장인물의 숫자는 소극장 연극처럼 매우 적습니다. 심지어 차우와 수리챈의 배우자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차우와 수리챈에만 집중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됩니다.

공간적 배경인 홍콩과 싱가포르 장면도 거리나 건물 전경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골목, 방, 복도, 계단, 택시 등이 사실상 전부입니다. 제작비를 절감하려는 의도일 수 있으나 사랑에 빠지면 서로 외에는 주변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리를 반영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건물 전체를 보여주는 것은 결말의 앙코르와트가 전부입니다. 앙코르와트는 ‘화양연화’의 시간적 배경인 1960년대와 개봉 당시였던 2000년에 변화 및 차이가 거의 없었으니 연출의 측면에서 부담 없이 제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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