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1boon/KBO 야매카툰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미안해요, 리키 - 숨이 턱턱 막히는 먹먹함, 압도적 영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갖은 직업을 전전한 리키(크리스 히첸 분)는 택배 기사가 되기 위해 아내 애비(데비 허니우드 분)의 승용차를 팔아 밴을 마련합니다. 출장 간병인 애비는 승용차가 사라져 시간이 항상 촉박합니다. 지점장 멀로니(로스 브루스터 분)는 리키를 비롯한 택배 기사들을 심하게 압박합니다.

비정규직 가족의 비극

켄 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는 영국 북동부 뉴캐슬을 배경으로 비정규직에 종사하는 부모가 포함된 4인 가족의 버거운 삶을 묘사합니다. 리키와 애비는 각각 택배 기사와 출장 간병인으로 근무합니다. 2008년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주 거래 은행이 파산해 리키 부부는 내 집 마련 일보 직전에 좌절된 것은 물론 빚에 허덕입니다.

‘허울 좋은 자영업자’ 리키는 징계를 받는 아들을 위해 학교에 갈 시간조차 없습니다. 애비는 모처럼 기분 좋은 가족 저녁 식사 중 갑작스런 호출을 받아 일하러 갑니다. 리키 부부는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빚이 늘어갑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고 주 5일 근무도 보장되지 못한 채 근무 시간은 늘어나니 부모가 자식들과 대화할 시간도 거의 없습니다. 첫째인 아들 세브(라이스 스톤 분)는 무단결석하며 그래피티를 일삼는 와중에 절도 및 폭력으로 학교에서 정학을 당합니다. 둘째인 딸 라이자(케이티 프록터 분)는 부모를 이해하지만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불면증 등에 시달립니다.

리키는 세브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세브는 학업에 전념해 대학을 나와도 번듯한 직업에 종사하기 어려운 현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기에 탈선하게 된 것입니다.

멀로니, 신자유주의의 ‘대행자’일 뿐

‘미안해요, 리키’의 외형적 악역은 멀로니입니다. 가정 파탄 일보 직전 리키가 휴가를 원하자 멀로니는 벌금을 거론하며 단칼에 거부합니다. 하지만 켄 로치 감독이 고발하는 진정한 악역은 멀로니를 피도 눈물도 없도록 만든 신자유주의입니다. 관리자 멀로니는 신자유주의의 대행자 중 한 명일뿐입니다.

리키와 애비는 법과 복지의 안전망의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리키가 배송 도중 강도를 당해 얻어맞아 골절상을 입어도 엑스레이의 촬영 결과를 통보받기 위해서는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합니다.

이 장면에서 병원 대기실에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노동 계급, 노인, 유색 인종입니다. 영국 공공 의료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켄 로치 감독은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복지 제도의 한계를 비판한 바 있습니다.

멀로니는 리키에 전화해 강도당한 배송 물품 중에 여권이 있었다며 리키가 개인적으로 보상해야 한다는 방침을 강요합니다. 게다가 폭행당해 한쪽 눈을 뜨지 못하는 리키에게 배송 업무를 종용합니다.

성자와 같이 노인들을 돌보며 세브의 탈선에도 인내하던 애비가 분노가 폭발해 리키의 스마트폰을 빼앗아 멀로니에 욕설을 퍼붓습니다. “절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닌 등장인물은 결국 그 원칙을 깨는 것이 영화의 원칙입니다.

원제 ‘Sorry We Missed You(미안해요, 부재중이시군요)’는 택배 기사가 수취인을 만나지 못했을 때 남기는 쪽지에 인쇄된 문구입니다. 리키는 이 쪽지에 애비에게 출근을 알리는 편지를 씁니다.

리키는 새벽잠에서 깨어난 애비와 세브의 만류를 뿌리친 채 밴을 출발시킵니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지만 운전을 하는 리키의 옆얼굴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엔딩 크레딧에는 ‘제작 과정에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택배 기사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명시됩니다.

디지털,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족쇄

‘미안해요, 리키’는 디지털이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족쇄가 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세브에게는 친구들과 그래피티 작업 등 ‘모든 것’이 스마트폰에 들어 있으며 라이자는 셀카를 촬영하며 즐깁니다. 애비는 라이자에게 여러 가지 지시를 스마트폰을 통해 음성 사서함에 남깁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디지털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필수적 존재로 자리매김한 듯합니다.

하지만 리키는 배송 진행 상황을 2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울리는 스캐너를 통해 모두에게 노출해야 합니다. 멀로니는 스캐너를 가리켜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지 결정하니까 이 기계를 기쁘게 해야 한다”며 신격화합니다. 애비는 스마트폰으로 걸려오는 추가 근무 독촉 전화에 고통스러워합니다. 기계가 주인이 되고 인간이 기계, 즉 디지털에 감시당하는 노예로 전락합니다. 디지털의 주인은 자본입니다.

세브와 라이자도 성인이 되면 부모와 마찬가지로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의 족쇄를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술의 진보로 인해 ‘더욱 정교한 족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켄 로치 감독은 디지털 시대의 자본에 의한 노동 통제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담담하고도 냉철하게 현실 고발

‘미안해요, 리키’의 가족 캐릭터는 너무도 생생하며 사실적입니다. 조숙한 듯했던 라이자가 반전의 주인공이 되는 후반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영화는 리키를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다른 가족이 그의 걸림돌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애비와 라이자의 지적대로 리키가 택배 업무에 종사한 뒤 가족을 등한시하게 된 것입니다. 리키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일에 매달리지만 가족과 돈,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상당수의 평범한 소시민 가장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배경 음악 삽입이 최소화된 가운데 신파에도 전혀 의존하지 않는 ‘미안해요, 리키’는 담담하면서도 냉철하게 등장인물들을 담아냅니다. 하드보일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리키의 가족을 둘러싼 숨이 턱턱 막히는 현실을 통해 먹먹하고도 서늘한 감동을 제공해 압도적입니다.

세브의 친구 로지(세일라 덩커리 분)가 학교에서의 따돌림과 어머니 남자친구의 학대에 못 이겨 가출하는 장면은 공교육의 한계와 10대에 대한 보호망 결여를 비판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인 리키가 프리미어 리그를 두고 택배 수취인과 설전을 벌이는 장면은 영국인의 지역성 및 축구 사랑을 반영하며 몇 안 되는 웃음을 유발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약자여, 연대하라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Ryunan 2019/12/23 13:24 #

    전작과 다르게 가족의 비중이 높아진게 확실히 느낌이 좀 다르더군요.
    아이들에 대해선 정말 어떻게 하는 게 맞는건지도 잘 모르겠고요 ㅎㅎ

    제목 번역은 좀 애매한 거 같지만. 좋은 영화였어요.
※ 이 포스트는 더 이상 덧글을 남길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