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욕의 극단 감독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와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 부부는 이혼을 결심합니다. 니콜은 외동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 분)를 데리고 친정이 있는 LA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합니다. 당초 두 사람은 당사자만의 합의로 이혼에 이르려 하지만 니콜이 변호사 노라(로라 던 분)에게 소송을 맡깁니다.
‘결혼 이야기’ 아닌 ‘이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감독이 각본, 제작,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는 제목만 놓고 보면 1992년 작 동명의 한국 영화 ‘결혼 이야기’처럼 부부 소재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서두에 찰리와 니콜이 배우자의 장점을 리스트로 뽑아 언급하는 캐릭터 소개까지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코미디의 요소는 있어도 전혀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는 부부가 아니라 해소하려는, 즉 이혼하려는 부부를 소재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소재의 영화들의 전형적인 전개 및 결말인 ‘한때 이혼을 고민하지만 결국 재결합’과는 달리 ‘결혼 이야기’는 이혼으로 종결됩니다. ‘결혼 이야기’가 아닌 ‘이혼 이야기’라는 점에서 너무도 역설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 관계의 파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스릴러처럼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달리 ‘결혼 이야기’가 블랙 유머에 치중하며 상대적으로 낙천적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뉴욕 VS LA
찰리와 니콜은 각각 미국의 동서부를 대표하는 대도시 뉴욕과 LA로 대조를 이룹니다. 찰리는 인디애나 출신이지만 뉴욕에서 자주성사한 예술인입니다. 반면 니콜은 LA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LA에 안착하고 싶어 합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뉴욕을 사랑하는 찰리와 널찍한 LA에 가족이 있는 니콜은 성격이 극과 극인 두 대도시를 각각 상징합니다. 즉 두 사람의 마음의 거리는 4,500km에 달하는 뉴욕과 LA의 거리만큼 멀어져 있습니다.
장단점 모두 갖춘 인간적 캐릭터
찰리와 니콜은 나름의 귀책사유가 있습니다. 찰리는 니콜이 동침을 거부하자 한 차례 외도를 했습니다. 니콜은 이메일 해킹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찰리가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해 니콜에 소홀했지만 니콜도 소통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남과 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묘한 균형을 맞추려 안간힘을 씁니다.
두 사람은 배우자 및 부모로서 노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혼을 결정하고도 찰리와 니콜은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힘씁니다. ‘결혼 이야기’의 최대 매력은 장점이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는 인간적인 생생함을 두 주인공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극중에도 언급되지만 1년 안팎으로 지속된 이혼의 힘겹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추악해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묘사합니다. 노아 바움백 감독과 스칼렛 요한슨의 이혼 경험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니콜의 어머니 샌드라가 니콜보다는 찰리의 편을 들고 니콜 몰래 변호사를 소개시켜주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사위 사랑은 장모’라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샌드라로는 1980년에 개봉된 걸작 코미디 ‘에어플레인!’의 히로인 줄리 해거티가 연기해 세월의 무게를 절감하게 합니다.
두 번의 압도적 클라이맥스
‘결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두 차례입니다. 첫째, 찰리와 니콜이 참석한 가운데 찰리의 변호사 제이(레이 리오타 분)와 노라가 살벌한 대리전을 벌이는 법정 장면입니다. 부부의 치부가 공적 석상에서 까발려진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합니다.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레이 리오타는 로라 던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선보입니다. 그는 등장 분량이 많지 않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합니다. 레이 리오타의 대표작인 1990년 작 ‘좋은 친구들’에 함께 출연했던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는 최근 공개된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둘째, 찰리가 LA에 마련한 작은 집에서 그와 니콜이 벌이는 언쟁입니다. 부드럽게 시작하는 대화는 결국 서로에 퍼붓는 극단적 저주로 치닫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오는 명장면입니다.
아담 드라이버-스칼렛 요한슨 대표작 될 듯
‘결혼 이야기’는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에게 프랜차이즈 영화의 캐릭터가 아닌 배우로서 기억될 대표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배우는 잘 생기거나 예뻐 보이지 않는 현실의 생생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여배우를 연기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에 비하면 미모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각본이 탄탄한 가운데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니 영화의 완성도는 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종반에는 니콜이 써놓고 읽기를 거부했으며 뒷부분이 생략되었던 찰리의 장점에 관한 리스트의 마지막 내용이 밝혀집니다. 읽기가 서투른 헨리가 읽다 결국 찰리가 남은 부분을 읽게 됩니다. 이혼을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 니콜의 절절한 감정이 뒤늦게 드러나고 헨리도 울컥합니다.
결말에는 두 주인공이 이혼 절차가 완료되어 적응한 모습이 제시됩니다. 니콜에게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고 찰리는 LA에 정착합니다. 따지고 보면 니콜이 표면적으로 찰리에 요구했던 LA 정착이라는 조건을 이혼 뒤에야 찰리가 받아들인 셈이 되어 씁쓸하고 아이러니컬합니다.
‘결혼 이야기’는 ‘남녀가 결혼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평범한 문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출발하지만 감정은 영원하지 못하고 유효 기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야기’는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아 때로는 한글 자막을 따라가기 버거운 장면들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영화라 ‘아이리시맨’과 더불어 블루레이의 발매 가능성이 희박해 아쉽습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결혼 이야기’ 아닌 ‘이혼 이야기’
노아 바움백 감독이 각본, 제작, 연출을 맡은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는 제목만 놓고 보면 1992년 작 동명의 한국 영화 ‘결혼 이야기’처럼 부부 소재의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서두에 찰리와 니콜이 배우자의 장점을 리스트로 뽑아 언급하는 캐릭터 소개까지는 그러합니다.
하지만 ‘결혼 이야기’는 코미디의 요소는 있어도 전혀 로맨틱하지 않습니다.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는 부부가 아니라 해소하려는, 즉 이혼하려는 부부를 소재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소재의 영화들의 전형적인 전개 및 결말인 ‘한때 이혼을 고민하지만 결국 재결합’과는 달리 ‘결혼 이야기’는 이혼으로 종결됩니다. ‘결혼 이야기’가 아닌 ‘이혼 이야기’라는 점에서 너무도 역설적인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부 관계의 파탄을 포착한다는 점에서는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스릴러처럼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달리 ‘결혼 이야기’가 블랙 유머에 치중하며 상대적으로 낙천적이라는 차이는 있습니다.
뉴욕 VS LA
찰리와 니콜은 각각 미국의 동서부를 대표하는 대도시 뉴욕과 LA로 대조를 이룹니다. 찰리는 인디애나 출신이지만 뉴욕에서 자주성사한 예술인입니다. 반면 니콜은 LA에서 배우 생활을 시작했으며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LA에 안착하고 싶어 합니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뉴욕을 사랑하는 찰리와 널찍한 LA에 가족이 있는 니콜은 성격이 극과 극인 두 대도시를 각각 상징합니다. 즉 두 사람의 마음의 거리는 4,500km에 달하는 뉴욕과 LA의 거리만큼 멀어져 있습니다.
장단점 모두 갖춘 인간적 캐릭터
찰리와 니콜은 나름의 귀책사유가 있습니다. 찰리는 니콜이 동침을 거부하자 한 차례 외도를 했습니다. 니콜은 이메일 해킹을 통해 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찰리가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해 니콜에 소홀했지만 니콜도 소통 노력이 부족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남과 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묘한 균형을 맞추려 안간힘을 씁니다.
두 사람은 배우자 및 부모로서 노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혼을 결정하고도 찰리와 니콜은 부모 노릇을 하기 위해 힘씁니다. ‘결혼 이야기’의 최대 매력은 장점이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단점도 있는 인간적인 생생함을 두 주인공에 그대로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극중에도 언급되지만 1년 안팎으로 지속된 이혼의 힘겹고 고통스러우며 때로는 추악해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묘사합니다. 노아 바움백 감독과 스칼렛 요한슨의 이혼 경험도 반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니콜의 어머니 샌드라가 니콜보다는 찰리의 편을 들고 니콜 몰래 변호사를 소개시켜주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사위 사랑은 장모’라지만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샌드라로는 1980년에 개봉된 걸작 코미디 ‘에어플레인!’의 히로인 줄리 해거티가 연기해 세월의 무게를 절감하게 합니다.
두 번의 압도적 클라이맥스
‘결혼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두 차례입니다. 첫째, 찰리와 니콜이 참석한 가운데 찰리의 변호사 제이(레이 리오타 분)와 노라가 살벌한 대리전을 벌이는 법정 장면입니다. 부부의 치부가 공적 석상에서 까발려진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도 웃음을 유발합니다.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레이 리오타는 로라 던과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선보입니다. 그는 등장 분량이 많지 않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를 과시합니다. 레이 리오타의 대표작인 1990년 작 ‘좋은 친구들’에 함께 출연했던 로버트 드니로와 조 페시는 최근 공개된 또 다른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둘째, 찰리가 LA에 마련한 작은 집에서 그와 니콜이 벌이는 언쟁입니다. 부드럽게 시작하는 대화는 결국 서로에 퍼붓는 극단적 저주로 치닫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나오는 명장면입니다.
아담 드라이버-스칼렛 요한슨 대표작 될 듯
‘결혼 이야기’는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에게 프랜차이즈 영화의 캐릭터가 아닌 배우로서 기억될 대표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배우는 잘 생기거나 예뻐 보이지 않는 현실의 생생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스칼렛 요한슨은 여배우를 연기하지만 다른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에 비하면 미모를 앞세우지 않습니다. 각본이 탄탄한 가운데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니 영화의 완성도는 보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종반에는 니콜이 써놓고 읽기를 거부했으며 뒷부분이 생략되었던 찰리의 장점에 관한 리스트의 마지막 내용이 밝혀집니다. 읽기가 서투른 헨리가 읽다 결국 찰리가 남은 부분을 읽게 됩니다. 이혼을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서 니콜의 절절한 감정이 뒤늦게 드러나고 헨리도 울컥합니다.
결말에는 두 주인공이 이혼 절차가 완료되어 적응한 모습이 제시됩니다. 니콜에게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고 찰리는 LA에 정착합니다. 따지고 보면 니콜이 표면적으로 찰리에 요구했던 LA 정착이라는 조건을 이혼 뒤에야 찰리가 받아들인 셈이 되어 씁쓸하고 아이러니컬합니다.
‘결혼 이야기’는 ‘남녀가 결혼해 평생 행복하게 살았다’는 평범한 문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혼은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출발하지만 감정은 영원하지 못하고 유효 기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야기’는 대사가 압도적으로 많아 때로는 한글 자막을 따라가기 버거운 장면들도 있습니다. 넷플릭스의 영화라 ‘아이리시맨’과 더불어 블루레이의 발매 가능성이 희박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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