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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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 워 - 지독한 사랑의 서사시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빅토르(토마스 콧 분)는 지방 민요를 발굴한 뒤 악단을 조직해 순회공연에 나섭니다. 빅토르는 단원 줄라(요안나 쿨리그 분)와 사랑에 빠집니다. 공산당 간부에 의해 악단이 체제 찬양 노래를 부르게 되자 빅토르는 줄라를 설득해 베를린에서 망명을 시도하려 합니다.

‘이다’에 이은 5년만의 후속작

‘콜드 워’는 2013년 작 ‘이다’의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의 5년 만의 신작입니다. 폴란드 출신인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은 흑백 영화 ‘이다’를 통해 20세기 중반 이념이 빚어낸 폴란드의 냉전의 참혹한 상흔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제목부터 ‘냉전’을 뜻하는 ‘콜드 워(Cold War)’ 역시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이념의 산물인 냉전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 남녀의 비극을 묘사한 흑백 영화입니다. 검정색 배경에 검정색 의상을 착용한 두 주인공만이 도드라진 포스터는 ‘콜드 워’가 흑백 영화임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 두 주인공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이다’와 ‘콜드 워’는 공통점이 많습니다. 러닝 타임이 짧은 가운데 설명이 많지 않습니다. 비극적 사건도 건조하고 담담하게 묘사해 마치 중편 소설을 읽는 듯한 깔끔함과 간결함이 돋보입니다. 바스트 숏을 제시할 때 천정을 비롯한 후면의 배경을 높고 넓게 잡아 인물이 작아 보이는 촬영 기법은 인간의 주체성보다는 미약함에 방점을 둔 듯합니다.

결말은 주인공이 길 위에서 맞이하는 점도 동일합니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지만 길 위에서 영화를 끝내는 연출은 인간이 정처 없이 떠도는 존재라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다’는 며칠, ‘콜드 워’는 10여 년으로 극중 시간은 차이는 있으나 결국은 로드 무비라는 점도 동일합니다.

인간은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기 마련입니다. 깨달음에 이은 인물의 자살, 즉 죽음도 두 작품이 동일하게 제시합니다. 갈 곳이 사라진 이의 극단적 선택입니다.

여주인공이 전형적인 미녀는 아니지만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다’의 타이틀 롤을 연기했던 아가타 트루제부초우스카는 성(聖)과 속(俗)을 오가는 수녀를 연기해 신비스러움을 뿜어낸 바 있습니다. ‘콜드 워’의 여주인공 줄라를 연기한 요안나 쿨리그는 속박되지 않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를 연기합니다. 배우를 매력적으로 포착해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연출자의 능력은 소중합니다.

이다’에서 이다의 이모이자 서슬 퍼런 판사 출신으로 출연했던 아가타 쿠레사는 ‘콜드 워’에서 이념 선전을 위한 예술에 반대하다 초반에 퇴장하는 악단의 책임자로 출연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가장 큰 비중을 지닌 남성 등장인물은 음악에 종사합니다.

10년에 걸친 지독한 사랑

이다’와 ‘콜드 워’는 차이점도 분명합니다. ‘이다’는 성과 속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주제의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랑, 즉 속의 허무함을 강조하며 성의 손을 들어줍니다. 반면 ‘콜드 워’는 사랑에 목숨까지 불사른 두 주인공을 묘사합니다.

10여 년 동안 폴란드에서 출발해 베를린, 파리,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폴란드로 되돌아오는 서사시 속 두 주인공의 선택은 비합리적이며 때로는 비열하기도 하지만 그래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 ‘사랑’의 지독한 본질이기도 합니다.

초반부에 빅토르는 줄라가 자신의 동향을 상부에 보고한다는 사실을 고백하자 분노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빅토르는 파리에 망명 중인 폴란드 출신 예술인들에 대해 폴란드 대사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폴란드에 돌아가게 됩니다. 비열한 행위를 저질러서라도 줄라와 재회하겠다는 일념입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빅토르는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손을 다쳐 피아노 연주가 불가능해진 가운데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에 내몰립니다. 줄라가 힘을 써 빅토르는 수용소에서 풀려납니다.

이미 두 번의 결혼을 했던 줄라가 “성당에서 하지 않은 결혼은 무효”라는 대사를 지키듯 빅토르와 성당의 폐허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살하는 귀결은 속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성을 잊지 않습니다. ‘콜드 워’에서도 종교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눈과 귀 모두 즐거워

‘콜드 워’는 두 주인공이 모두 예술가인 음악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비극을 노래한 폴란드의 지방 민요가 합창곡을 거쳐 자본주의 대중음악인 재즈로 변모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흑백 영상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까지 ‘콜드 워’는 눈과 귀가 모두 즐겁습니다.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감독이 자신의 부모에 바치는 문구 ‘For My Parents’를 엔딩 크레딧에 앞서 삽입합니다. 엔딩 크레딧에는 본편에 삽입되지 않았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느린 템포로 연주되어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콜드 워’는 ‘남의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은 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며 이산가족조차 교류가 불가능합니다. 극중에서 폴란드 공산당 세력이 이념을 앞세워 국민을 억압하듯 한반도에는 21세기에도 이념을 앞세워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20세기말에 청산된 이념 갈등이 한반도에는 언제 사라질지 안타깝습니다.

이다 - 생과 사, 성과 속은 동전의 양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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