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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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북핵 위기 정점에서 평화를 부르짖다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훈 소설 원작, 황동혁 감독의 2017년 작 영화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청의 침략으로 남한산성에 농성한 인조(박해일 분)와 신하, 그리고 민초들을 묘사합니다. 성내에 고립된 가운데 혹한과 군량 부족에 시달리자 최명길(이병헌 분)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반면 김상헌(김윤석 분)은 결사항전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놀라운 절제의 미학

‘남한산성’은 독특한 사극입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순간 중 하나인 병자호란을 포착합니다. 인조가 청 태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삼전도의 굴욕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결말은 관람 이전부터 누구나 예상하고 있습니다. 중간 과정에 카타르시스도 거의 제공하지 않습니다. 상업 영화로서 근본적으로 오락성이 떨어지는 소재입니다.

황동혁 감독은 잔혹한 역사의 현장을 담담히 묘사하는 절제를 뚝심으로 밀어붙입니다. 소위 ‘국뽕’으로 각색하거나 눈물 빼는 신파를 앞세웠다면 손익분기점 달성에 성공했을 지도 모릅니다. 비참함으로 가득한 상황 속에서도 몇몇 장면의 영상미는 동양화를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긴 듯 아름답습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은 차분함 속에서도 비범함을 잊지 않으며 비극적 정서를 북돋습니다.

139분으로 러닝 타임은 길지만 최명길과 김상헌의 치열한 논쟁 등 주요 장면에서 압축적 대사를 빠르게 대비시키는 연출과 편집으로 긴장감을 배가시킵니다. ‘말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최근 개봉된 ‘공작’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최명길과 김상헌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합니다. 이병헌과 김윤석은 정통 사극의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대사 처리로 입체적 인물을 구체화합니다. 주화파 최명길은 생존에 방점을 둔 현실론, 척화파 김상헌은 이상에 방점을 둔 명분론을 일관되게 주장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최명길에 힘이 약간 더 실리기는 하지만 최명길과 김상헌, 두 라이벌에 균형 및 개연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합니다. 정치적 입장 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중상모략하지 않고 품위를 지키기에 ‘남한산성’은 우아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최명길이 자신의 집 앞마당의 눈을 손수 빗자루로 쓰는 가운데 김상헌이 방문하고 두 사람이 예의를 다해 맞절하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서로에 대한 예우는 물론 유교적 예법의 아름다움을 상징해 깊은 울림을 자아냅니다.

하지만 김상헌이 자결하는 결말은 역사적 사실과는 다릅니다. 삼전도의 굴욕 이후 김상헌은 물론 명과 내통했다는 이유로 최명길까지 청에 끌려가 옥고를 치릅니다. 철저한 명분론자인 김상헌이 민초들과 접한 뒤 ‘왕정 및 신분제 폐지’를 암시하는 대목은 비현실적인 판타지입니다.

인조도 어리석기만 한 인물은 아닌 듯 묘사되는데 박해일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분제의 폐해

‘남한산성’이 비참한 영화인 이유는 청의 침략을 받아 임금이 굴욕을 당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한산성’이 포착하는 당시 조선 사회의 숱한 문제점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신분제입니다. 극중에는 대장장이 형제 날쇠(고수 분)와 칠복(이다윗 분), 뱃사공의 손녀 나루(조아인 분), 그리고 청의 앞잡이가 된 통역사 정명수(조우진 분)가 등장합니다.

날쇠는 9년 전 정묘호란에서 아내와 딸을 잃었습니다. 날쇠는 국가로부터 받은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국가는 날쇠와 유일한 혈육 칠복의 목숨마저 요구합니다. 김상헌은 청에게 길을 알려주겠다는 뱃사공(문창길 분)을 살해한 뒤 천애고아가 된 나루를 맡게 됩니다. 정명수는 “노비인 나는 조선에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청의 앞잡이가 된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들과 대비되는 집권 세력의 대표자는 영의정 김류(송영창 분)입니다. 그는 백성보다는 기득권의 안위를 중시합니다. 자신은 성 밖으로 나서지 않은 채 300 병사를 전쟁터로 내몰아 전멸시킵니다. 처음에는 김상헌의 척화론을 지지하지만 전세가 불리해지자 최명길의 주화론을 지지해 일관성을 상실합니다.

북핵 위기 연상시킨 ‘남한산성’

백성과 기득권의 뚜렷한 대조는 표면적으로는 조선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던 성리학이 원인인 것처럼 보입니다. 포위된 산성 안에서 정초에 명에 제사를 지내는 어이없는 장면은 성리학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남한산성’ 속 조선이 21세기의 대한민국의 현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당대의 파국의 유일한 원인은 성리학이 아닙니다.

현재 팍팍한 삶에 매몰된 국민 대다수는 평화를 원하지만 9년간 집권 세력이었으며 여전히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은 대북 강경론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총을 들고 목숨을 걸고 나가 싸우려 하기는커녕 병역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실소마저 유발합니다. 성문 위에 눌러앉아 300 병사를 죽음으로 내몬 김류와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회 민주주의’와 ‘인민 민주주의’가 그러하듯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그 어떤 단어를 붙여도 민주주의는 변질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자유 민주주의’라는 변질된 개념을 앞세워 ‘자신들만의 자유’를 부르짖습니다. 박정희가 유신으로 영구 집권을 획책하며 부르짖은 ‘한국적 민주주의’도 ‘자유 민주주의’의 동의어입니다. 조선의 성리학과 20세기 중반 이후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죽음으로 내몰며 기득권에 복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한산성’의 흥행 실패는 2017년 10월 개봉 당시 절정에 달했던 북핵 위기를 직접적으로 연상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의 ICBM 실험이 극에 달한 가운데 트럼프와 김정은의 가시 돋친 설전이 오가던 순간 ‘남한산성’을 개봉되었습니다. 2017년 위기의 현실을 빼닮은 고통스런 역사를 옮긴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고역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황동혁 감독의 연출 의도였다 해도 말입니다.

허울 좋은 명분론만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남한산성’은 웅변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된 평화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역사를 통해 재확인하는 주제의식입니다. 병자호란 당시의 척화파는 물론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해 민족사를 후퇴시킨 흥선 대원군과 위정척사파의 잘못을 21세기에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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