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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선의는 악의에 패한다’, 염세적 세계관의 극치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월남전 참전군인 출신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 분)가 우연히 돈 가방을 손에 넣자 잔혹한 암살자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분)가 그의 뒤를 추적합니다. 퇴직을 앞둔 보안관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분)은 사건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돌발적인 폭력 미학

코맥 매카시의 원작 소설을 코엔 형제가 영화화한 2007년 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재개봉되었습니다. 1980년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에서 갱단의 거액의 돈 가방을 놓고 펼쳐지는 추격전을 묘사한 하드보일드 스릴러입니다.

시간적 배경 당시의 영화들처럼 전개는 빠르지 않으나 묵직합니다. 액션과 폭력 장면이 돌발적이며 폭발적이라 긴장감 넘칩니다. 20세기 후반 폭력 미학의 대가였던 샘 페킨파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음악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오히려 사실성을 배가시켜 극한의 서스펜스로 몰아갑니다.

미국과 멕시코의 접경 지역에서 펼쳐지는 마약 전쟁을 포착한 하드보일드 스릴러라는 점에서는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집필한 2부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의 전편처럼 연상되기도 합니다. 세 작품 모두 조쉬 브롤린이 출연했습니다.

하비에르 바르뎀, 압도적 카리스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세 명의 등장인물 르웰린, 쉬거, 에드에게 양적으로는 비교적 공정하게 배분합니다. 하지만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한 쉬거의 카리스마가 “이래도 아카데미상 안 줄 거야?”라고 윽박지르듯 너무도 압도적입니다. 우스꽝스런 단발머리와 속삭이는 말투, 살인무기 산소통까지 기괴함으로 가득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그리고 남우조연상(하비에르 바르뎀)을 수상했습니다.

쉬거는 악 그 자체입니다. 동전 던지기로 사람의 목숨을 유희하는 그는 서양의 악마, 혹은 동양의 저승사자의 현신입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잔혹한 복불복’임을 강조하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쉬거는 술, 여자, 도박, 마약에는 무관심합니다. 르웰린의 거처인 트레일러에 잠입한 뒤에는 냉장고에서 술이 아닌 우유를 꺼내 마십니다. 살인, 즉 악의 관철이 유일한 목표이며 돈 가방은 단지 과정에 불과한 듯한 금욕적 인물입니다. 거액을 어디에 쓰려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복불복은 쉬거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르웰린의 아내 칼라 진(켈리 맥도날드 분)을 살해한 뒤 돌아가던 쉬거는 교통사고로 인해 왼팔의 뼈가 튀어나오는 중상을 입습니다. 그럼에도 쉬거는 냉정을 잃지 않고 사건 현장으로부터 유유히 사라집니다. 그는 1980년의 허구적 인물이지만 악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는 공포의 암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고독한 총잡이, 초라한 최후

쉬거의 존재로 인해 르웰린과 에드의 체감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습니다. 퇴역 군인 르웰린도 총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직감적이며 영리한 인물이지만 쉬거에는 족탈불급입니다. 르웰린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홀로 싸우다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할리우드 서부극에서 타협을 모르는 전형적 캐릭터 ‘고독한 총잡이(Lone Gunman)’는 대부분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과 달리 르웰린은 최후 장면조차 제대로 묘사되지 않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초라하게 퇴장당합니다. 그리고 르웰린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돈 가방은 결국 쉬거가 손에 넣습니다.

따지고 보면 르웰린은 돈 가방을 손에 넣은 뒤부터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그는 갱단의 총격전 와중에 중상을 입고 유일하게 생존한 이를 위해 식수를 챙겨가다 뒤를 밟힙니다. 만일 르웰린이 사건 현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면 돈 가방을 챙긴 채 누구에게도 추적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르웰린 부부는 모두 살해됩니다. 돈을 챙기겠다는 욕심과 죽음을 앞둔 자를 위한 선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최악의 결과로 귀결됩니다.

선의는 악의에 이용될 뿐입니다. 멕시코 갱단은 르웰린의 은둔 장소를 알아내기 위해 칼라 진의 수다스런 어머니(베스 그랜트 분)에 친절을 베푸는 척 접근합니다. 이로 인해 은둔처가 노출된 르웰린은 살해됩니다. 상업 영화에서 수다스런 캐릭터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칼라 진의 어머니는 살해되지 않고 지병인 암으로 죽지만 소위 ‘입을 잘못 놀려’ 사위와 딸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순수한 악의는 승리하고 어설픈 선의는 패배한다는 점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맥 매카시와 코엔 형제의 염세적 세계관의 화학적 결합의 극치입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아이러니로 가득합니다.

무기력한 공권력

에드는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지만 항상 조금씩 늦거나 어긋납니다. 퇴직을 앞둔 불만스러운 보안관이라는 점에서 에드는 테일러 쉐리던이 각본을 집필한 ‘로스트 인 더스트’의 마커스에 계승된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에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퇴직을 기다릴 뿐입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비정한 제목처럼 공권력의 무기력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카슨 웰스는 극중에서 유일하게 쉬거를 겁내지 않는 인물입니다. 르웰린이 숨겨둔 돈 가방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 등 나름의 능력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담대함과 자신감을 뽐내던 카슨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쉬거에 목숨을 구걸하다 살해되는 맥거핀 캐릭터로 귀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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