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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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레볼루션 - 장대한 영웅 서사시의 종장 영화

'매트릭스' 한정판 dvd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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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리로디드 -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받는 운명

‘매트릭스’ 시리즈의 완결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매우 혼란스런 영화입니다. 1편인 ‘매트릭스’가 느부갓네살의 승무원들인 네오, 모피어스, 트리니티의 모험담이었다면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인류의 유일한 도시인 시온의 존망 앞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사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스케일은 커질 수 밖에 없으며 압도적인 적 앞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시온의 인간들의 모습은 마치 ‘반지의 제왕 - 두 개의 탑’에서의 헬름 협곡 전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숭고하고 장렬합니다.

센티넬과의 싸움에 최전선을 맡고 있는 APU는 사실 병기의 차원에서 보면 넌센스입니다. 다루고 움직이기에는 너무 둔하고 무거운 무기라는 것이죠. 파일럿을 보호하는 장치가 전혀 없으며 탄약의 재장전도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인간의 몫이라는 것도 어이없는 설정입니다. 기계들을 일시에 무력화시키는 강력한 병기인 EMP가 인간이 다루는 기계에도 치명적인 무력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또한 한계가 명백합니다. ‘맨 인 블랙’ 따위에 등장하는 가볍지만 어마어마한 성능의 무기는 어째서 ‘매트릭스’ 시리즈에서는 없는 것일까요. 그것은 싸움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 수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매트릭스 안에서 아무리 멋진 옷을 입고 싸운다 해도 머신 건 이상의 무기(예를 들어 바주카 포나 미사일)는 등장하지 않죠. 네오와 스미스, 그리고 요원들에게는 총이 먹히지 않기 때문에 주먹과 발로 치고 받으며 몸으로 싸운다는 것도 인간적인 싸움의 방식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입니다. 특히 장대비 속에서 벌어지는 네오와 스미스의 대결은 매트릭스 세계 안에서의 대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처절해 더욱 인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워쇼스키 형제는 기계가 수행하는 현대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기계가 수생하는 대량 살상에 대한 거부감은 더미 시스템을 거부하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의 이카리 신지나, 파일럿이 필요 없는 모빌 돌 시스템을 거부하다 롬펠러 재단에 의해 좌천되는 ‘신기동전기 건담 윙’의 트레즈 크슈리나다 등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스미스는 마치 인간처럼 분노와 기쁨을 느끼며 바이러스처럼 매트릭스 안에서 무한 복제 및 증식을 시작합니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에게 인간이 바이러스처럼 증식한다며 혐오했던 스미스 자신이 그와 똑같이 되어버린 것이죠. 이처럼 예외 없이 매트릭스 안의 모든 인간(혹은 인간과 같은 존재 - 오라클, 세라프, 사티 등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같은 존재이니까요.)을 자신과 같이 만드는 스미스는 독재, 혹은 획일화를 상징합니다. 백인인 스미스와 대립 관계있는 유사 가족인 오라클과 세라프, 사티가 각각 흑인, 중국인, 인도인으로 다양성을 상징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상당히 정치적인 작품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긴 합리성과 법칙을 강조하고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아키텍트는 백인 남성이고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예언을 강조하고 인간의 선택을 신뢰하는 오라클이 흑인 여성이라는 설정 역시 워쇼스키 형제의 계산된 설정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아키텍트와 오라클의 관계는 서양의 합리주의와 동양의 오컬트(오라클은 서양의 백인 여성이지만 그녀의 경호원인, 최상급의 천사라는 이름의 세라프가 중국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부장과 모성의 대립의 메타포입니다.

네오는 트리니티와 함께 니오베의 함선이었던 로고스에 탑승해 기계들의 도시로 향합니다. 기계와 처음으로 접촉을 시도하는 인간인 네오와 트리니티가 탑승하는 배의 이름이 로고스(이성)이라는 점도 의미 심장합니다. 기계와 동식물 등 이 세상 모든 대상들과 차별되는 인간만의 특성인 이성이라는 함선에 네오가 탑승했다는 설정 역시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스미스의 무한 복제에 맞서는 네오는 기계의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흥정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인간과 기계, 현실과 매트릭스의 대립이라는 단순한 이분법 구도에서 탈피합니다. 비록 기계가 센티넬을 앞세워 인류를 공격하지만 기계가 만든 세계인 매트릭스도 무한히 복제되는 스미스라는 바이러스를 스스로 퇴치할 힘을 상실하고 맙니다. 기계가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스미스라는 요원에 의해 파멸을 눈앞에 두고, 기계와 매트릭스의 유지를 위해 만든 요원으로 하여금 제거하도록 했던 적인 인간(네오)에 의한 구원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매우 아이러니컬합니다. 결국 스미스라는 공적(公敵)으로 인해 인간과 기계는 힘을 합칠 수 밖에 없게 되고 전쟁의 끝과 평화는 어느 한쪽이 완전히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공존하는 것임을 설파합니다.

구세주 네오가 인간과 기계를 동시에 구원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한 수많은 구세주 신화의 반복입니다. 하지만 네오와 트리니티의 자기 희생이 돋보이는 것은 ‘매트릭스’ 시리즈가 헐리우드의 상업 영화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애 같은 액션 영화라고 치부했던 ‘매트릭스’ 시리즈가 주인공의 죽음으로 전형적인 헐리우드의 해피 엔딩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매트릭스’의 커멘터리에서 ‘남자 주인공(키아누 리브스 - 네오 역)이 여자 주인공(캐리 앤 모스 - 트리니트 역)보다 더 예쁘다’며 비아냥 거렸던 영화 평론가의 커멘터리도 있었지만 네오가 베인의 몸을 뒤집어 쓴 스미스와의 결투에서 눈을 잃으며 잘생긴 얼굴을 화면에 등장시키는 것을 포기하고 화상으로 흉한 얼굴을 드러내는 것 역시 ‘매트릭스’ 시리즈가 평범한 헐리우드 영화가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이로써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장대한 영웅 서사시 혹은 오페라의 종장(終章)으로 승화됩니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에서는 ‘매트릭스 리로디드’ 촬영 이후 사망한 클로리아 포스터를 대신해 오라클로 메리 앨리스가 등장합니다. 분명 용모는 다르지만 목소리나 연기가 비슷해 크게 어색하지는 않더군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는 쿵푸 솜씨만 선보였던 세라프가 쌍권총을 잡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애니매트릭스‘ 의 ‘어느 소년 이야기’에 처음 등장했던 키드의 본격적인 활약, APU 부대의 리더인 미후네(아마도 ‘7인의 사무라이’와 ‘라쇼몽’의 대배우인 일본의 미후네 도시로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요.)의 비장함과 이명세의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차용한 듯한 네오와 스미스의 빗 속의 크로스 카운터 등 ‘매트릭스 레볼루션’은 볼거리로 가득합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매트릭스’에서는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 차 의연했으며 ‘매트릭스 리로디드’에서는 일본도 휘두르는 멋진 솜씨를 보여주었던 모피어스가 해머 호의 파일럿이 되자 니오베 옆에서 초조함을 드러내고 비중이 줄어든 것 정도 일까요. 하긴 그로 인해서 당당한 니오베가 더욱 두르러져 제이다 핀켓 스미스라는 여배우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코 아쉽다고만은 할 수 없군요.

이로써 ‘매트릭스’ 3부작과 ‘애니매트릭스’에 관한 장황한 리뷰가 모두 마무리되었습니다만 제가 쓴 ‘매트릭스’에 관한 글들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조차 ‘닫혀진 해석’이 될까 커멘터리를 삼갔으니 제 글이 정확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 역시 앞으로 ‘매트릭스’ 시리즈를 다시 감상할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게 되겠지요. 그만큼 '매트릭스‘는 감자탕의 돼지뼈의 구석구석에 붙은 수많은 살점들처럼 할 말이 많은 작품이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함을 스스로 입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글

  • FAZZ 2005/01/02 19:40 # 삭제

    글 잘 봤습니다. 역시 공감하는 부분도 많구요 ^^. 단 리로딧에 비해 레볼루션은 마지막에 인간과 기계의 공존이라는 주제 처리에 있어서 조금은 어설펐다고 할까요? 리로딧에서 철학적인 물음과 의문을 레볼루션에서는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 디제 2005/01/03 13:29 #

    FAZZ님/ '매트릭스 레볼루션'이 좀 애매한 결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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