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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 하루키를 ‘한국 현실 비판’으로 녹여낸 이창동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소설가 지망생 종수(유아인 분)는 어린 시절 친구 해미(전종서 분)와 우연히 만나 동침합니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부유한 남성 벤(스티븐 연 분)과 함께 귀국합니다. 해미를 사랑하는 종수는 벤과 삼각관계를 형성합니다.

‘영화광’ 소설가 원작을 소설가 출신 감독이 영화화

‘과작의 거장’ 이창동 감독이 2010년 작 ‘’ 이후 8년 만에 ‘버닝’으로 귀환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직접 각색해 연출했습니다. 소설가 출신의 이창동 감독이 영화광 하루키의 소설을 영화화해 거장과 거장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버닝’은 매우 독특한 조합입니다. 데뷔작 ‘초록물고기’부터 ‘’에 이르기까지 이창동 감독의 영화들은 완성도에 있어 ‘소설을 보는 것 같다’는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하루키의 소설 중 영화화된 경우는 2004년 작 ‘토니 타키타니’와 2010년 작 ‘노르웨이의 숲(한국 개봉명 ‘상실의 시대’)’이 있었습니다. ‘토니 타케타니’는 비교적 호평을 받았지만 하루키의 대표작을 트란 안 홍 감독이 연출한 ‘노르웨이의 숲’은 혹평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버닝’은 ‘노르웨이의 숲’은 물론 ‘토니 타키타니’를 충분히 뛰어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대마초 흡연과 방화가 취미인 부자인 ‘그’, 팬터마임을 배우며 아무데서나 잠드는 ‘그녀’, 그리고 ‘그’의 방화 대상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 ‘나’의 ‘기묘한 삼각관계는 헛간을 태우다’로부터 ‘버닝’에 고스란히 계승되었습니다.

‘그’와 벤을 각각 ‘위대한 개츠비’로 부르는 것도 동일합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하루키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로 일본어로 직접 번역 출간한 바 있으며 ‘노르웨이의 숲’에도 언급됩니다.

‘그’와 벤은 물질적 풍요가 지나쳐 권태와 공허에 빠진 나머지 가벼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위악적 범죄자이자 하루키적 안티테제입니다. 원작으로부터 인용된 벤의 대사처럼 방화와 대마초 흡연은 범죄입니다. ‘댄스 댄스 댄스’의 고탄다, ‘노르웨이의 숲’의 나가사와를 연상시킵니다. 가을을 거쳐 겨울로 향하는 계절적 배경도 동일합니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요소들

‘헛간을 태우다’와 ‘버닝’은 차이도 있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의 ‘나’는 30대의 유부남 소설가이지만 ‘버닝’의 주인공 종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20대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헛간을 태우다’는 제목 그대로 헛간이 방화의 대상이지만 ‘버닝’은 비닐하우스로 변형되었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에서 ‘나’는 ‘그’보다 연상이지만 ‘버닝’은 벤이 종수보다 연상입니다.

벤은 화장실에 해미의 손목시계를 비롯해 여자들의 장신구를 모아놓았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에는 없는 설정입니다. 바람둥이 벤이 해미를 비롯해 여자들을 살해한 증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댄스 댄스 댄스’의 고탄다는 키키를 살해했습니다. 벤이 아무런 연고도, 헛간도 없는 호수를 찾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장면은 그가 해미. 혹은 다른 여성의 사체를 호수에 유기했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하루키의 단편 소설의 매력은 시작과 끝이 불분명해 그야말로 뚝 떼어놓은 듯한 생뚱맞음에 있습니다. 하루키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인 고독과 비현실성을 상징합니다. ‘버닝’은 진실과 거짓, 실존과 부재, 죽음과 실종, 현실과 비현실적의 경계 허물기 등 하루키 소설 특유의 요소는 물론 형이상학적 주제의식까지 영상으로 옮겼습니다. 148분의 러닝 타임 속에서 충분한 완결성과 설득력까지 갖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습니다.

우물, 고양이, 자위행위

‘헛간을 태우다’에 포함되지 않은 하루키 소설의 요소들도 ‘버닝’에 포함되었습니다. ‘태엽 감는 새’의 중요 소재인 우물이 그러합니다. 우물의 모티브는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돌무덤으로 변형되었습니다.

우물은 종수와 해미의 관계가 시작된 출발점이라 해미가 주장합니다. 해미가 어린 시절 우물에 빠져 몇 시간 동안 갇혔을 때 종수가 발견해 구출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수는 우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합니다.

해미의 가족들은 우물이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마을 노인은 ‘없었던 것 같다’며 애매하게 말합니다. 종수의 어머니는 ‘마른 우물이 있었다’며 매우 구체적으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자취를 감춘 해미가 과연 실존하는지 부재하는지 끝내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우물의 존재 역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엇갈리고 있습니다. 인간 및 사물의 실존 혹은 부재는 인간의 기억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종수가 해미의 집에서 목격한 적 없었던 고양이 ‘보일’은 해미가 실종된 뒤 벤의 집에서 발견됩니다. 벤이 키우게 된 고양이가 보일이라는 확증은 없으나 종수가 ‘보일’이라 부르자 종수의 품에 안깁니다.

고양이는 ‘헛간을 태우다’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양을 쫓는 모험’에 등장한 바 있으며 ‘태엽 감는 새’의 중요 요소였습니다. 돌발 행동이 잦고 의뭉스런 고양이는 종잡을 수 없는 여심, 즉 종수가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해미의 마음과 행방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발신자 불명의 전화 역시 ‘태엽 감는 새’에 제시된 바 있습니다.

해미가 종수의 집 뜰에서 해질녘 상의를 벗고 춤을 추는 장면은 ‘버닝’의 중반 클라이맥스입니다. ‘헛간을 태우다’에는 ‘그녀’가 춤을 추는 대목은 없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충동적이고 섹시한 단발머리 여성이라는 점에서 해미는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를 비롯해 하루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와 닮았습니다. ‘버닝’에서 해미가 춤을 추는 해질녘에 날아가는 새들은 해미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종수는 해미와의 섹스를 잊지 못해 섹스 당시 보았던 남산의 서울타워를 바라보며 자위행위를 합니다. ‘헛간을 태우다’에는 자위행위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풍경을 바라보며 자위행위 하는 인물은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하루키 소설의 다양한 요소들이 ‘버닝’에 포함된 것은 이창동 감독이 하루키 소설을 충분히 접하고 이해한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트란 안 홍의 졸작 ‘노르웨이의 숲’도 호평한 바 있는 하루키는 ‘버닝’에 대해 어떤 평을 내릴지 궁금합니다.

이창동이 녹여낸 한국의 현실

‘버닝’은 일본 소설이 원작이지만 매우 한국적으로 각색되어 영상화되었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의 헛간은 ‘버닝’에서 한국 농촌을 상징하는 비닐하우스로 바뀌었습니다.

종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데 중반에 제시되는 창고 소집 장면은 청년에 대한 기업의 뻔뻔스런 ‘갑질’과 악질적 군대 문화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해미가 거주하는 서울 남산 기슭 후암동 원룸은 햇빛조차 들지 않아 청년의 힘겨운 삶을 압축합니다.

종수가 거주하는 포천의 집에는 북한의 대남방송이 들려옵니다. 쉽게 풀리지 않는 냉전과 분단의 현실을 반영했습니다. 하지만 벤은 대남방송에 대해 무지한 탈 한국적 인물입니다. ‘벤’이라는 이름부터 그가 교포임을 암시하며 재미교포 출신 배우 스티븐 연의 캐스팅 역시 의도적으로 해석됩니다. 반면 종수는 토속적 이미지의 이름입니다.

종수와 벤의 엄청난 계급 격차는 ‘헛간을 태우다’에 없었던 이창동 감독의 주제의식이 반영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양극화를 두 인물에 집약했습니다.

종수는 축사가 딸린 촌락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청년입니다. 반면 벤은 강남의 고급 맨션에 거주합니다. 종수의 집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채이지만 벤의 집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종수는 가재도구와 같은 낡은 트럭을 운전하지만 벤은 대사로 차종이 강조되듯 포르쉐를 운전합니다.

종수는 음식을 대충 만든 뒤 파리를 쫓으며 먹지만 벤은 파스타를 요리하며 거창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종수는 TV를 시청하며 식사해 끼니를 때우는 느낌이 강하지만 벤은 요리 중에 재즈를 들으며 즐깁니다. 종수는 해미와의 술자리에서 소주와 국산 맥주를 마시지만 벤은 와인을 선호합니다.

매끈한 도회남녀들이 가득한 벤의 술자리와 파티에서 종수는 개밥에 도토리입니다. 종수는 변변한 친구조차 없지만 벤은 친구가 많습니다. 돈이 없으면 친구를 사귈 여력도 없습니다.

종수는 해미가 상의를 홀딱 벗고 춤추자 ‘창녀 같다’며 폭언할 정도로 보수적이며 윤리적입니다. 폭언 직후 해미는 자취를 감춥니다. 종수는 해미와의 섹스를 잊지 못해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원룸 침대 밑에 준비된 콘돔이 말해주듯 해미에게 섹스는 일상화되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종수는 해미를 둘러싼 벤과의 삼각관계를 견디지 못하는 반면 바람둥이이자 윤리에 얽매이지 않는 벤은 삼각관계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에는 주인공 ‘나’를 비롯한 세 명의 등장인물 중 누구도 기묘한 삼각관계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는 인물이 없어 ‘버닝’과는 다릅니다.

‘초록물고기’와 공통점

‘버닝’은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물고기’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가족의 무게에 짓눌린 경기도 농촌 거주 저소득층 청년으로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은 없습니다. 그는 순수하며 진지한 인물입니다. 섹스 및 삼각관계 끝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매달리다 파국에 빠집니다. 두 작품 모두 문성근이 출연했습니다.

주인공은 난생 처음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며 클라이맥스 역시 칼로 사람을 찌르는 살인 장면입니다. 클라이맥스의 살인 장면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중심으로 다뤄집니다. ‘버닝’의 결말에서 종수가 벤을 칼로 찔러 살해하는 장면은 죽음을 맞이하는 조연 벤의 고통스런 표정 중심으로 포착한 뒤에야 범행을 저지른 주인공 종수의 황망한 표정이 중점적으로 포착됩니다.

종수는 어린 시절 비닐하우스가 불타는 모습을 목격하는 꿈을 꾸지만 ‘버닝’이라는 제목과 직결되는 현실의 방화는 결말에야 묘사됩니다. 종수는 벤을 살해한 뒤 포르쉐를 함께 불태우고 알몸으로 도주합니다. 벤이 자신의 대사처럼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는 장면은 끝내 제시되지 않습니다.

저소득층의 외로우며 고지식한 주인공, 섹스, 범죄, 죽음 등의 요소는 이창동 감독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관통하는 요소들입니다. 나름의 분명한 잣대를 보유한 윤리적 인물이 우연한 만남과 사건을 통해 범죄에 발을 들이고 파멸에 이르는 줄거리는 이창동 감독의 특유의 서사입니다. 진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그러합니다.

호흡이 긴 장면 연출과 조명이 최소화되어 어둡고 사실적인 영상은 이창동 감독의 전매특허입니다. 해미가 춤을 추는 장면과 종수가 벤을 살해하는 장면 등은 롱 테이크로 촬영되었습니다. ‘버닝’은 148분으로 러닝 타임이 길지만 친절한 영화는 아닙니다. 비닐하우스처럼 빈 곳을 관객 스스로 메워야 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대중성은 이창동 감독의 전작에 비해 더욱 약화되었습니다.

유아인 눈빛 연기 인상적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마다 빼놓을 수 없는 주목거리입니다. 유아인은 첫 등장부터 어벙한 표정을 짓지만 해미가 벤과 함께 귀국하는 공항 장면부터 눈빛이 돌연 총기를 발합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남자의 본능적 경계심과 삼각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냅니다.

스티븐 연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은 공허한 부유층 청년을 훌륭히 연기했습니다. ‘헛간을 태우다’의 ‘그’에는 결여된 사실성이 스티븐 연이 맡은 벤에게는 있습니다. 전종서는 독특한 개성의 여성 캐릭터를 몸을 사리지 않고 연기합니다. 섹스 장면과 춤 장면의 노출 연기도 자연스럽습니다.

초록물고기 - 한국적인 사실주의 느와르
오아시스 - 가슴 먹먹한 사랑, 그리고 희망
밀양 - 구원은 종교적 용서가 아닌 세속적 사랑으로부터
시 - 삶과 죽음, 행복과 고통 그 동전의 양면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lain 2018/05/24 10:24 # 삭제

    영화를 보고도 이해가 안되어서 몇 몇 해석들을 찾아봤는데, 이 해석글이 가장 좋네요. 하루키 소설 뿐만 아니라 감독의 전작들의 연계성을 모두 정리하여 해석해놓으시니, 읽는 입장에선 정말 때땡큐 인데, 많은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잘 읽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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