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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리맨 - 흥미로운 세계관, 축구에 함몰되다 애니메이션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석기 시대 마을의 소년 더그는 청동기 도시의 습격으로 마을을 잃고 감금됩니다. 더그는 청동기 도시의 최고 인기 스포츠인 축구 경기로 마을을 되찾는 내기를 합니다. 축구 재능을 숨겨온, 청동기 도시의 소녀 구나가 더그를 비롯한 석기 시대 마을 사람들을 돕습니다.

신석기 vs 청동기

아드만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닉 파크 감독이 연출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얼리맨’은 석기 시대 마을과 청동기 도시의 축구 경기를 소재로 합니다. 인류의 축구의 기원은 선사 시대 영국 맨체스터 지방에 떨어진 운석을 차고 놀면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입니다. 축구의 재미에 푹 빠진 당시 인류는 축구를 즐기는 벽화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얼리맨’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세계관입니다. 인류가 공룡과 공존하고, 이후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이 공존하며, 청동기인은 철기 미 보유를 제외하면 중세적 문명 수준을 갖춰 다양한 시대가 혼합된 양상입니다. 오버 테크놀로지로 스팀 펑크의 청동기 버전과 같습니다.

청동기인의 신석기 마을 침략 및 점령은 제3세계의 식민지화를 추구했던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하지만 신석기인의 청동기 문명 접촉에 대한 문화 충격은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주인공 더그가 청동기 도시를 처음 접하는 장면에서 문화 충격이 일부 다뤄질 뿐 더그 외의 신석기인들은 청동기 문명에 대한 놀라움이나 충격을 거의 표현하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문화의 우열은 가릴 수 없다는 의도가 포함된 듯하지만 비현실적입니다.

축구에 모든 것이 함몰되다

‘얼리맨’의 서사는 축구 경기로 신석기인의 명운이 결정되는 초반 시점에 이미 진부한 것으로 굳어집니다. 약자인 주인공 측이 우월한 상대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스포츠 소재 픽션 영상물의 빤한 전개와 결말에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축구가 전면에 나서면서 흥미로운 설정은 모두 블랙홀처럼 축구에 함몰됩니다. 한국의 극장 배부용 전단지 어디에도 ‘축구’의 ‘축’자는커녕 축구공이나 축구경기장이 제시되지 않은 채 숨겨진 이유로 보입니다.

‘얼리맨’은 영국인의 축구 사랑을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축구의 종주국이 영국임을 강조합니다. 신석기인들이 붉은색 상의와 흰색 하의의 유니폼을 갖춰 입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오마주를 바칩니다.

영국 여왕을 암시하는 청동기 도시의 여왕 우피파까지 축구에 열광합니다. 우피파(Oofeefa)의 이름은 UEFA(유럽축구연맹)와 FIFA(국제축구연맹)를 합친 듯합니다.

청동기 도시의 축구팀 레알 브론지오는 레알 마드리드를 연상시키는 작명입니다. 레알 브론지오의 에이스로 독일식 액센트로 말하는 위르겐(Jurgen)은 독일의 축구 영웅 위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의 이름에서 따온 듯합니다. 위르겐의 독특한 머리 모양을 비롯한 외모는 선수 시절의 클린스만보다는 아르헨티나의 ‘바람의 아들’ 클라우디오 카니자를 연상시킵니다.

아기자기함-기발함 부족

더그와 맷돼지 호그놉의 콤비는 닉 파크의 전작 ‘월레스와 그로밋’의 타이틀 롤 월레스와 그로밋의 콤비처럼 인간과 동물 콤비입니다. 인간 캐릭터는 좌충우돌하는 반면 동물 캐릭터는 영리하게 중심을 잡는다는 공통점이 계승됩니다.

월레스와 그로밋’에서 그로밋의 맹활약이 재미를 보장했던 것에 비하면 ‘얼리맨’의 호그놉은 비중이 적어 아쉽습니다. 닉 파크 감독이 직접 목소리를 연기한 호그놉이나 양념 역할을 맡은 토끼 및 식인 오리의 비중이 더욱 컸다면 보다 흥미로웠을 것입니다. 서두에 등장하는 공룡 두 마리는 엔딩 크레딧 말미에 재등장합니다.

‘얼리맨’은 아드만의 전작들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지만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기자기함이나 기발한 상상력은 오히려 약화되었습니다. 개별 장면의 연출도 참신함이 부족합니다.

월래스와 그로밋 - 거대 토끼의 저주

http://twitter.com/tominodij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