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KBO 야매카툰/kt wiz 야매카툰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tominodijeh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전쟁과 평화 3 - 나폴레옹, 버려진 모스크바 입성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3권의 주인공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3(이하 ’3권)’은 1812년 여름부터 초가을을 집중적으로 묘사합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침략해 스몰렌스크를 점령하고 보로디노에서 격전을 치른 뒤 텅 빈 모스크바에 입성합니다. ‘전쟁과 평화 1(이하 ‘1권’’과 ‘전쟁과 평화 2(이하 ‘2권’)’에서 단편적으로 묘사된 실존 인물 나폴레옹이 3권에서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언행과 심리가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3권의 주인공은 나폴레옹입니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을 나르시시즘에서 빠진 거만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는 빌나에서 발라쇼프에 친서를 맡겨 나폴레옹의 침략을 막으려 합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발라쇼프 접견을 며칠 동안 늦춘 뒤 빌나를 점령한 뒤에야 접견합니다. 접견 장소는 알렉산드르가 빌나에 친서를 맡긴 베니히센의 별장입니다. 나폴레옹이 발라쇼프, 그리고 알렉산드르를 능욕하기 위해 동일한 장소를 기다림 끝에 선택한 것입니다.

보로디노 전투는 쿠투조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의 격렬한 저항으로 극심한 소모전으로 귀결됩니다. 나폴레옹은 왜 전투가 뜻대로 전개되지 않는지 의아해합니다. 수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전이 없었던 가운데 귀족들이 떠나 버려진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왜 모스크바가 공동화되었는지 다시 의아해합니다.

톨스토이, 나폴레옹 어릿광대 취급

나폴레옹을 3권의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톨스토이의 역사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스스로가 역사를 만든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개인이 역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전쟁이란 병법의 천재가 계획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으며 병사들의 기세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나폴레옹을 역사의 법칙에 무지한 어릿광대 취급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반면 쿠투조프와 안드레이는 톨스토이의 전쟁 및 역사관을 체득한 인물들입니다. 쿠투조프는 전쟁을 주도하기보다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겸허한 백전노장입니다. 그는 주위의 비협조와 싸우며 러시아의 국운을 건 보로디노 전투에서 최고의 저항을 이끌어낸 지휘관으로 묘사됩니다. 안드레이는 병사들의 사기가 가장 중대한 요인임을 7년 전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중상을 입으며 깨달았습니다.

영웅사관과는 정반대의 지점에 톨스토이는 위치합니다. 경제력이 가장 중요한 현 시점의 전쟁관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민중사관으로 분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의 역사관은 운명론에 가깝습니다. 즉 신이 좌우하는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에 나폴레옹은 한갓 도구, 즉 소모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숱한 우연이 겹치는 전쟁의 결과가 역사가 되기에 인간이 좌우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이분법 선택하지 않은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러시아를 선, 프랑스를 악’으로 묘사하는 손쉬운 이분법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전쟁과 평화’는 발표된 뒤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걸작으로 자리 잡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러시아군이 보로디노에서 영웅적 희생을 아끼지 않는 용맹함과 애국심을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스크바의 성난 시민들이 프랑스와 내통한 혐의의 베레샤긴을 살해하는 잔혹한 장면을 통해 군중심리를 비판하기도 합니다.

모스크바에 입성한 프랑스군 랑발 대위와 피예르의 교감을 통해 프랑스인도 악인이 아님을 묘사합니다. 랑발은 자신이 귀족 집안 출신이라며 나폴레옹의 군대에 몸담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를 피예르에 고백하기도 합니다.

몽상가 피예르, 좌충우돌

3권의 허구적 등장인물 가운데 주인공은 피예르입니다. 한동안 나타샤를 짝사랑하다 마음을 접은 그는 보로디노의 전장 한복판은 물론 텅 빈 모스크바에서 좌충우돌합니다. 민간인인 그가 보로디노 전장 한복판을 마음대로 누빌 수 있었던 이유는 귀족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니콜라이의 부대에서는 군의관이 아내를 대동한 채 참전해 포장마차에서 동침하는 진풍경도 묘사됩니다. 150년 전 전쟁은 현대전과는 판이했습니다.

1권에서 나폴레옹을 숭배했던 피예르는 보로디노에서 참혹한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프랑스 장교와 난투극까지 벌인 뒤 모스크바로 돌아와 나폴레옹 암살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채 모스크바 화재 속에서 소녀를 구출하고 프랑스군의 모스크바 여성 성폭행을 막으려다 방화범으로 누명을 쓰고 체포됩니다. 피예르는 정의감으로 가득한 몽상가답게 희대의 전투와 수도 함락의 극단적 상황에서 돌출행동에 나섭니다.

안드레이와 나타샤, 극적 재회

안드레이가 피예르와 절친한 사이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러시아 귀족 사회의 사교계와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나폴레옹을 숭배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점도 공통분모입니다.

하지만 충동적인 이상주의자이자 몽상가인 피예르와 달리 안드레이는 냉정한 현실주의자입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 안드레이는 냉소적인 면모까지 엿보입니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안드레이는 두 번째 중상을 입습니다. 안드레이는 수술을 받는 와중에 옆에서 아나톨이 다리를 절단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나타샤를 유혹해 안드레이와 파혼하게 만든 아나톨이 인과응보를 면치 못합니다. 안드레이는 마음속으로 아나톨을 용서합니다.

후방으로 이송된 안드레이는 모스크바를 떠난 나타샤와 재회합니다. 3권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나타샤는 용서를 구하고 안드레이는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해 두 사람의 재결합이 암시됩니다. 나타샤의 헌신적 간호로 안드레이는 빠르게 회복합니다.

마리야-니콜라이, 첫눈에 반해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안드레이의 아버지 볼콘스키 공작은 딸 마리야와 피란하지만 도중에 사망합니다. 마리야는 아버지가 위독해 죽음을 앞두자 해방감을 느끼는 자신을 혐오합니다. 농민의 반란으로 마리야는 위기에 처하지만 니콜라이가 극적으로 출현해 반란을 진압하고 마리야를 구출합니다.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에 반합니다.

내성적이며 신앙심이 강한 마리야가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은 처음입니다. 볼콘스키가와 로스토프가가 겹사돈을 맺을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혀 나폴레옹에 심문을 당한 뒤 풀려난 라브루시카가 니콜라이를 보좌해 마리야를 구출하는 전개는 톨스토이가 왜 대문호인지 입증하는 듯합니다. 나폴레옹-라브루시카-니콜라이-마리야로 서사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개되어 놀랍습니다. 조연 인물 한 명이 중요 인물들을 훑고 지나가며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때문입니다.

독자 쥐락펴락 이야기 솜씨

톨스토이의 이야기꾼다운 면모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제2부 말미 보로디노 전투에서 안드레이는 포격으로 인해 중상을 입습니다. 안드레이는 아나톨의 다리 절단 수술을 목도하며 연적을 용서하지만 정작 안드레이의 자신의 수술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톨스토이가 언급을 회피합니다.

이어 피예르가 보로디노 전투를 참관하고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와중에 안드레이와 아나톨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고 언급해 톨스토이는 독자들을 쥐락펴락합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모스크바에 산 채로 도착하고 모스크바를 떠난 뒤 나타샤와 재회합니다. 톨스토이의 ‘낚시’인 셈입니다. 아나톨은 다리 절단 수술 후 후일담이 제시되지 않으나 ‘전쟁과 평화 4’(이하 ‘4권)에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나폴레옹 암살을 결심한 피예르는 카프탄을 입고 평민으로 변장합니다. 이어 카프탄을 입은 일부 러시아인이 쿠타피옙스키에 성문에서 뮈라의 프랑스군 선발대를 공격하지만 반격당해 몰살당합니다. 몰살된 러시아인들 중에 혹시 피예르가 포함된 것은 아닌지 톨스토이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의문을 남깁니다.

결국 피예르는 프랑스군 공격이나 나폴레옹 암살을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투옥됩니다. 3권의 결말이 피예르의 억울한 체포 및 투옥이라 독자들은 최종권인 4권을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랑발의 중요한 역할이 예상됩니다.

오탈자 및 번역의 의문점

3권에는 오탈자와 더불어 번역 상의 의문을 많이 남깁니다. 9페이지의 ‘주요 등장인물’에서 뮈라는 ‘나폴레옹의 매제’로 설명되었으나 33페이지에서는 그를 나폴레옹의 ‘처남’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뮈라는 나폴레옹의 누이 카롤린과 결혼해 나폴레옹의 매제가 옳습니다.

64페이지 ‘큰 마을이나 부락’에서 ‘부락’은 일본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마을’로 순화되었습니다. ‘부락’을 앞선 ‘큰 마을’에 대비되는 ‘작은 마을’의 의미로 번역했다면 ‘큰 마을이나 부락’은 ‘크고 작은 마을’로 번역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416페이지 ‘현관 건너편 그슬린 딴채’에서 ‘그슬리다’는 ‘불에 겉만 약간 타게 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햇볕이나 불, 연기 따위를 오래 쬐어 검게 되다’를 뜻하는 ‘그을리다’가 ‘그슬리다’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현관 건너편 그을린 딴채’가 더 어울릴 듯합니다.

로스토프가의 맏사위인 베르그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471, 472, 473페이지에는 베르그가 로스토프 백작을 ‘아버지’, 472, 474페이지에는 베르그가 로스토바 백작 부인을 ‘어머니’로 부르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각각 ‘장인어른’ 혹은 ‘장인님’과 ‘장모님’이 옳습니다.

친족 사이의 호칭이 어색한 번역은 568페이지에도 있습니다. 로스토프가에 얹혀사는 소냐는 로스토바 백작 부인을 ‘엄마’라고 부릅니다. 소냐가 로스토프 백작의 조카임을 감안하면 ‘숙모’가 정확한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쟁과 평화 1 - 전쟁 둘러싼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
전쟁과 평화 2 - 나타샤, 여주인공으로 급부상

안나 카레니나 - 진 주인공은 레빈과 19세기 러시아 사회

http://twitter.com/tominodij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