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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갑자기 - 김영애 열연 돋보이는 심리 스릴러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자 유진(윤일봉 역)은 기괴한 목각인형을 소유한 고아 소녀 미옥(이기선 분)을 가정부로 데려옵니다. 유진의 아내 선희(김영애 분)는 유진이 미옥과 바람을 피우지 않나 의심합니다.

‘하녀’ 서사 판에 박아

‘깊은 밤 갑자기’는 고영남 감독 1981년 작 공포 영화입니다. 상류층 가정에 온 젊은 가정부로 인해 안주인이 의심과 강박에 시달리다 못해 가정부를 살해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완전무결한 듯했던 상류층 가정의 평화가 하녀의 존재로 인해 깨지고 하녀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1960년 작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판에 박았습니다. 가장과 하녀의 혼외 섹스, 그리고 안주인의 분노로 인한 삼각관계도 고스란히 계승했습니다.

하녀의 죽음이 원인이 추락사인 것도 동일합니다. 단층집에 사는 대부분의 중하류층 가정이었다면 하녀를 고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추락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추락사는 하녀의 신분 상승 실패, 즉 상류층의 일원이 되는 것의 실패를 상징합니다. 하녀가 죽자 누구도 슬퍼하지 않는 귀결도 동일합니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2010년 임상수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었으나 ‘깊은 밤 갑자기’가 리메이크에 비해 훨씬 독창적이며 흥미진진합니다.

각본-연출 돋보이는 심리 스릴러

‘하녀’가 타이틀 롤 하녀 시점의 서사라면 ‘깊은 밤 갑자기’는 하녀는 대상화되고 안주인이 주인공이 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선희는 미옥이 처음 도착하자 목욕을 시켜주며 호의를 보입니다. 젊고 풍만한 미옥의 몸에 경계보다는 선망이 앞섭니다. 두 여자의 첫 만남의 순간은 스킨십으로 출발해 동성애를 연상시킬 정도로 우호적입니다.

하지만 무당인 어머니의 유품으로 미옥이 간직한 목각인형 탓인지 선희의 정신은 혼미해지기 시작합니다. 선희는 미옥과 유진의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발생한 일들인지, 아니면 선희의 착각에서 비롯된 허상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관객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열린 각본입니다.

선희는 남편과 가정을 지키겠다는 일념 속에서 광기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남편과 친구 등이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아 선희는 더욱 심한 집착에 시달립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정신과 진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동일합니다.

현 시점에서 보면 ‘깊은 밥 갑자기’는 피(血)를 비롯한 특수 효과, 촬영, 편집 등이 엉성하며 공포 및 고어의 수위도 높지 않습니다. 반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선희의 심리 묘사는 매우 치밀합니다. 각본과 연출이 힘이 두드러지는 심리 스릴러입니다.

롤리타 콤플렉스 엿보여

‘깊은 밤 갑자기’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는 대조적 이미지의 두 여배우의 열연입니다. 개봉 당시 30세였던 고 김영애는 성숙하고 단아한 이미지를 앞세워 상류층 부인을 연기합니다.

극중 19세 미옥을 연기한 이기선은 반복적인 가슴 노출 연기를 불사합니다. 전형적 미인은 아니지만 육감적인 백치미를 자랑합니다.

에로틱 호러의 요소도 갖춘 ‘깊은 밤 갑자기’는 전두환 군사 정권의 우민화의 일환인 3S(Screen, Sex, Sports) 정책에 편승했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 에로 영화들 상당수가 현 시점에서 보면 노출 수준이나 섹스 묘사는 허접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깊은 밤 갑자기’의 19세 미옥의 목욕과 섹스 장면의 반복은 롤리타 콤플렉스가 직접적으로 반영되어 이채롭습니다.

1981년 상류층의 삶

‘깊은 밤 갑자기’는 등장인물의 숫자가 적으며 공간적 배경은 유진과 선희 부부의 3층집과 그 주변에 집중되어 연극적입니다. 클라이맥스는 김영애의 1인극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진은 3층집과 승용차를 보유한 대학교수입니다. 그의 집 안에는 당시 일반 가정에는 거의 없었던 가스레인지와 욕조 및 샤워기를 갖춘 목욕탕이 있습니다. 상류층임을 강조하며 동시에 미옥의 노출 장면을 위한 장치입니다.

유진의 기호는 상류층답게 양주와 커피입니다. 당시에는 남편이 아내에 반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유진은 선희에 존댓말을 합니다. 그의 직업인 대학교수 겸 학자를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입니다. 동시에 외형적으로는 교양 있는 중년 남성이 10대 후반의 가정부와 섹스하는 불륜을 부각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선희는 강남 뉴코아로 보이는 번듯한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하는 반면 당시 보다 일반적이었던 재래시장이나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장면은 없습니다. 역시 선희의 계급을 암시합니다.

남아흥업 로고, 토에이 표절?

최근 발매된 ‘깊은 밤 갑자기’는 리마스터링 덕분인지 후시 녹음 대사가 또렷이 잘 들립니다. 그로 인해 배우들의 입 모양과 대사가 맞지 않는 경우도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당시 배우들의 대사는 현재의 서울말, 즉 표준어에 비해 북한말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부자연스럽습니다. ‘깊은 밤 갑자기’의 개봉 이후 4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사이 한국 사회가 급변했음을 방증합니다.

영화 본편에 앞서 서두에 제시되는 남아흥업주식회사의 로고는 파도치는 암석 해변의 동영상입니다. 당시 일본 영화 개봉이 금지된 상황에 편승해 토에이의 로고를 표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블루레이] ‘깊은 밤 갑자기’ 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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