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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 추억, 삶과 죽음을 초월하다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단 하나의 기억

‘원더풀 라이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각본, 연출, 편집을 맡은 1998년 작입니다.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1995년 작 ‘환상의 빛’에 이은 두 번째 영화입니다.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저승에 가기 직전 일주일 동안 ‘시설’에 머물며 가장 좋았던 기억 단 하나를 선택한다는 줄거리입니다. 죽은 이들은 유년 시절, 음식, 사랑, 섹스, 전차 탑승, 비행(飛行) 등 다양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시설’의 사람들은 죽은 이들의 기억 선택을 상담 및 자료 제시를 통해 돕는 것은 물론 스태프가 되어 필름에 촬영합니다. 죽은 이들은 촬영된 동영상을 작은 극장에서 관람하며 저승으로 떠납니다.

흥미로운 세계관

‘원더풀 라이프’의 판타지적 세계관은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모치즈키(아라타 분)와 그를 짝사랑하는 시오리(오다 에리카 분) 등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죽은 이들과 3일 동안 상담합니다. 하지만 모치즈키 등의 정체는 무엇인지는 처음부터 제시하지 않고 아껴둡니다.

저승사자인 듯했던 모치즈키, 시오리 등의 정체는 ‘시설’에 온 뒤 단 하나의 기억을 선택하지 못해 저승으로 떠나지 못한 이들임이 밝혀집니다. ‘시설’은 구천, 혹은 림보 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죽은 이도 적지 않은 가운데 하나같이 자신의 죽음을 납득하고 인정하는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시설’을 떠나면 천국행이 예정되어 있다 해도 죽음에 분노하거나 안타까움을 표출하는 이가 전혀 없는 전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모치즈키는 외모는 젊지만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전사한 뒤 반세기 이상 ‘시설’에 머물렀음이 드러납니다. ‘시설’은 엄연히 요일, 계절, 연도의 개념이 존재하며 시간이 흐르지만 일단 죽은 자는 외모의 변화 없이 고정된다는 설정입니다.

시간적 배경은 겨울로 수시로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입니다. ‘시설’에도 봄이 오지만 극중 배경으로 겨울이 선택된 이유는 죽음의 다른 말인 외로움과 어울리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공간적 배경인 낡은 건물은 쓸쓸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985년 작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나(僕)’가 속한 ‘세계의 끝’을 연상시킵니다.

죽음 속의 삶, 삶 속의 죽음

모치즈키는 1945년 사랑하는 약혼녀 쿄코를 두고 전사했습니다. 모치즈키가 죽자 쿄코는 선을 봐서 와타나베(나이토 타케토시 분)와 결혼했습니다. 부부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으며 와타나베는 쿄코의 사망으로부터 3년 뒤 죽어 모치즈키와 조우합니다.

모치즈키는 와타나베를 배려하기 위해 자신이 쿄코의 약혼자였음을 끝내 숨깁니다. 하지만 생전에 쿄코로부터 모치즈키에 대해 들어와 그를 알아본 와타나베는 모치즈키의 배려에 감사 편지를 남긴 뒤 천국으로 향합니다. 생전의 인연을 죽어서 만난 셈입니다.

‘원더풀 라이프’의 반전은 모치즈키가 하나의 기억을 선택해 ‘시설’을 떠나는 결말입니다. 와타나베와의 만남에 자극받은 모치즈키가 선택하는 기억은 쿄코를 비롯해 생전의 것이 아닌 ‘시설’에서의 기억입니다. 그는 ‘시설’에 머물렀던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입니다.

모치즈키의 선택은 죽음 속의 삶, 삶 속의 죽음이기에 매우 중층적입니다.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전작 ‘환상의 빛’의 주제의식과도 상통합니다. 추억이란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불멸의 존재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모치즈키는 달을 바라보는 것을 즐깁니다. 그의 이름 ‘望月(もちづき)’는 ‘보름달’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의도적 작명으로 읽힙니다. 극중에 언급되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달의 모습처럼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삶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는 주제의식과도 통하는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원더풀 라이프’는 오락성은 부족합니다. 이제는 원숙미를 뽐내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에 비해서도 다소 지루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관객은 당연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인지, 그리고 망자들과의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사색하게 됩니다. 오늘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곱씹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 현지의 개봉명 ‘원더풀 라이프’는 한국에서도 유지되었으나 미국에서는 ‘After Life’로 바뀌었습니다. ‘Wonderful Life’가 지나치게 직접적 의미를 지닌 흔한 제목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올바른 역사관 돋보여

‘원더풀 라이프’의 또 다른 주목 요소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비디오테이프와 필름 등 영화와 관련된 요소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추억을 선택한 이들이 마지막 거치는 관문이 영화 제작과 관람이라는 설정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 대한 무한한 헌사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둘째, 일본 영화로서는 드문 올바른 역사관입니다. 모치즈키는 약혼녀를 두고 전사했습니다. 한 노인은 젊은 시절 일본군으로 참전했으나 미군에 저항하지 않고 항복한 뒤 밥을 얻어먹었던 경험을 행복한 기억으로 떠올립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냅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은 일본인 사이에 떠돌던 헛소문이 발단이 되었음을 명시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제대로 된 역사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환상의 빛 -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
아무도 모른다 - 사실적인 영상이 주는 서늘한 감동
하나 - 칼보다 붓, 복수보다 용서
공기인형 - 배두나의 파격적 노출이 안쓰럽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성장, 그것은 진정한 기적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 아들을 잃은 뒤에야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 그렇게 가족이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 감독 특유의 다층적이며 은유적 매력 부족
세 번째 살인 - 도스토예프스키 연상시키는 묵직함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Ryunan 2018/01/10 10:06 #

    3년 뒤 죽어 와타나베와 조우 >모치즈키와 조우 가 좀 더 맞을 것 같네요.

    보고나면 생각이 참 많아지는 영화에요.

    리뷰는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 디제 2018/01/10 10:22 #

    지적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 hammondog 2018/01/10 22:59 #

    잘 읽었습니다. 찾아서 보고싶네요.
    미국에서 제목을 바꾼 건 아마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하나인 "It's a Wonderful Life"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940년대 영화인데 아직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빼놓지 않고 공중파에서 방영해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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