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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 박종철-이한열이 만든 뜨거운 대한민국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긴박감 넘치는 탄탄한 스릴러

장준환 감독의 ‘1987’은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 사망으로부터 6월 9일 연세대생 이한열 피격까지 약 6개월의 실화를 모티브로 합니다. 경찰의 남영동 대공분실이 자행한 박종철 고문치사의 진실을 은폐하려는 전두환 군사정권과 이를 파헤치려는 민주화 세력 및 언론의 대립을 묘사합니다.

박종철(여진구 분) 죽음의 진실을 알리려는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의 조카인 신입 여대생 연희(김태리 분)는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만화 동아리 선배(강동원 분)와 가까워집니다. 마지못해 병용을 돕던 연희는 선배가 시위 도중 최루탄 피격으로 중상을 입었다는 보도를 접한 뒤 서울 광장의 민주화 시위에 동참합니다. 선배가 직접 그려 선물한 만화 속 연희의 시위 참여가 실행에 옮겨집니다. 선배의 정체는 최루탄 피격 후 한 달여 만인 7월 5일 숨진 이한열임이 밝혀집니다.

‘1987’의 전반부 주인공이 박종철이라면 후반부 주인공은 이한열입니다. 두 무고한 대학생의 죽음이 기폭제가 된 1987년 뜨거운 대한민국을 묘사합니다. 실화를 각색한 정치 영화로 다큐멘터리의 요소도 있지만 탄탄한 각본, 속도감 넘치는 편집, 그리고 장준환 감독의 빼어난 연출이 조화를 이뤄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로서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비교적 차분하게 연출되어 신파를 피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보다 많은 눈물을 쥐어짜려 했다면 이한열과 연희를 소위 ‘썸 타는’ 사이가 아니라 연인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조리가 판을 치던 시대에 항거하던 꽃다운 청춘의 억울한 죽음을 묘사해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듭니다.

화려한 캐스팅의 군상극

‘1987’은 군상극입니다. 한두 명의 엘리트가 세상을 바꾼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지 못한 숱한 이들이 힘을 합쳐 군사정권에 저항했음을 일깨웁니다. 민주화 운동에 무관심했던 가상 인물 연희가 시위에 동참하는 결말과 엔딩 크레딧의 뉴스 화면 속 넥타이 부대가 주제의식인 ‘시민 다수의 힘’을 강조합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사진으로만 등장하며 전두환은 4.13 호헌 조치 발표 동영상에 직접 등장합니다. 이부영(김의성 분), 최환(하정우 분), 김정남(설경구 분), 박처원(김윤석 분), 그리고 장세동(문성근 분) 등의 실존 인물은 배우들이 연기합니다. 최환과 장세동은 극중에서 ‘최 검사’와 ‘장 부장’으로 자막이 제시되지만 명패와 서류 등에서 본명이 등장합니다. 문성근의 아버지 문익환은 엔딩 크레딧 마지막의 이한열 장례식 기록 영상에 등장해 부자가 출연했습니다.

여진구는 안경 소품과 분장 덕분에 박종철과 흡사합니다. 강동원이 연기한 인물의 정체가 이한열이라는 사실은 결말까지 숨겨두는 세련된 연출을 선택합니다.

많은 숫자의 등장인물들은 조연에서 카메오까지 호화 출연진들로 채워집니다. 전술한 배우들 외에 박희순, 이희준, 고창석, 오달수 등도 출연했습니다. 치안총감으로는 6월 항쟁 당시 이한열이 재학 중인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우현이 연기했습니다. 조우진은 박종철의 삼촌 박월길로 출연해 조카의 부검 장면을 차마 지켜보지 못하는 강렬한 오열 연기를 선보입니다.

남영역 간판, 옥에 티

30년 전 실화를 포착한 만큼 ‘1987’은 시대상 재현에 노력했습니다. 잡지 ‘TV 가이드’와 ‘선데이 서울’이 중요 소품으로 등장하며 ‘선데이 서울’과는 방향성이 달랐던 성인 잡지 ‘건강 다이제스트’는 대사 속에서 언급됩니다. 당시 청순한 여배우의 대명사였던 김희애도 거론됩니다.

삼성의 미니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는 병용이 연희에 준 대학입학 선물입니다. 연희의 방에는 ‘스잔’의 가수 김승진의 사진이 걸려 있으며 연희는 유재하의 노래를 즐겨 듣습니다. 엔딩 크레딧에는 김태리와 강동원이 부른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 삽입됩니다.

옥에 티도 있습니다. 병용이 고문당하는 남영동 대공분실을 묘사하기 전 남영역이 제시되는데 간판이 1987년이 아닌 최근의 것입니다.

6월 항쟁, 미완의 혁명

‘1987’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와 1981년 부림 사건을 조명한 ‘변호인’의 후속편의 위치를 점합니다. ‘1987’에서 이한열이 연희에게 보여주는 ‘광주 비디오’는 ‘택시운전사’의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7년 6월 항쟁은 미완의 혁명입니다. ‘1987’의 결말의 자막이 제시하듯 전두환 군사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으나 그해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는 양 김의 분열로 전두환의 후계자이자 광주 학살 공범 노태우가 당선되었습니다. 김영삼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1990년 3당 합당으로 군사정권세력은 생명을 연장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연말 촛불 혁명이 기폭제가 되어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되고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하지만 적폐 청산에 대한 저항은 조직적이며 강력합니다. 민주화를 부정한 세력은 내각제 혹은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되치기’를 꾀하고 있습니다. 안심은 이릅니다. ‘1987’에서 신문 기자로 대표되는 언론은 군사정권과 투쟁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현재의 언론은 재벌, 사법부와 더불어 적폐 권력의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모차까지 참여해 축제와 같았던 촛불 혁명과 달리 6월 항쟁은 최루탄 및 지랄탄, 그리고 소위 ‘청카바’로 상징되는 백골단의 폭력과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이 횡행하던 불의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시위 현장은 이한열의 죽음이 말해주듯 전쟁터였습니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최루탄 때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실에 울분해 눈물을 쏟았습니다.

당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1987’은 동북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가 피로 이룩된 것임을 새삼 절감케 하는 좋은 교과서가 될 것입니다. 4.19 혁명,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과 마찬가지로 촛불 혁명 역시 미완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987’에서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웠지만 현재의 태극기는 이미지가 변질되었습니다. ‘1987’에서 고문 경찰이 박종철에 물고문을 자행하며 부르는 애국가와 마찬가지입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좋은하루 2018/01/07 11:48 #

    좋은글 잘 봤습니다
  • 2018/01/15 19:14 # 삭제

    이제 슬슬 수꼴루스 뉴밸 애들이 몰려올 타이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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