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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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 ‘딸기와 붉은 벨벳’ 테스의 핏빛 운명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79년 작 ‘테스’는 토마스 하디의 1891년 작 소설 ‘Tess of the d'Urbervilles’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각본 및 연출을 맡아 영화화했습니다. 19세기 말 영국 남부를 배경으로 기구한 운명을 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젊은 여성 테스(나스타샤 킨스키 분)가 주인공입니다.

테스, 성폭행과 출산

생활능력이 없는 주정뱅이 존(존 콜린 분)은 자신의 혈통이 귀족 가문이었다는 제보를 들은 뒤 먼 친척이라는 자의적 판단으로 더버빌 가문에 맏딸 테스를 보냅니다. 실은 더버빌 가문도 졸부 스토크 가문이 이름을 사들인 것에 불과합니다.

미모가 두드러지는 테스는 더버빌 가문의 장남 알렉(레이 로슨 분)에 성폭행당한 뒤 집으로 돌아와 출산합니다. 허명에 불과한 가문에 대한 아버지의 미망이 딸을 불행으로 내몬 것입니다.

존은 테스가 상류층 남성에 의해 순결을 잃을 것을 예상하거나 오히려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존은 원하던 말(馬)을 알렉으로부터 선물 받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팔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존에게 가문이란 명예와는 전혀 무관하며 단지 돈이었던 것입니다.

알렉은 첫 만남부터 테스에 집적댑니다. 그는 딸기를 따서 테스의 입안에 넣어줍니다. 망설이던 테스는 딸기를 받아먹습니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붉고 도톰한 입술이 부각되며 알렉에 의해 테스가 순결을 강탈당할 것을 노골적으로 암시합니다. 딸기는 구약성서의 선악과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알렉의 경제적 지원 약속에도 불구하고 테스는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집으로 돌아 출산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내 사망합니다.

엔젤과 결혼, 첫날밤 파경

테스는 엔젤(피터 퍼스 분)의 목장에서 새 출발합니다. 엔젤은 목사 집안의 막내아들이지만 부모와 떨어져 농민들과 동고동락하는 소박한 인물입니다. 천사를 뜻하는 ‘Angel’이라는 이름처럼 현실을 거부하는 고귀한 이상주의자처럼 묘사됩니다.

엔젤과 테스는 사랑에 빠져 결혼합니다. 결혼에 앞서 테스는 몇 번이고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려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합니다. 결혼식에서 손을 심하게 떠는 목사와 이를 지켜보며 불안해하는 테스의 클로즈업은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할 것을 암시합니다.

첫날밤에 앞서 테스가 용기를 내 과거를 고백하자 엔젤은 크게 실망해 각 방에서 첫날밤을 보낸 뒤 테스를 친정으로 돌려보냅니다. 테스를 만나기 전 런던에서 연상의 여인과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며 혼전관계를 고백한 엔젤이지만 아내의 성폭행 피해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정신적 순결보다는 육체적 순결에만 집착합니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했던 엔젤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이름 ‘Angel’은 그의 위선을 역설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합니다.

로만 폴란스키, 인간의 위선 고발

로만 폴란스키는 ‘테스’에서도 섬세한 심리 묘사를 바탕으로 특유의 인간의 위선 고발에 충실합니다. 인간의 위선은 시공을 초월한 본질입니다.

성직자들도 위선적입니다. 테스는 아이의 장례식을 위해 목사에 도움을 청합니다. 하지만 목사는 마을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사생아를 도울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테스는 홀로 아이의 무덤에 십자가를 설치합니다. 성직자 집안인 엔젤의 부모와 형제들도 위선적 인간들로 묘사됩니다.

로만 폴란스키의 연출 성향은 어머니를 아우슈비츠에서 잃고 임신한 아내 샤론 테이트가 살해되었으며 본인이 미국에서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수사 도중 도주한 전력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테스’의 서두에는 1969년 살해된 샤론 테이트에 바치는 자막 ‘to sharon’이 삽입됩니다.

딸기와 벨벳 의상의 붉은색

엔젤과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테스는 친정으로 돌아오지만 존이 사망한 뒤라 일가족은 집을 잃고 노숙자 신세가 됩니다. 알렉은 테스에 접근해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약속합니다. 테스는 알렉과 동거합니다.

알렉이 테스를 버리지 않은 것은 그녀의 미모 때문이겠지만 그의 솔직함은 엔젤의 위선에 비해서는 나은 측면이 있습니다. 알렉은 테스의 가족들까지 부양합니다. 테스와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엔젤과 알렉은 단순한 선악 구분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입체적 남성 캐릭터입니다.

식민지를 다녀온 엔젤이 뒤늦게 테스의 거처를 찾아내 두 사람은 재회합니다. 알렉과 동거 중인 테스에 엔젤이 낙담한 채 돌아서자 테스가 알렉을 살해한 뒤 엔젤과 함께 도피행각을 시작합니다.

알렉 살해 후 테스는 붉은색 벨벳 의상을 착용합니다. 긴 러닝 타임 동안 원색의 의상은 거의 제시되지 않은 가운데 당돌하게 등장한 테스의 붉은색 의상은 그녀가 저지른 살인, 즉 피를 상징합니다. 동시에 알렉이 따서 먹인 딸기의 붉은색과도 상통합니다. 두 개의 붉은색 소품은 테스의 핏빛 운명을 상징합니다.

‘테스’는 1981년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영국 상류층과 농민 계급의 의상 재현도가 매우 뛰어납니다.

남성 중심 사회의 희생양

테스는 스톤헨지에서 경찰에 검거됩니다. 그에 앞서 엔젤은 테스에 스톤헨지를 ‘이교도가 제물을 바치던 장소’로 설명합니다. 테스가 남성 중심의 봉건적 사회에서 희생양이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스톤헨지는 영국 남부 윌트셔에 소재하고 있지만 ‘테스’의 스톤헨지 장면은 파리 외곽에 모형을 세워놓고 촬영되었습니다. ‘테스’의 모든 촬영은 프랑스에서 소화되었습니다. 영국 남부에 19세기의 풍광이 남아 있는 곳이 드물었기 때문이지만 로만 폴란스키가 미국으로의 압송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경찰에 압송되는 테스의 뒷모습에 그녀가 교수형에 처해졌다는 자막이 삽입됩니다. 만일 현재의 사법 체계였다면 테스의 성폭행 피해가 정상 참작되어 사형이 선고되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테스는 성 차별의 희생자입니다. 21세기 여성의 권익은 상대적으로 신장되었지만 갈 길은 멉니다.

‘테스’는 의상 못지않게 시대상 재현도 훌륭합니다. 중세적 수준의 농기구부터 대형 탈곡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구들과 함께 19세기 말 농민의 고통스런 삶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멋을 잔뜩 부리며 농민 여성에 수작을 부리는 귀족 남성과의 계급 격차가 선명합니다. 남녀 차별 못지않게 지배 및 피지배 계급 차별도 두드러집니다.

전원 풍경 아름다워

주인공의 불행한 최후와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묘사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극중의 전원 풍경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으며 특히 안개 속을 말달리는 사냥하는 남자들의 등장 장면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테스’는 아카데미 촬영상까지 3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테스’의 촬영 당시 17세였던 나스타샤 킨스키는 고전적이면서도 뇌쇄적인 미모를 자랑합니다. ‘테스’ 이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으로 스타덤에 오릅니다.

[블루레이] ‘테스’ 한정판

차이나타운 - 거대자본 비판한 필름느와르 걸작
피아니스트 - 한 사내의 처절한 전쟁 생환기
유령 작가 - 구글링으로 범인잡는 엉성한 스릴러
대학살의 신 - 교양 벗어던지고 좌충우돌!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노타입 2017/12/15 07:46 #

    성폭력 혐의가 끊이지 않는 감독의 인간위선고발 작품이라니, 여러모로 메타적이네요. ㅎㅎ 암튼 나스탸샤 킨스키는 정말 이름부터 외모처럼 대체불가의 매력이 있던 배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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