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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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청춘의 우정, 사랑, 배신 묘사한 걸작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샤오쓰(장첸 분)는 우연히 알게 된 소녀 밍(양정이 분)과 가까워집니다. 밍의 남자친구이자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임홍명 분)가 도피를 마치고 돌아오지만 라이벌 조직 217파에 의해 살해됩니다. 밍과 사귀게 된 샤오쓰는 퇴학이 빌미가 되어 밍과 멀어지게 됩니다.

1961년 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91년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재개봉되었습니다. 크라이테리언에 의해 4K로 복원된 소스로 러닝 타임 237분의 대작입니다. 허니의 사망 직후 휴식 시간 10분이 삽입됩니다. 기나긴 러닝 타임과 살인에 휘말리는 주인공, 그리고 청소년 범죄 조직을 소재로 한 성장 영화라는 점에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간적 배경은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이 대만에 정부를 수립한지 12년이 지난 1961년입니다. 성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이자 터전이었던 대륙에 대한 향수로 가득해 신세 한탄을 일삼습니다. 공무원인 샤오쓰의 아버지(장국주 분)는 광저우 출신으로 어머니(금연령 분)와 상하이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반면 대만에서 태어난 청소년들은 대륙에 대한 그리움은 없는 대신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청소년들은 과격한 폭력 조직을 결성해 불안을 해소하려 합니다. 세대차이가 두드러집니다.

학교, 폭압적 공간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당대의 시공간적 풍경이 매우 뚜렷합니다. 일본도, 일본 가요, 일본인의 사진 등 일본의 잔재가 남아 있으며 총기류를 청소년이 만질 수 있을 정도로 중일 전쟁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콘서트에 앞서 국민의례가 진행되는 모습은 1980년대 후반까지 한국 사회에 남아있었던 군사정권의 잔재인 국기강하식을 연상시킵니다. 학교 또한 폭압적인 공간으로 교사들은 교화보다는 고압적인 방식으로 학생들을 통제하려 할 뿐입니다.

폭력이 횡행하는 삭막한 학교를 배경으로 청소년의 성장을 잔혹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정, 사랑, 질투, 배신이 뒤엉키는 전개도 동일합니다. 유교 문화권 하의 부모들의 교육열도 비슷합니다.

2007년 사망한 에드워드 양의 마지막 영화인 2000년 작 ‘하나 그리고 둘’ 역시 학교를 배경으로 한 소년의 성장과 사랑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개성 뚜렷한 인물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4시간에 육박하는 긴 러닝 타임, 정적인 카메라 워킹과 롱 테이크, 그리고 절제된 배경 음악에도 불구하고 유머 감각을 갖춰 흥미진진합니다. 등장인물의 숫자가 매우 많은 군상극이지만 각자의 개성이 매우 뚜렷해 여운이 오래 남습니다.

샤오쓰와 그 형제들은 서로 닮은 이가 없을 정도로 제각각입니다. 과묵한 주인공 샤오쓰는 글쓰기와 영화 연출에 관심이 있습니다.

샤오쓰의 큰 누나(왕연 분)는 성숙한 멋쟁이이며 영어에 능통합니다. 집안의 둘째인 샤오쓰의 형(장한 분)은 내기 당구에 심취해 돈을 탕진하지만 샤오쓰만큼은 지키기 위해 누명쓰기를 자청합니다. 중반까지는 존재감이 미미한 둘째 누나(치앙시우청 분)는 클라이맥스에서 샤오쓰를 기독교로 귀의시켜 범죄와 절연하려 노력합니다. 막내 여동생(뢰범운 분)은 초등학생으로 아직 철이 없습니다.

샤오쓰의 절친한 친구 캣(왕계찬 분)은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한 팝에 심취한 소년입니다. 캣의 존재로 인해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당시 전 세계를 풍미했던 엘비스 프레슬리 열풍을 상기시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영어 원제 ‘A Brighter Summer Day’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 ‘Are You Lonesome Tonight?’의 가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학생 샤오마(담지강 분)는 군 고위 장성인 아버지를 든든한 뒷배로 지니고 있는 소년입니다. 폭력 조직의 소년들은 물론 성인들까지 누구도 샤오마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풍족한 샤오마의 가정환경과 동네 식료품점에 빚을 지고 있는 샤오쓰 집안, 그리고 천식에 시달리는 어머니와 함께 집도 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는 밍의 삶을 대조해 상중하의 계급 구분은 너무도 명징합니다. 소년 배우들 중 가장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담지광은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개봉 2년 뒤인 1993년 18세를 일기로 교통사고로 요절했습니다.

등장 분량은 짧지만 허니의 카리스마는 역시 조직 보스답습니다. 도피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샤오쓰의 앞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언급합니다. 은둔 생활 도중 무협지를 읽다 지쳐 ‘전쟁과 평화’까지 읽었다는 것입니다. 허니는 평소 글쓰기가 취미인 샤오쓰와 통한다는 암시입니다.

우수에 젖어 선이 가는 허니의 카리스마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비극적 최후로 짧은 생을 마치기에 더욱 강렬합니다.

비현실적 중반부

중반부는 다소 지루합니다. 허니의 죽음에 소공원파가 복수해 217파의 두목 산동(양정청 분) 등을 살해하고 샤오쓰의 아버지가 수사 기관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되어 자백을 강요받는 장면은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폭력 장면을 어둠 속에서 미화 없이 어설프게 묘사해 오락 영화와 같은 볼거리는 제시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구금 및 자백 강요는 대만의 질곡의 역사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 한국 군사정권의 과거 불법 행위를 연상시킵니다.

이 장면에는 태풍이 강타해 폭우를 뿌리지만 영어 제목인 ‘A Brighter Summer Day’가 대사를 통해 언급되어 매우 역설적입니다.

소공원파의 217파 습격은 영화적으로도 의문을 남깁니다. 허니의 죽음과 결말의 살인은 사회적 차원에서 논의되어 극중의 실제 사건임에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217파 습격은 산동을 비롯한 여럿이 일본도 등으로 잔혹하게 살해되었음에도 경찰 수사나 언론 보도 등에 대한 제시가 전혀 없어 극중에서는 실제 사건이 아닌 듯 처리됩니다.

산동 일파가 이후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그들의 근거지인 당구장이 샤오쓰의 형의 친구에 의해 접수되어 산동 일파는 죽은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왜 현실적 차원의 후속 장면은 없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아버지의 강제 구금과 더불어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으로 연출된 듯합니다.

샤오쓰는 학교 앞 영화 촬영장을 훔쳐보며 성장합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어린 시절을 반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은 세상을 떠났고 대만 영화는 쇠퇴일로에서 아직도 부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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