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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방동네 사람들 - 1982년 한국 사회 풍속도를 엿보다 영화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명숙(김보연 분)은 빈민가에서 아들 준일, 재혼한 남편 태섭(김희라 분)과 함께 살아갑니다. 동네 구멍가게를 인수한 명숙의 앞에 전남편 주석(안성기 분)이 나타납니다. 수감 생활을 마무리하고 택시 운전사가 된 주석은 준일의 아버지 노릇을 하려합니다.

‘검은 장갑’ 명숙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은 이동철의 원작 소설을 배창호 감독이 직접 각색해 연출 데뷔한 1982년 작입니다. 부산의 횟집 소녀로부터 수도권 빈민가의 억척스런 주부로 변모한 명숙의 인생 역정과 삼각관계를 묘사합니다.

명숙은 오른손에 검은 장갑을 항상 착용해 태섭으로부터 ‘검은 장갑’이라 불립니다. 과거 주석의 부재 시 준일을 지키려다 손에 화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명숙을 상징하는 검은 장갑은 고난으로 가득했던 그녀의 삶을 상징합니다.

명숙을 연기한 김보연은 최근의 여배우들과 달리 자연스러운 미모는 물론 연기도 돋보입니다. 분장과 의상의 도움으로 1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를 무리 없이 연기합니다. 중반부에 아이를 업고 철길 옆을 터덜터덜 걷는 장면에 삽입된 노래도 김보연이 직접 불렀습니다.

‘탕아의 귀환’ 주석

명숙의 곁을 맴도는 주석은 반복된 수감 생활을 마무리한 뒤 택시운전사로 갱생하려 합니다. 그는 준일의 아버지 노릇을 하겠다며 명숙과 태섭의 앞에 나타납니다. 버릇없는 준일을 싫어하는 태섭은 양육권에는 무관심하지만 명숙을 빼앗길까 노심초사합니다.

주석은 준일의 양육권을 앞세우고 있지만 내심 명숙까지 되찾아 가정을 완전히 복원하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주석의 심리와 행동을 현 시점에서 바라보면 과거에 연연해 질척거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30년 동안 한국인의 심리가 상당히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신파적 요소가 없지는 않으나 폭압적 군사 정권 하에서 신파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으려했던 당대를 감안하면 지나친 것은 아닙니다.

주석은 소매치기 전과자이지만 억울한 옥살이도 합니다. 그는 형사(홍성민 분)의 유도 심문에 분노를 폭발시키다 공무집행 방해로 유죄 판결을 받습니다. 형사의 취조 장면에 육체적 고문은 제시되지 않으나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고문을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영화는 완성된 필름은 물론 시나리오 단계부터 검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배창호 감독은 ‘꼬방동네 사람들’의 시나리오 검열 단계부터 수정을 지시받았으나 이를 무시해 완성했고 필름 검열에는 검열관들이 영화에 감동해 그대로 개봉할 수 있었다고 코멘터리에서 밝힙니다. 주석의 공무집행 방해 유죄 판결문을 낭독하는 판사의 목소리는 배창호 감독이 직접 녹음했습니다.

하지만 ‘꼬방동네 사람들’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는 이유로 해외 영화제 출품이 금지되었습니다. 개봉 후 10년이 지나 군사정권이 종식을 앞둔 1992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해외 영화제 출품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명숙 앞에 나타난 주석은 영화의 전형적 소재 중 하나인 ‘탕아의 귀환’입니다. ‘꼬방동네 사람들’ 개봉 당시 만 30세였던 안성기의 반항아 연기는 ‘택시 드라이버’의 로버트 드 니로를 연상시키며 현재의 안성기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상당합니다. 두 배우가 맡은 등장인물의 직업이 택시운전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탕아 대 탕아’ 태섭

주석이 죗값을 과하게 치른 탕아라면 태섭은 아직 죗값을 치르지 않는 탕아입니다. 살인죄를 숨기고 도피 중인 태섭은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꼬방동네 사람들’은 ‘탕아 대 탕아’ 대결 구도입니다. 명숙은 남자를 고르는 눈이 없습니다.

태섭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피해자의 아내와 꼬방동네에서 조우한 뒤 자수를 결심하지만 그의 개심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집니다. 개심 이전까지 트라우마에는 시달렸으나 책임감이나 선한 면이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석과 명숙, 그리고 준일의 가족 복원을 위한 무리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가족이 복원되는 결말에서 명숙의 검은 장갑은 벗겨집니다. 치유를 상징합니다.

1980년대 한국인의 풍속도

‘꼬방동네 사람들’은 1980년대 한국인의 풍속도를 엿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롭습니다. 최근 20세기 후반을 재현한 한국 영화가 제작되고 있지만 당대에 즐겨 사용하던 폰트조차 재현하지 못하는 영화가 상당수이기 때문입니다.

공간적 배경인 꼬방동네는 세트가 아니라 경인선 전철 개봉역 인근 광명시의 실제 마을에서 촬영되었습니다. 배창호 감독이 한밤중과 새벽에 운행되는 전철을 배경에 삽입해 사실성과 지역성을 부각시키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마을에는 집집마다 화장실을 갖추지 못해 아침에 재래식 공중화장실에 줄을 늘어선 모습도 제시됩니다.

명숙의 과거를 설명하는 장면에는 부산항을 비롯한 부산이 등장합니다. 서울에는 2008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 숭례문도 등장하며 인근의 남대문 시장도 제시됩니다. 주석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준일을 서울 능동 소재 어린이대공원에 데려가 부자지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면도 있습니다.

술주정뱅이 폐인 길자 역의 김형자는 겨드랑이 제모를 하지 않은 채 속옷차림으로 등장합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의 겨드랑이 제모는 일반화되지 않아 현재의 젊은 관객들에게는 신기할 수도 있습니다. 1990년대만 해도 겨드랑이 제모는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2000년 사망한 배우 추석양이 연기한 홀아비 노인은 환갑을 마을 잔치로 치릅니다. 60세 생일을 마을 잔치로 치르는 관습은 사라졌습니다. 예고편에는 노인의 장례식 장면도 있지만 본편의 편집 과정에서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구타의 일상화

무엇보다 현재와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당시에는 구타가 일상화되었다는 점입니다. 태섭은 명숙과 준일을, 명숙은 준일을 구타하는 장면이 자주 삽입됩니다. 남성이 여성을, 부모가 자식을, 어른이 아이를 구타합니다. ‘일상적 폭력의 시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때려서 가르치는 훈육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관점이 설득력을 얻는 현 시점에서 보면 ‘꼬방동네 사람들’에는 참으로 구타 장면이 빈번합니다. 술에 취해 이것저것 부수고 이웃과 싸움을 벌여 민폐를 끼치는 가장도 현 시점에서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고인이 된 배우들 다수 등장

현재는 고인이 된 이들도 다수 출연합니다. 지난 2012년 사망한 무용가 공옥진은 소위 ‘병신춤’으로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는 인물로 출연합니다. 당시 관객들에게도 볼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꼬방동네 사람들’이 현 시점에 제작되었다면 논란의 여지가 있는‘병신춤’은 삽입되지 않았을 듯합니다.

지난 2월 사망한 여배우 김지영은 명숙과 태섭의 팬티를 놓고 싸우는 이웃 아낙으로 등장합니다. 명숙은 이웃 아낙이 태섭의 팬티를 빨래하자 자신의 집 소유물을 훔쳐 갔다는 이유로 난투극을 벌입니다. 하지만 태섭이 바람을 피웠다고는 의심하지 않는 전개는 의외입니다. 극중에서 태섭이 바람을 피우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김지영은 1991년 MBC 청춘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1기 여주인공으로 인기몰이를 했던 최진실의 홀어머니로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이제는 모녀를 연기한 두 여배우가 모두 고인이 되었습니다.

1999년 KBS 2TV의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을 위해 라오스를 방문했다 말라리아로 인해 45세를 일기로 요절한 배우 김성찬도 출연합니다.

한편 개그맨 이주일과 닮은 외모로 알려졌던 배우 박종설도 등장합니다. 박종설은 1995년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삼청교육대에서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해 못을 삼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역할을 연기한 바 있습니다.

복원된 블루레이, 화질은 빼어나지만…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을 거쳐 블루레이로 발매된 ‘꼬방동네 사람들’의 화질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대사는 전부 후시 녹음임에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한글 자막을 활성화시키고 감상하는 편이 낫습니다. 한글 자막은 사투리를 그대로 옮긴 부분도 있는가 하면 표준어로 바꾼 부분도 있어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후시 녹음에서 싱크를 맞추기 버거워하는 배우들의 경우 성우가 대신 녹음을 하기도 했습니다. 길자가 연모하는 공 목사를 연기한 송재호는 본인이 아닌 성우가 후시 녹음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블루레이] 꼬방동네 사람들

http://twitter.com/tominodij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