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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IMAX - ‘진짜’와 ‘가짜’, 경계는 무엇인가? 영화

※ 본 포스팅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블레이드 러너 2049 IMAX - 전편에 충실한 속편, 농축된 여운 남겨’에 이어

‘진짜’가 되고 싶었던 K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는 ‘진짜(Real)’입니다.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 분)는 자신이 월레스 사에 의해 제작된 레플리컨트가 아니라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와 레이첼 사이에서 태어난 레플리컨트가 아닐까 하는 희망을 가집니다. K는 제작된 레플리컨트는 ‘가짜’, 잉태된 레플리컨트는 ‘진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K의 홀로그램 연인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는 K가 ‘특별한 존재’ 즉‘진짜’라며 ‘조’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K가 데커드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레플리컨트 저항 조직의 리더 프레이사(히암 압바스 분)는 ‘우리 모두 그러길 바랐다’고 언급합니다. 레플리컨트 모두가 자신이 제작된 레플리컨트가 아니라 잉태된 존재임이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K가 바랐던 ‘진짜’는 안나(칼라 주리 분)임이 밝혀집니다. K가 자신의 것으로 인식했던 목각 말(馬)을 공장의 폐허에 숨기는 꿈은 실은 안나의 과거 기억입니다.

K가 방문한 고아원에서 남자아이들은 모두 삭발인 반면 여자아이들은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K의 꿈속에서 목각 말을 숨기는 아이는 머리카락이 있습니다. 즉 K가 아닌 안나가 어린 시절 목각 말을 숨긴 것입니다. 안나가 자신의 실제 기억을 K에 이식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진짜’와 ‘가짜’의 기준선은?

안나는 희귀병으로 인해 무균실 밖으로는 나가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그녀가 즐기는 숲이나 내리는 눈은 모두 홀로그램, 즉 가짜입니다. 반면 K는 안나의 연구소 밖에 있는 눈을 맞으며 최후를 맞이합니다.

K의 최후 직전 데커드는 ‘너는 누구인데 나에게 호의를 베푸느냐’고 묻지만 K는 미소 지을 뿐 답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K는 데커드를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끝까지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프레이사의 지시를 어기고 독자적 판단으로 데커드를 살려주며 부녀상봉을 성사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뜻한 바를 이룬 뒤 K는 들리지 않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다 평온한 표정으로 숨을 거둡니다. 자신이 ‘가짜’이기에 불만스러워하는 표정은 전혀 아닙니다.

만일 K가 잉태된 레플리컨트였다 해도 인간들의 K에 대한 차별 대우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K와 다른 레플리컨트에 중요한 것은 자의식과 자기만족이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질문합니다. ‘진짜가 경험하는 가짜’와 ‘가짜가 경험하는 진짜’ 중 무엇이 ‘진짜’인지 여부입니다. 사실상 감금된 처지로 실제를 경험할 수 없는 ‘진짜’ 안나와 스피너를 몰고 다니며 진짜를 마음껏 경험한 ‘가짜’ K 중 누가 행복한지 묻습니다.

안나는 아버지와 상봉해 삶을 이어갈 것이며 K는 가족도 없이 죽음을 맞이하지만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안나가 아닌 K의 손을 들어주는 듯합니다. ‘대의를 위한 죽음이 가장 레플리컨드가 선택할 수 있는 인간적 행동’이라는 대사와도 맞닿아있습니다.

무균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안나와 평생 도망자 신세인 데커드가 향후 행복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편 ‘블레이드 러너’의 결말처럼 데커드가 안나를 동반해 도피행각을 벌이기도 어렵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제의식은 선천적 조건보다는 후천적 경험의 중요성에 무게를 둡니다. 넓게 보면 합리론이 아닌 경험론에 가깝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 가치의 입증은 그 사람이 축적한 체험이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조이의 사랑은 ‘진짜’

조이의 존재 역시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K가 조이와 섹스, 즉 ‘첫 경험’하기 위해서는 레플리컨트 매춘부 마리에트(매킨지 데이비스 분)의 몸을 빌려야 하는 처지입니다.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리에트는 조이를 폄하합니다. 인간 - 레플리컨트 - 홀로그램의 3단 계급구조입니다.

러브는 K와의 첫 대면에서 조이가 ‘월레스 사의 제품’임을 확인합니다. 조이가 양산품, 즉 ‘가짜’라는 사실을 K가 인식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K를 향한 조이의 사랑은 너무나 애틋하고 지극해 ‘진짜’로 보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러브(실비아 혹스 분)가 조이를 ‘월레스 사의 제품’임을 재확인하며 소멸시키는 최후의 순간까지 조이는 ‘사랑해’를 외칩니다.

프레이사의 지시를 받고 데커드를 찾아가는 K는 LA 한복판에서 조이의 대형 광고판과 조우합니다. 광고판의 조이는 ‘조’라는 이름까지 언급합니다. 양산품 조이가 자신의 주인을 특별히 대하며 무조건 ‘조’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암시입니다.

이때 조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쉽지 않습니다. 양산품에 대한 사랑은 ‘가짜’라고 깨달으며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했던 경험이 특별했던 조이를 짓밟아 소멸시킨 러브와 월레스 사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랐을 수도 있습니다.

실체가 없는 여성형 AI에 대한 남자 주인공의 사랑은 역시 미래를 배경으로 한 2014년 작 ‘그녀’에도 다뤄진 바 있습니다. ‘그녀’도 AI와의 사랑이 육체적 실체는 없지만 경험이 축적된다면 ‘진짜’가 된다는 주제의식입니다.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는 복제된 레이첼(숀 영 분)가 조우하지만 눈(眼) 색상이 다르다며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가짜’ 레이첼은 러브에 의해 무참히 살해됩니다.

반면 라이스베이거스의 거처에서 데커드는 개와 함께 지냈습니다. K는 개가 ‘진짜’인지 묻지만 데커드는 개의 ‘진짜’ 여부에 개의치 않습니다. 개는 데커드와의 함께 한 경험을 지녔으며 사랑을 받아 이미‘진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짜’와 ‘가짜’, 경계가 무너지다

외형적으로는 신분제가 폐지되어 평등한 현대 사회이지만 경제적 이유로 계급적 구분은 뚜렷하며 인종 차별도 여전합니다. 인종 및 종교가 다른, 가난한 난민에 대한 차별은 세계적 문제 중 하나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LA 시가지에서 거의 보이지 않던 어린이들은 쓰레기장에서 오프월드행 우주선 제작을 위한 니켈 채취의 노동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보호받아야 하는 어린이들은 30년 이상 유아노동에 매달리고 있으며 공권력은 방치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유아노동의 현실을 고발합니다.

선천적 조건보다 후천적 경험을 강조하는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제의식은 현대 사회의 불평등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든, 레플리컨트든, 홀로그램이든 간에 평등해야 한다는 비유적 접근은 인종, 종교, 경제 능력과 무관하게 평등해야 한다는 주제의식으로 수렴합니다.

현대인은 이미 가상의 것에 대해 집착하고 있습니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의 캐릭터에 열렬한 애정을 보내며 게임 아이템의 획득에 거액을 쓰기도 합니다. 실체로 존재하지 않아도 실존하는 것과 마찬가지,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합니다. ‘존재의 실재를 입증하는 조건’은 그것이 실체를 보유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다는 것이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인식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한국 개봉 카피문구는 ‘진실과 거짓, 그 경계가 무너진다’입니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진짜와 가짜, 그 경계가 무너진다’에 가깝습니다.

시적인 영상미, 압도적

‘블레이드 러너 2049’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소수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전편 ‘블레이드 러너’의 운명까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에 앞서 이번에는 스피너의 숨 막히는 추격전 액션 정도는 포함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K가 데커드가 연행되는 러브의 스피너를 공격해 불시착시키지만 ‘추격전’이라 부를 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전편에는 스피너와 음성 인식기기 등 SF 영화다운 참신한 기계도 등장했지만 ‘블레이드 2049’는 시대를 앞서가는 기계장치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음성 인식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시대에 그보다 앞서가는 기계장치를 영화가 선보이기도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SF 영화가 발붙일 여지가 점차 좁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락적 요소가 드문 대신 ‘블레이드 러너’는 철학적 사유와 압도적 영상으로 정면 승부합니다. IMAX 카운트다운부터 제시되는 2049년 푸른색 LA와 후반부에 당돌하게 등장하는 붉은색 라스베이거스는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역시 소니가 배급했던 ‘스파이더맨 홈커밍’도 독특한 IMAX 카운트다운 로고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가상의 미래 사회의‘황량하고 음울한 아름다움’은 너무도 압도적이며 동시에 시적입니다. 전작의 장점을 고스란히 계승해 근래 보기 드문 SF 영상미입니다.

한스 짐머와 벤자민 월시의 배경 음악은 중저음이 강조되어 다소 거북할 정도입니다. 전반적으로 러닝 타임이 길고 장면의 템포가 늦은 만큼 관객을 자극하며 불편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엿보입니다. 작중 세계관이 현실을 반영한 디스토피아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블레이드 러너가 보유한 블래스터의 발사음은 매우 강력합니다. K의 아파트 맞은편 건물의 대형 전광판의 화장품을 광고는 여성의 한국어 음성으로 제시됩니다. 전편의 일본인 여성이 등장하는 대형 전광판의 오마주입니다.

K에 대한 러브의 감정은?

K가 레이첼의 조사를 위해 월레스 사로 찾아가 러브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전편의 데커드와 레이첼의 첫 만남 장면을 비틉니다. 러브가 K에게 데커드와 레이첼 첫 만남 당시 대화를 녹음한 파일로 들려주자 K는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감정을 금세 간파합니다. 러브도 K에 사적인 대화를 시도하지만 K가 응하지 않아 두 사람의 관계는 사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습니다.

러브가 K에 호감을 보이는 장면은 K가 레이첼의 비밀을 파고들지 못하도록 연막을 치기 위한 이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레이첼이 데커드에 호감을 가졌듯이 러브도 K에 호감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러브는 자신의 인간적 감정의 표현물인 눈물을 흘리지만 실제 감정은 항상 억누르고 있습니다.

데커드를 놓고 K와 러브가 혈투를 벌이는 클라이맥스에서 러브는 K에 치명타를 가한 뒤 그에게 키스합니다. K를 조롱하며 자신의 승리를 뽐내는 제스처로 볼 수 있지만 첫 만남부터 느꼈던 호감의 발로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베스트 오퍼’에서 실비아 혹스는 매우 여성적인 이미지로 미셸 파이퍼를 연상시켰는데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부츠와 바지, 그리고 포니테일이 보이시해 미셸 모나한을 연상시킵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흑막은 러브의 보스 월레스(자레드 레토 분)입니다.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으나 빛나는 눈동자와 귀 아래쪽의 칩 교체는 그 역시 레플리컨트임을 암시합니다. 월레스의 등장 장면은 많지 않은 가운데 주인공 K와 만나는 장면이 없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주인공과 보스 캐릭터가 러닝 타임 내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영화는 드뭅니다.

블레이드 러너 극장판 - ‘내레이션-결말’도 걸작의 진가는 못 가려
블레이드 러너 파이널 컷 - 장르적 전복을 통해 탄생한 SF 걸작
블레이드 러너 2049 IMAX - 전편에 충실한 속편, 농축된 여운 남겨

그을린 사랑 - 전쟁 참화 극복한 신화적 모성
프리즈너스 - 보기 드문 수작 스릴러
프리즈너스 - 종교가 외려 악마를 낳다
에너미 - 도플 갱어, 거미줄처럼 뒤얽힌 악연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묵직함 돋보이는 하드보일드 스릴러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여성과 흑인의 소외
컨택트 - 지적이며 관념적인 SF, 대중성은 부족
블레이드 러너 2049 IMAX - 전편에 충실한 속편, 농축된 여운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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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7/10/22 09:55 #

    딴지 이지만 2094 가 아니라 2049 입니다. 솔직히 과학기술력 차이를 보면 2294 라도 모자라 보입니다만 ^^;

    러브는
    케이에게 호감을 가진 것으로 보이는 두 여성 - 조이와 조시 (국장) 을 살해 합니다. 결국 마지막 혈투는 그에 대한 케이의 복수라고 볼수도 있겠네요.
    그외에 케이를 둘러싼 인간 / 레플리칸트 / AI의 3자 대립구조가 재밌더군요. 여성캐릭터가 카테고리 3개로 나뉩니다. 인간 여성 조시(국장) , 레플리칸트 러브 와 마리에트 , AI인 조인 이들은 서로 미묘한 긴장감과
    적걔심을 드러냅니다. 물론 종족별 대립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에 눌려 크게 부각 되진 않지만 잘하면 주인공하나를 둘러싼 여캐들의 대난투가 될뻔 했습니다. ^^
  • 디제 2017/10/22 17:48 #

    지적 고맙습니다. 수정했습니다.
  • yoori324 2017/10/27 10:07 # 삭제

    진짜와 가짜에 대한 기준과 경계는 K가 아닌 인간이 규정하고 검열하는 사항입니다. K 역시 초반부에는 이에 대해 한치의 의심이나 사고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진짜의 기준은 육체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며 이를 통해야만 '영혼'을 획득할 수 있다고 여기고 혹시 자신이 그런 선택된 대상이 아닌지에 끊임없이 집착합니다. 조이가 K의 특별성을 부추기는 말에도 겉으론 부정하지만 속으론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K와 같은 모델(넥서스 9), 즉 애초에 불복종이 불가능하다고 만들어진, 이 모델도 모두가 믿고 있는 것처럼 영혼이 없지는 않은듯 합니다. 그러기에 매번 기준선테스트를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부여한 태생적 자아관, 기억은 심어진 허구일 뿐이며 자신들은 복종밖에 할 줄 모르는 레플리컨트 신분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영혼과 잠재적 자아를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아마도 이 영화는 K의 진정한 자아 및 영혼에 대한 발견의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라고도 보여집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지니고 있었던, 그러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인간성을 발견하고는 결단을 내리는 주인공 K의 마지막은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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