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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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프로야구 필자, 전 스포츠조선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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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라 - ‘폭풍소년’과 26년만의 정식 재회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아키라’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형 폭탄에 의해 도쿄가 잿더미가 되고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31년 뒤인 2019년. 폭주족 소년 테츠오는 정부가 비밀리에 실험을 통해 육성한 초능력자 소년 타카시와 조우합니다. 테츠오가 정부의 실험에 의해 초능력을 갖추고 폭주하자 절친한 친구 카네다는 테츠오를 말살하려 합니다.

1991년 ‘폭풍소년’과의 만남

‘오늘 아키라를 감상했다. 상당히 잔인하고 암울한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었다. 너무 많이 잘라 놓은 것 같았다. 어쨌든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1991년 1월 20일 제가 일기장에 남긴 ‘아키라’, 당시 개봉 명 ‘폭풍소년’을 극장에서 관람한 단평입니다.

일본 대중문화가 해금되기 전인 1991년 1월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가 한국에 ‘폭풍소년’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습니다. 수입사 세라양행이 홍콩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허위 신고서를 제출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한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이미 일본 만화, 만화영화(‘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는 소수 마니아만이 사용하는 용어였습니다.), 대중가요 등이 일부 대도시의 청소년 및 20대를 중심으로 인기를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년이 된 일본 대중문화의 한국 1세대 마니아층이 형성된 시기입니다.

저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고교생이었지만 ‘폭풍소년’이 ‘아키라’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건담 시리즈에 푹 빠져 주기적으로 서울 명동 중국대사관 앞 일본 서점 가를 방문해 잡지 ‘뉴타입’ 등을 통해 일본 애니메이션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키라’ 단행본의 존재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키라’를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소규모 재개봉관에 걸린 ‘폭풍소년’을 일요일 조조에 관람했습니다.

웃지 못 할 ‘폭풍소년’ 해프닝

‘폭풍소년’은 잔혹한 장면과 소위 ‘왜색’을 최대한 삭제해 서사 전개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유혈 장면은 상당수 남아 있었으며 소녀 카오리의 가슴 노출 장면도 완전히는 삭제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건담 시리즈 몇몇 작품을 이미 시청했지만 아키라처럼 유혈이 낭자한 애니메이션은 난생 처음 접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결론은 ‘아키라’는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아무리 삭제를 해도 끝 모를 상상력을 구체화한 압도적인 작화는 결코 숨길 수 없었습니다. 강렬한 문화 충격이었습니다.

‘폭풍소년’의 실체가 일본 애니메이션 ‘아키라’라는 사실을 뒤늦게 제보 받은 공연윤리위원회는 수입사 세라양행의 영화업 등록을 취소했습니다. 1989년 12월 미국에도 개봉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던‘아키라’에 대해 한국의 공연윤리위원회에만 인지하고 있던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검열 기관이 무능했습니다.

당시 기성세대는 애니메이션을 어린이의 전유물로 간주했으며 수입사도 겨울 방학을 맞아 어린이 관객을 노리고 ‘아키라’를 수입해 개봉했습니다. 그러나 ‘아키라’는 잔혹성 여부를 떠나 어린이가 즐기고 이해할 만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웃지 못 할 ‘폭풍소년’ 해프닝은 이제는 전설처럼 남아있습니다.

26년만의 ‘아키라’ 정식 개봉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7년 8월 말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아키라’가 한국에 정식 개봉되었습니다. 마구 삭제된 ‘폭풍소년’이 아닌 온전한 형태의 ‘아키라’가 상업 개봉된 것은 처음입니다. 그 사이 일본 문화는 개방되어‘왜색’이라는 단어조차 사라졌으며 일본 애니메이션은 극장에서 정식 개봉되어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습니다.

SF 모험 액션 활극‘아키라’는 현 시점에서 보아도 잔혹한 폭력 미학을 앞세우는 작품입니다. 폐허가 된 도쿄 위에 건설된 디스토피아 네오 도쿄에서 10대 폭주족의 패싸움과 테러는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폭주족 소년 카네다와 테츠오는 학교에 등교하지만 교사의 수업은 학생 누구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근거지는 술집이며 흡연도 일삼습니다.

‘아키라’의 10대 소년들이 학업에는 무관심하고 폭주와 폭력에만 나서는 이유가 있습니다. 혁명 세력이 정부에 저항해 끊임없이 시위를 벌이고 일부 종교 세력은 전설적 존재 ‘아키라’의 부활을 외칩니다. 매일매일 숱한 사람들이 시위 현장에서 학살됩니다.

정부 내에는 정치가들과 군인이 암투를 벌입니다. 비열한 수상은 돈과 채권을 잔뜩 챙겨 도주하다 객사합니다. 정치가들은 물론 종교 세력의 어리석은 우두머리까지 ‘아키라’가 묘사하는 기성세대는 10대에게 아무런 모범이 될 수 없는 어릿광대이자 블랙 유머 캐릭터들입니다. 당시 일본의 기성세대에 대한 풍자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무능한 기성세대로 인해 미래가 없는 10대들은 폭주에만 몰두합니다.

우연의 일치, 2020년 도쿄 올림픽

‘아키라’의 시간적 배경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1년 앞둔 2019년입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실제 개최가 결정된 것은 2013년인데 1988년 작 ‘아키라’가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우연의 일치가 성립되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1964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도쿄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이 전후 복구 및 서구화와 근대화에 성공했음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는 이벤트였습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의 참화를 경험한 한국의 1988년 서울 올림픽도 비슷한 의미를 지닙니다.)

‘아키라’의 2020년 도쿄 올림픽 설정 및 그로부터 1년 전의 시간적 배경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있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988년 제3차 세계대전으로부터의 완전한 재건을 뽐내고픈 일본 정부의 의도가 읽힙니다.

강렬한 붉은색

‘아키라’를 상징하는 색상은 포스터의 원제 ‘アキラ’에도 드러나듯 붉은색입니다. 카네다가 착용한 상하의, 그리고 그가 탑승해 ‘아키라’를 상징하는 머신으로 자리 잡은 바이크와 바이크의 헤드라이트는 모두 붉은색입니다.

고층 건물의 유리창과 네온사인도 붉은색이 다수 눈에 띕니다. 음산하면서도 화려한 세기말적 도시 풍경은 ‘블레이드 러너’의 영향이 엿보입니다. 실험체들의 근거지인 붉은색의 거대 고층빌딩은 ‘블레이너 러너’의 타이렐 사 건물을 연상시킵니다.

테츠오는 초능력을 지니게 되자 붉은색 망토를 착용합니다. ‘슈퍼맨’의 슈퍼맨에 대한 오마주이자 ‘아키라’가 슈퍼 히어로 활극 애니메이션임을 상징합니다. ‘아키라’의 격투 장면은 이후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의 숱한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 영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도쿄 붕괴 장면은 ‘터미네이터 2’의 핵폭발 장면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습니다. ‘아키라’의 폭발 장면 역시 붉은색이 주종을 이룹니다.

‘아키라’를 물들이는 가장 강렬한 붉은색은 많은 이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시위대의 유혈은 물론 테츠오의 피까지 한 시대가 혼란기를 거쳐 종결되고 새로운 시대로 전환되는 혁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낮 장면이 드물고 대부분의 장면이 밤인 것도 바이크, 헤드라이트, 고층 빌딩에 둘러싸인 대도시의 야경, 그리고 유혈을 두드러지게 해 화려함과 강렬함을 강조하기 위한 연출 의도가 엿보입니다. 폭주족의 주 무대도 낮이 아닌 밤입니다. 아키라의 액션 및 유혈 장면은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 영화의 역사를 통틀어도 손꼽을 수 있는 폭력 미학의 극치를 자랑하는 힘이 넘치는 걸작입니다.

기괴함 두드러져

‘아키라’는 정부의 실험체로 전락해 조로한 소년소녀들의 외모가 말해주듯 기괴함이 두드러집니다. 실험체 이외의 카네다와 테츠오 등 다른 캐릭터들도 이마가 넓고 미간이 좁아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미형과는 거리가 멉니다.

테츠오의 꿈이나 환상을 구체화한 장면들도 기괴합니다. 특히 실험체들이 가하는, 인형을 비롯한 장난감의 공격이나 테츠오의 몸이 갈라져 부스러지는 장면의 연출은 훌륭합니다. 일본 버블 경제시기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결과 풍부한 양의 셀을 활용한 ‘아키라’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이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럽습니다. 셀 애니메이션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걸작답습니다.

힘이 넘치는 추격전 및 액션 장면과 기괴함은 게이노야마시로구미의 독특한 음악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타악기가 강조되는 곡들은 마치 심장 고동 소리처럼 폭주족 소년들의 강렬한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의문의 대폭발로 인해 기존 도쿄는 폐허가 되고 새롭게 건설된 도쿄, 숨겨진 궁극의 병기, 소년소녀의 병기화, 무능한 정부, 유혈과 기괴함, 지구의 목표를 노리는 위성 병기 등의 요소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영향을 준 듯합니다.

테츠오와 카네다의 복잡 미묘한 심리

‘아키라’를 이끌어가는 서사의 원천 중 하나는 테츠오의 열등감과 라이벌 의식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카네다와 친구였지만 매사 자신감 넘치는 리더 카네다에 비해 소극적이며 자신감이 부족한 약점에 전전긍긍해왔습니다. 카네다의 바이크를 탐내는 것도 동일한 이유입니다. 초능력을 손에 넣은 테츠오의 폭주 이면에는 열등감 해소의 쾌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테츠오를 저지하는 것은 카네다입니다. 카네다는 테츠오가 친구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감싸지는 않습니다. 카네다가 테츠오 말살에 나서는 이유는 테츠오를 증오하기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잘못을 바로잡고 세계를 지키기 위함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두 소년 주인공의 복잡 미묘한 심리 묘사는 의외로 탄탄합니다.

테츠오의 풀 네임은 ‘시마 테츠오(島鉄雄)’입니다. ‘鉄雄’이라는 남자답고 강인한 이름과는 상반된 유약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역설적 작명입니다. 하지만 성인 카네다(金田)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만화 원작에서 카네다의 풀네임은 ‘카네다 쇼타로(金田正太郎)’인데 애니메이션에서는 두 사람이 통성명하는 장면에서도 카네다가 이름을 소개하기 직전에 장면이 전환됩니다.

타이틀 롤 아키라는 맥거핀에 가깝습니다. 테츠오에 의해 아키라는 부활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결말은 다소 허망합니다.

아키라를 숭배하는 종교 세력이 아스팔트 바닥에 대형 붓으로 쓴 ‘大覺 アキラ’는 한글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대각(大覺)’은 ‘대각세존(大覚世尊)’과 같이 부처를 높여 부르는 불교용어인데 ‘大覺 アキラ’는 ‘아키라 님’ 정도로 번역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메모리즈 - 놀라운 작화, 다채로운 삼색의 SF
쇼트 피스 - 일본적인 5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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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ennis 2017/09/05 19:45 # 답글

    아버님이 새로 사오신 LD 플레이어에 따라온게 바로 AKIRA LD 였었죠. 처음 오픈닝씬 음악이랑 화면 아버님이 세팅한 오디오 시스템이랑 65인치 리어프로젝션 TV로 봤을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하네요. :)
  • 잠본이 2017/09/06 23:12 # 답글

    카네다 쇼타로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철인28호에 대한 오마주도 담고 있는데 거기서 쇼타로 친구로 박사 아들래미 시키시마 테츠오가 나오죠(존재감 제로의 엑스트라...박사가 위험에 빠질때 옆에서 놀라는게 주 역할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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