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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 전쟁 둘러싼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

※ 본 포스팅은 ‘전쟁과 평화 1’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 비판

1869년에 출간된 레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 시대 러시아 귀족 사회를 포착한 고전 걸작입니다. 전 4권 중 1권은 1805년을 묘사한 3부 구성입니다.

‘전쟁과 평화’의 서사를 이끄는 것은 4개 귀족 가문입니다. 주인공 안드레이의 가문인 볼콘스키가, 사생아지만 갑작스레 상속인이 되는 피예르가 속한 베주호프가, 장남 니콜라이가 풋내기로서 참전하는 로스토프가, 그리고 볼콘스키가와 결혼을 도모하려는 쿠라긴가의 4개 가문입니다.

‘평화’에 해당하는 1부는 귀족 군상을 소개합니다.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당시 페테르부르크 귀족들의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안드레이와 니콜라이가 참전을 준비하는 과정도 그려집니다.

‘전쟁’에 해당하는 2부는 최전선의 러시아군이 귀족들로 구성된 지휘부부터 평민들로 구성된 병사들까지 얼마나 오합지졸이었는지 생생하게 포착됩니다. 귀족들은 전선에서도 음주와 도박을 일삼으며 귀한 시간과 돈을 허비합니다. 훈련되지 못한 병사들은 위기에 몰리자 총사령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도망치기에 바쁩니다. 러시아군의 기강 문란은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장교들은 나폴레옹을 일거에 격파해 전공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공명심에 달뜹니다. 공명심, 즉 어리석은 욕망이 인간 세상의 최대 규모 살육 행위인 추악한 전쟁을 유발하는 근본 요인임을 톨스토이는 비판합니다.

3부는 ‘평화’와 ‘전쟁’이 모두 다뤄지는 가운데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연합군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참패하는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묘사합니다. 전국 전체를 전술이나 병법의 관점에서 전지적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피와 땀으로 가득한 아비규환의 현장 속에서 마치 종군기자가 집필한 것처럼 손에 잡힐 듯합니다. 1828년생 톨스토이는 참전 경험이 없지만 너무도 사실적으로 전장의 지옥도를 펼쳐놓습니다.

전투를 앞두고 장교와 병사들을 막론한 어리석은 공명심과 실전의 참혹한 묘사는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에 영향을 준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러시아군의 장교들이 필승을 장담하며 술잔을 깨뜨리는 의식은 ‘은하영웅전설’의 제국군 장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의 조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전쟁을 소재로 한 만큼 실존 인물과 가상 인물은 교묘한 조화를 이뤄 사실성이 강조됩니다. 작중의 러시아 귀족 대부분은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사상을 유럽에 전파한다는 이유로 경계하고 폄하합니다. 톨스토이 또한 나폴레옹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나폴레옹은 황제에 오른 독재자이며 민주주의 사상을 전파했다고 규정하기는 어렵기에 당대 러시아 귀족들의 평가는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드레이와 피예르는 전술가로서의 나폴레옹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동경합니다. 두 사람이 친밀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안드레이는 매사 냉소적이지만 나폴레옹만큼은 숭배합니다. 안드레이는 최전선에서 나폴레옹의 군대와 맞대결한다는 사실에 설렙니다. 그리고 자신도 나폴레옹이 출세했던 툴롱의 포위전과 같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풉니다.

안드레이는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투조프의 휘하의 부관으로 배치됩니다. 니콜라이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를 직접 본 뒤 충성심으로 불타오릅니다. ‘전쟁과 평화’ 1권에서 실존 인물 쿠투조프와 알렉산드르 1세는 상당한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60대의 신중한 노장 쿠투조프는 20대의 젊은 황제 알렉산드르 1세와 그를 추종하는 젊은 귀족들에 밀려 패배 가능성이 높은 전투에 내몰립니다. 아우스터리츠 전투의 참패로 쿠투조프는 부상을 입고 알렉산드르 1세는 니콜라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초라하게 도주합니다.

1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실존 인물은 나폴레옹입니다. 안드레이는 자신이 숭배하던 나폴레옹과 드디어 대면합니다. 그러나 빈사 상태에서 그가 감동받는 존재는 코앞의 나폴레옹이 아니라 하늘로 대변되는 거대한 운명입니다. 고향에 두고 온 임신한 아내 리자에 냉정했던 안드레이는 이 순간 처음으로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힙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임을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중상을 입은 포로 안드레이에게 시의(侍醫) 라레를 붙여 치료하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라레는 안드레이의 생존 가능성을 희박하다 판단합니다.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1권을 마무리해 2권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톨스토이의 기교에는 현대의 미국 드라마의 클리프 행어 뺨치는 세련미마저 풍겨 나옵니다.

운명의 얄궂음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 즉 평시의 인간 운명의 얄궂음도 톨스토이는 놓치지 않습니다. ‘전쟁과 평화’ 1권에는 쿠라긴가를 중심으로 2건의 결혼이 추진됩니다.

첫째, 피예르를 딸 옐렌의 남편으로 삼으려는 바실리 쿠라긴입니다. 물론 바실리가 노리는 것은 피예르가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입니다. 순진한 피예르는 옐렌과의 결혼이 불행으로 직결될 것을 알면서도 저돌적인 바실리의 수완을 이기지 못하고 응낙합니다. 피예르는 벼락부자가 된 뒤 주변의 숱한 아첨꾼들의 아부를 당연하게 여기며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둘째, 바실리는 둘째 아들 아나톨을 마리야에게 결혼시키려 합니다. 바실리와 아나톨은 볼콘스키가의 영지 리시예 고리를 방문합니다. 안드레이의 아버지이자 괴팍한 인물인 볼콘스키 공작은 아나톨이 허우대만 멀쩡한 바람둥이임을 꿰뚫어보면서도 청혼 승낙 여부는 마리야에 맡깁니다.

톨스토이는 볼콘스키 공작과 같이 괴팍한 인물을 긍정적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어쩌면 볼콘스키 공작은 톨스토이 본인의 투영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자존심으로 충만해 쉽게 타협하지 않고 주위의 인물들을 경멸하는 안드레이의 성격도 볼콘스키 공작과 부전자전입니다.

당시에는 당연시된 여성 차별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볼콘스키 공작은 마리야가 자신이 직접 가르치는 수학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박합니다. 게다가 마리야는 작중의 여타 귀족 여성들과 달리 외모가 추악합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마리야는 바실리의 청혼을 거절합니다. 마리야는 자신과 절친한 집안의 식객인 프랑스인 여성 부리엔을 아나톨이 유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아나톨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냉소적인 안드레이조차도 여동생 마리야의 순수함을 높게 평가할 정도로 마리야는 ‘전쟁과 평화’ 1권에서 가장 바람직한 여성상입니다. 마리야가 청혼을 거절하자 볼콘스키 공작은 만족해합니다.

후속작인 1877년 작 ‘안나 카레니나’에도 드러나는 톨스토이의 결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전쟁과 평화’에 선명합니다. 결혼을 승낙하는 피예르를 어리석게, 거절하는 마리야를 현명하게 묘사해 뚜렷하게 대조됩니다.

작중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부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건의 결혼 추진 과정이나 아들을 출세시키려는 몰락한 귀족 부인 안나 미하일로브나의 노력에 대해서는 신랄한 블랙 유머마저 포함하고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당대 러시아 귀족 사회를 커튼을 들치고 엿보는 듯한 재미도 쏠쏠합니다. 인간의 본질 중 하나인 위선을 서슴없이 고발합니다.

현대 한국 독자에게 어려운 이유

‘전쟁과 평화’ 1권은 흥미진진함으로 가득하지만 현대 독자들에게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첫째, 압도적 숫자의 등장인물과 러시아의 복잡한 이름입니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559명이나 되는 인물들이 러시아식 긴 이름에 애칭까지 다양해 러시아 고전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헷갈리기 쉽습니다. 서두의 ‘주요 등장인물’을 부지런히 확인하며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둘째, 만연체 문장입니다. 간결해 쉽게 들어오는 문장이 아니라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일종의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전 문학은 당대의 베스트셀러입니다. 말초적 쾌락에 익숙한 현대인에게는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에는 즐기는 대상이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오락성을 바탕으로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갈망을 충족시키는 오락거리입니다. 따라서 익숙해진다면 ‘전쟁과 평화’는 조연급 등장인물까지 꼼꼼하게 개성적으로 표현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충실한 각주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이가 중상을 입는 1권의 결말이 노출되는 209페이지의 각주 24번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마리야가 안드레이에 선물한 성상(聖像)의 줄의 재질에 대해 톨스토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지적하는 각주입니다. 작품 중반이 아닌 결말에 각주를 달아 설명해 결말 노출을 막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안나 카레니나 - 진 주인공은 레빈과 19세기 러시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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