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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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 - 어정쩡한 복수, 찜찜한 사필귀정 영화

※ 본 포스팅은 ‘세일즈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야간 공사로 인해 거주하던 아파트가 붕괴될 위기에 놓인 연극배우 부부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 분)와 라나(타라네 알리두스티 분)는 극단 동료 바박(바박 카리미 분) 소유의 옥탑 방으로 이사합니다. 앞서 거주하던 독신 여성의 짐이 남아 있지만 에마드와 라나는 급한 대로 짐을 풀고 정리합니다.

성폭행 피해 부부, 그리고 가해자

2017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세일즈맨’은 이란을 배경으로 성폭행 피해 부부의 고통을 묘사합니다. 라나가 남편 에마드의 귀가 시간에 맞춰 현관문을 열고 샤워하는 사이 의문의 남성이 침입해 라나를 구타해 기절시킨 뒤 성폭행합니다.

에마드와 라나는 사건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대신 에마드는 스스로 범인 색출에 나섭니다. 범인이 혈흔은 물론 양말과 자동차 열쇠 등 다량의 증거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세일즈맨’의 반전은 범인의 정체입니다. 성폭행범이 청년 마지드(모즈타베 피르자데 분)인 것처럼 암시되다 그의 장인이 될 노인(파리드 사자디 호세이니 분)으로 밝혀집니다. 에마드는 심장병에 시달려 거동조차 불편한 노인이 아내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복수를 망설입니다.

어정쩡한 복수가 부른 죄의식

만일 성폭행범의 색출 및 복수 소재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총기 혹은 흉기가 등장하는 자극적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치열한 법정극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일즈맨’에는 무기가 등장하지 않으며 주인공은 사법 체계에 의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된 뒤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난감해 합니다.

에마드가 도모한 사적 복수는 당초 범인의 가족들 앞에서 범죄 사실을 폭로해 망신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명예를 중시하는 이슬람 문화권다운 복수로 합리주의를 중시하는 서구와는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허약한 건강으로 인해 복수심이 한풀 꺾인 에마드의 유일한 복수는 노인이 남겨둔 돈을 되돌려주며 따귀를 한 대 때리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따귀를 맞은 노인은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인지 자신의 가족들 앞에서 심장 마비로 사망합니다.

어정쩡한 복수는 찜찜한 사필귀정으로 귀결됩니다. 에마드와 라나는 노인의 죽음에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들은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되었다는 죄의식에 평생 시달릴 것입니다. ‘세일즈맨’은 미묘하고도 난해한 질문을 던지는 윤리적 영화입니다.

한편으로 에마드는 성폭행 피해자인 아내의 후유증과 고통보다는 본인의 고통과 주위의 평판을 보다 의식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과 연결

에마드와 라나 부부가 배우로 참여하고 있는 아서 밀러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영화의 서사 전개와 맥락을 함께 합니다. 에마드는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를 연기하는데 아내 라나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세일즈맨의 죽음’의 가족 내 갈등 장면이 묘사됩니다. 에마드와 라나가 고통으로 인해 연기에 전념하지 못하면서 공연은 엉망이 됩니다.

윌리의 죽음, 즉 세일즈맨의 죽음은 노인의 죽음을 암시합니다. 노인은 평소 옷을 판매하는 세일즈맨이자 가장이지만 가족들 앞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밤중의 붕괴 대참사 위협, 사실?

‘세일즈맨’은 배경 음악이 거의 삽입되지 않았으며 작품의 분위기는 사실주의 소설을 읽는 듯 생생합니다. 하지만 호흡이 길고 느린 편이며 대중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전작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에 비하면 힘과 재미가 떨어지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와 ‘세일즈맨’은 부부의 갈등을 묵직하게 묘사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두에서 붕괴 위기에 처해 벽과 유리에 금이 간 에마드와 라나의 아파트는 그들 부부의 관계에도 금이 갈 것을 암시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급하게 이사하지 않았다면 성폭행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입주자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주변을 오밤중에 파헤쳐 붕괴 대참사의 위협에 처하게 하는 공사 행태가 이란에는 실재하는지 궁금증을 남깁니다. 붕괴 위험이 있는 아파트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전개도 역시 의문입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대한 당국의 검열이 암시되기도 합니다. 이란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취약한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 압도적인 각본의 힘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베이스인 2017/05/24 12:22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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