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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빠르망 - 선악-인과응보 무의미, 기묘한 운명론 영화

※ 본 포스팅은 ‘라빠르망’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비즈니스맨 막스(벵상 카젤 분)는 해외 출장 직전 2년 전에 헤어진 연인 리자(모니카 벨루치 분)로 보이는 여성과 조우합니다. 막스는 리자가 두고 간 호텔 열쇠를 습득해 뒤를 캡니다. 리자의 아파트에 잠입한 막스는 투신자살 일보 직전의 여성을 구조합니다.

히치콕 스릴러 연상

질 미무니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라빠르망’은 1996년 작 로맨틱 스릴러입니다. 옛 사랑을 갑자기 파헤치기 시작한 주인공 막스를 중심으로 6명의 남녀의 사랑이 뒤얽힙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복잡한 편집을 자랑합니다. 과거와 현재는 중요 등장인물들의 머리 모양 차이를 통해 제시합니다.

‘라빠르망’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116분의 러닝 타임이 과거의 사랑, 미행, 엿보기, 감시, 거짓말, 집착, 가택 침입, 타인으로 가장하기, 투신자살 시도, 섹스, 치정, 불륜, 살인 등으로 채워집니다.

극중에서 휴대 전화는 리지와 불륜 관계인 다니엘(올리베르 그라니에르 분)만이 지니고 있습니다. 삐삐(무선 호출기)는 물론 인터넷이나 이메일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유선 전화와 손으로 쓴 편지 및 일기가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됩니다.

스마트 기기가 판을 치는 최근이었다면 ‘라빠르망’의 팽팽한 긴장감은 성립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라빠르망’의 가슴 졸이는 엇갈림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당시가 아날로그의 마지막 시대였던 탓도 꼽을 수 있습니다.

선악-인과응보 무의미

등장인물들의 선악 혹은 인과응보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순진하게 한 여자만을 사랑했던 무고한 루시앙(장 필립 에코피 분)은 그녀로부터 배신의 치욕을 당합니다. 루시앙의 잘못은 사랑하는 알리스(로만느 보링제 분)를 철저히 신뢰한 것뿐입니다.

친구 알리스로부터 배신당한 리자는 다니엘의 동반자살의 희생자가 됩니다. 리자는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유부남 다니엘을 사랑했던 과오는 있지만 그렇다고 죽임까지 당할 만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리자는 억울한 면이 있습니다.

주인공 막스는 약혼녀 뮤리엘(산드린 키베르랑 분)에게 거짓말을 하고 옛 연인 리자를 찾아 나서다 알리스와 동침하는 등 순간순간의 감정에 매우 충실합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입니다.

막스는 예정된 도쿄 출장을 멋대로 가지 않고 파리 안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셈입니다. 일탈로 가득한 그의 며칠간의 여정으로 인해 ‘라빠르망’은 로드 무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돌고 돌아 뮤리엘에게 되돌아갑니다. 막스가 손해를 본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샤를르 아즈나부르의 샹송 ‘Le temps’, 즉 ‘시간’이 삽입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맥스는 시간 속의 옛 사랑과 잠시 스쳐가지만 과거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또 다른 사랑과도 조우합니다. 작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지만 이와이 슌지 감독의 1995년 작 ‘러브 레터’와 유사점이 엿보입니다.

알리스, 후반부 주인공

리자와 루시앙은 물론 막스까지 모두 속인 알리스는 두 남자 중 어느 누구와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리스는 두 남자와 연이어 동침할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견지한 사랑을 막스에게 인정받았기에 결코 불행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막스와 뮤리엘 커플을 바라보며 홀로 로마로 여행을 떠나는 알리스의 표정은 홀가분합니다.

알리스가 막스와 동침한 것이 빌미가 되어 다니엘이 리자를 살해했음을 감안하면 알리스는 ‘라빠르망’의 등장인물 중 가장 입체적이며 사악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두 주인공 막스와 알리스는 내적 갈등은 하지만 결국 윤리에 구애받지 않는 감정적인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전반부의 주인공은 막스이지만 후반부의 주인공은 알리스입니다. 리자의 내면이 세세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많지 않아 타자화된 것에 비하면 알리스의 후반 비중은 압도적입니다. 극적인 반전의 인물 알리스를 연기하는 로만느 보링제는 뱅상 카젤을 제치고 타이틀 시퀀스의 첫머리를 차지합니다.

알리스(Alice)라는 이름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에서 따온 듯합니다. 알리스의 이미지는 친구 사이인 리자보다 훨씬 어려 소녀 같으며 보이시합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의 리허설 장면을 통해 첫 등장하는 알리스의 연극 대사는 타인의 신분을 사칭해 사랑을 쟁취하려는 그녀의 행동 양식을 고스란히 반영합니다.

히치콕 영화의 요소들을 다수 활용하지만 등장인물들이 매우 즉흥적일 정도로 격정적이며 인과응보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프랑스 영화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빠르망’의 운명론은 굉장히 기묘합니다.

20년만의 재개봉이지만…

모니카 벨루치는 ‘라빠르망’의 촬영을 계기로 뱅상 카젤과 1999년 결혼했지만 2013년 이혼했습니다. 극중에서 두 배우가 연기한 인물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현실에서는 다르면서도 비슷했습니다. 스크린을 수놓는 모니카 벨루치의 압도적 아름다움은 신비스러우면서도 동양적입니다.

‘라빠르망’은 1997년 3월에 이어 꼭 20년 만에 한국에서 재개봉되었습니다. 한국에서 블루레이는커녕 dvd조차 발매된 적이 없기에 소중한 재개봉입니다.

그러나 한국 개봉명 ‘라빠르망’은 부정확한 발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주된 공간적 배경 ‘아파트’를 뜻하는 원제 ‘L'Appartement’에서 중간의 ‘T’는 묵음이 아닙니다. 따라서 정확한 발음은 ‘라빠르망’이 아닌 ‘라빠르뜨망’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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