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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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 왕따에서 구원자로, 겁쟁이에서 영웅으로 영화

※ 본 포스팅은 ‘핵소 고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동생을 때려 숨지게 할 뻔 했던 데스몬드(앤드류 가필드 분)는 ‘살인하지 말라’는 종교적 가르침을 신봉하게 됩니다. 데스몬드는 연인 도로시(테레사 팔머 분)와 결혼을 약속한 뒤 신병 훈련소에 입소합니다. 하지만 집총을 거부한 데스몬드는 상관과 동료들에 따돌림 당합니다.

종교적 신념에 따른 집총 거부

멜 깁슨 감독의 ‘핵소 고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인 1945년 5월 오키나와 핵소 고지 전투에 참전해 75명의 부상병을 구출한 의무병 데스몬드 도스의 실화를 영화화했습니다. 원제 ‘Hacksaw Ridge’는 오키나와 우라스에 남동쪽의 깎아지른 듯한 마에다 고지를 ‘쇠톱(Hacksaw)’과 같다 하여 붙인 별명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7안식교 신자인 데스몬드는 집총을 비롯해 무기 일체를 사용하려 하지 않아 동료들에 폭행을 당하는 등 괴롭힘을 당한 끝에 불명예 전역의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훈련소 장면에서는 자신의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린 한국 남성 관객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동료들을 구해 왕따에서 구원자로, 겁쟁이에서 영웅으로 하루아침에 재평가 받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 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이어 또 다시 종교적 신념을 소재로 영화화했습니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종교적 신념을 관철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며 폭력 장면이 잔혹하리만치 생생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는 여전한 논란거리입니다. 하지만 ‘핵소 고지’의 데스몬드는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군수 관련 공장에 근무했던 그는 징집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인명을 구하기 위해 자원입대해 전장에 뛰어듭니다. 병역 자체를 피하려는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과는 차별화됩니다.

첫 번째 전투 장면 압도적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전쟁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악 구도를 바탕으로 전쟁 영웅을 부각시켰던 과거에 비해 전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반전 의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숱한 인명이 대량으로 희생되는 인류의 죄악인 전쟁을 오락물로 만들어 상업화시키는데 대한 거부감도 다소 작용하고 있습니다.

‘핵소 고지’는 더 많은 적을 죽이기보다 더 많은 인명 구출에 노력한 주인공의 실화를 앞세워 전쟁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비판을 교묘하게 회피합니다. 그러나 전투 장면의 연출은 매우 훌륭합니다. 서두의 짧은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전투 장면이 제시되기까지는 1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세 번의 전투 장면 중 가장 긴 러닝 타임이 할애되며 실질적 클라이맥스인 첫 번째 전투 장면은 ‘라이일 일병 구하기’ 서두의 오마하 해변 상륙 장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압권입니다.

특히 총탄과 폭발음의 음향은 놀라울 정도로 힘이 있습니다. 병사들의 살이 찢기고 뚫리는 소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전장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살상력을 자랑하는 화염 방사기에 의해 고통스럽게 불에 타 죽는 일본군의 모습은 악을 무찌른다는 쾌감보다는 인명 살상의 참혹함을 부각시켜 죄의식을 유발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데스몬드는 일본군 부상병을 돕기도 합니다. 사지 절단, 얼굴이 뚫리고 내장이 튀어나온 사체, 할복 및 참수 장면까지 아비규환의 지옥도 묘사를 감안하면 ‘핵소 고지’의 15세 관람가 판정은 관대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악우(惡友) 스미티 인상적

조연급 등장인물 중에는 처음에는 데스몬드를 따돌리는데 앞장섰지만 전장에서는 그를 지키며 용감히 싸우는 스미티(루크 브레이시 분)가 인상적입니다. 주인공의 악우가 전우가 된 뒤 장렬히 전사하는 전개는 전쟁 영화에서는 공식과도 같지만 눈길을 잡아끌기에 충분합니다.

헥소 고지를 미군이 차지하는 전투 도중 부상을 입은 데스몬드가 후송되면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도로시를 비롯한 가족과의 재회나 귀향 등을 묘사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합니다.

결말에는 데스몬드와 도로시 등 실존 인물들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등장합니다.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나 실존 인물들과 영화 속 배우들의 등장 모습은 그다지 닮지는 않았습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