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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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 ‘고독과 죽음’ 짙게 드리워진 나쓰메 소세키의 고전

※ 본 포스팅은 ‘마음’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대학생 ‘나’는 휴양지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과 가까워집니다.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지내면서도 선생은 특별한 직업도 없이 매우 염세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와병 중인 ‘나’에게 선생은 유산 문제를 미리 논의할 것을 충고합니다.

부성을 대신한 선생

‘마음’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으로 1914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입니다. ‘선생과 나’, ‘양친과 나’, 그리고 ‘선생의 유서’의 상중하 3장 구성입니다. 발표 당시에는 아사히신문에 ‘마음 선생의 유서’로 연재된 바 있습니다.

대학생인 ‘나’는 선생과 교류하면서 인간적 매력을 느낍니다. 섬세하면서도 염세적인 선생과 친밀해지지만 과묵한 선생은 좀처럼 옛 이야기나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지는 않습니다.

신장병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 고향으로 내려간 ‘나’는 재회한 가족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나’는 고매하고 세심한 선생과 속물적이고 고루한 아버지를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선생을 존경하고 그리워하는 반면 죽어가는 아버지는 동정하지 않습니다.

선생이 ‘나’의 부성의 자리를 차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선생의 충고에 의거해 아버지의 유산을 분배하는 일은 실행하지 못합니다.

‘나’는 가족들의 권유를 못 이겨 선생이 취직자리를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지만 돌아온 것은 선생의 긴 유서입니다.

짙게 드리워진 죽음

연재 당시의 제목 ‘마음 선생의 유서’와 마지막 장 ‘선생의 유서’가 말해주듯 ‘마음’은 죽음이 지배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선생과 나’에서 선생은 자신이 찾아간 무덤의 주인이 친구라고만 말할 뿐 그 이상 구체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나’는 선생이 고인임을 일찌감치 밝힙니다. 무덤의 주인은 누구이고 왜 죽었으며 선생 역시 왜 세상을 떠났는지 초반부터 궁금증을 유발합니다.

선생을 만난 지 1년이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나’가 보는 앞에서 선생은 부인과 ‘(부부) 둘 중 누가 먼저 죽을까’를 놓고 대화를 나누지만 가벼운 농담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나’가 고향으로 내려온 뒤에도 죽음의 그림자는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버지는 스스로도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쾌유가 불가능한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편을 통해 전달된 선생의 유서는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크게 놀란 ‘나’는 위독한 아버지를 제쳐두고 도쿄로 향합니다.

죽음 부른 삼각관계

유서에서 선생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나가며 왜 자신이 염세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지방에서 부유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던 선생은 장티푸스로 부모를 거의 동시에 잃습니다. 하지만 숙부가 재산의 대부분을 빼돌려 제대로 된 상속을 받지 못합니다. 선생이 염세주의자가 된 출발점이자 ‘나’에게 아버지의 사망 전에 유산을 정리할 것을 충고한 이유입니다.

도쿄대학생이었던 선생은 남은 유산을 처분하고 도쿄로 상경한 뒤 다시는 귀향하지 않습니다. 대신 청일전쟁에서 남편이 전사한 중년 부인의 집에서 하숙합니다. 부인의 외동딸인 아가씨에 사랑을 느끼던 선생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채 불우한 친구 K를 불러들여 함께 하숙합니다.

K 역시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선생에 고백하자 선생의 마음은 크게 흔들립니다. 선생은 강인하고 금욕적인 K에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선생은 자신의 사랑을 K에게 털어놓은 적도 없습니다. 삼각관계의 돌파구를 찾던 선생은 K가 사랑으로 인해 평정심을 잃었다며 그의 약점을 잡습니다. 그리고 부인에게 아가씨와 결혼하겠다고 선수를 칩니다.

선생과 아가씨의 결혼 사실을 부인으로부터 듣게 된 K는 크게 실망해 자살합니다. 선생의 연심이나 결혼 계획을 선생으로부터 직접 듣지 못한 것도 K가 실망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려 깊은 K는 유서에도 선생에 대한 원망이나 아가씨에 대한 사랑을 암시조차 하지 않습니다. 선생이 더욱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 이유입니다. ‘선생과 나’에 제시된 무덤의 주인은 K였습니다.

그에 앞서 ‘양친과 나’에서 ‘나’의 아버지는 신문에 보도된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 마레스케의 자살에 주목한 바 있습니다. 노기 마레스케는 1977년 세이난 전쟁에서 연대 깃발을 빼앗긴 뒤부터 자살을 결심했지만 그로부터 35년 뒤인 1912년 메이지 일왕의 장례식에 맞춰 할복했습니다.

외형적으로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던 선생 역시 두 사람의 죽음으로 메이지 시대가 저물자 자신도 죽어야 할 때가 왔다고 결심해 ‘나’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합니다. 선생의 자살 결심은 K의 죽음 당시에 한 것이지만 실행은 노기 마레스케와 마찬가지로 뒤늦게 옮긴 것입니다.

윤리적 인물들

‘마음’의 등장인물 숫자는 많지 않습니다. ‘나’, 선생, 선생의 부인, 그리고 선생의 유서에 처음 등장하는 K가 등장인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생에 ‘시즈(静)’라 불려 유일하게 이름의 전부 혹은 일부가 공개되었지만 여성인 선생의 부인은 대상화된 존재로 내면이 거의 묘사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유서 속에서 선생과 K는 여성을 폄하하는 듯한 시각을 보이기도 합니다. 남존여비가 잔존했던 시대의 작품인 탓으로 해석됩니다. ‘마음’에서 여성 등장인물의 비중은 낮습니다.

‘나’는 연인이 없으며 여성에 대한 관심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는 선생의 유서 속 삼각관계가 보다 극적으로 부각되는 밑거름이 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K의 죽음은 의사소통 부재가 원인으로 보입니다. 선생과 K는 절친한 친구이면서도 서로에게 항상 과묵했습니다. 둘만의 여행을 떠나지만 누구도 본심을 털어놓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묵함이 미덕으로 인정받던 시대라 해도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답게 평소에도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였다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선생이 지나치게 윤리적인 인물이었던 점도 파국의 지렛대로 작용했습니다. 선생이 자기중심적 인간이었다면 K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사랑의 승자로서 의기양양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말이 K의 죽음을 촉발한 직접적 원인은 아니라고 치부했을 수 있습니다. K가 나약했다고 규정할 수도 있었습니다. 선생이 적당히 현실적이었다면 죄책감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끝내 타협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합니다. 선생이 크나큰 상실감에 빠져들게 된 숙부의 배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친구를 배신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무고한 선생의 부인만 피해자가 된 셈입니다.

경제적 여유 속에서 특별한 직업도 없이 염세적이며 자신이 설정한 윤리적 기준에 충실한 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 선생은 나쓰메 소세키의 1910년 작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사람은 독서를 즐겨 소양이 깊고 내면이 섬세하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도쿄대학 출신으로 영국 런던에 국비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위장병과 신경쇠약에 오래 신음했던 나쓰메 소세키 본인의 자아를 투영한 것으로도 보입니다.

‘마음’에 등장하는 세 남자, ‘나’, 선생, K는 모두 학력 수준이 높지만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고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거나 의절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고독한 남자들입니다. 그들의 고독은 급속한 근대화 물결에 내몰린 일본인의 상실감을 대변합니다. 선생과 K의 고독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끄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심리 묘사 압권

제목 ‘마음’이 말해주듯 심리 묘사는 압권입니다. ‘선생과 나’와 ‘양친과 나’에서는 각각 선생과 가족을 상대하는 ‘나’의 심리 차이가 뚜렷합니다. ‘선생의 유서’는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순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는 만큼 선생의 심리가 가감 없이 표현됩니다.

숙부에 배신당했을 때의 분노, 누구에게도 말 못한 아가씨에 대한 사랑, K와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된 불안, 아가씨와의 결혼 결정 및 K의 자살을 전후한 시기의 죄의식 등 복잡한 심경이 진솔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연재 당시 직접 쓴 광고문에서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자는 이 소설을 읽으라’며 자신감을 표출했다고 합니다.

‘마음’은 무려 100년 전의 작품이지만 섬세한 문장과 정갈한 문체가 돋보입니다. 현시점에 봐도 낡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의 시점에서 제시되는 ‘선생과 나’, ‘양친과 나’와 달리 선생의 시점에서 제시되는 ‘선생과 유서’는 선생 특유의 조심스러운 말투가 고스란히 반영되었으며 문장의 호흡이 긴 편입니다.

‘선생과 나’, ‘양친과 나’와 달리 ‘선생과 유서’는 따옴표를 통한 대화의 직접 인용이 매우 적습니다. 대부분의 대화는 선생의 과거 회상 시점에 의거해 간접 인용 처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생과 K의 삼각관계가 극대화되면서부터는 직접 인용도 등장합니다.

‘선생과 유서’는 선생이 쓴 유서의 인용이라 각각의 장이 여는 낫표(「)로 시작되지만 닫는 낫표(」)는 없어 의문을 유발합니다. 대신 ‘선생과 유서’가 모두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에만 닫는 낫표(」)를 사용합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의도에 따른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유서 이후의 뒷이야기는 없습니다. 선생의 자살 이후 부인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나’와 가족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제시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나’와 가족의 관계는 매우 소원해졌을 것이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선생과 숙부, K와 그의 가족들의 전철을 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뒷이야기를 전혀 묘사하지 않은 갑작스런 결말은 독자의 상상을 자극하며 보다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 후 - 섬세하며 압도적인 심리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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