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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 비극 넘어 신화로 완성된 운명적 사랑 애니메이션

※ 본 포스팅은 ‘너의 이름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쿄에 거주하는 고교생 타키는 산골마을에 거주하는 여고생 미츠하와 몸이 뒤바뀝니다. 주 2-3회 몸이 뒤바뀌는 체험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적응합니다. 생판 모르는 두 사람은 기묘한 체험을 공유하며 서로에 이끌리기 시작합니다.

‘스위치’에서 ‘백 투 더 퓨처’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원작, 각본, 연출을 맡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시공간이 어긋난 청춘남녀의 사랑을 묘사하는 SF 판타지 로맨스입니다.

‘너의 이름은.’은 기존 영상 작품들의 익숙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남녀의 성이 바뀌는 기본 전개는 1991년 작 영화 ‘스위치’ 등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사랑하다 결말에서 만나는 전개는 1997년 작 ‘접속’을 연상시킵니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며 인연에서 비롯된 운명적 사랑을 강조하는 주제 의식도 ‘접속’과 유사합니다.

공간만 다를 뿐 동시대를 함께 사는 듯했던 두 주인공이 실은 3년 어긋났다는 설정은 ‘너의 이름은.’의 반전입니다. 타키는 미츠하가 3년 전 혜성이 낙하하는 대재난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과거로 되돌아가 미츠하를 살리려 노력합니다.

미츠하가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부터 부활시키려는 노력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시간을 되돌려 비극을 막으려는 노력은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미츠하가 대재난을 사전에 인지해 친구들과 함께 인명 피해를 막으려 동분서주하는 전개는 속도감이 다소 떨어집니다. 미츠하가 성인이 된 모습이 초반에 제시되어 그녀가 생존할 것이 이미 암시됩니다. 예정된 귀결을 향한 과정을 설명적으로 풀어나가 지루해지는 감이 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안타까움, 도쿄 대지진에 대한 두려움

‘티아마트 혜성’이라는 가상의 혜성에서 비롯된 재난 및 막대한 인명 피해는 2만여 명이 사망 및 실종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은유로 해석됩니다. 타키는 구직 활동을 하며 “도쿄도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며 공간의 붕괴와 그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희생에 대한 공포를 드러냅니다.

일본은 현재 도쿄 대지진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파괴되고 생명이 희생되면 그만큼의 추억과 사랑 또한 소멸한다는 슬픔에 신카이 마코토는 섬세하게 초점을 맞춥니다.

타키가 미츠하의 마을 찾기에 중대 단서를 제공하는 그림 취미를 업으로 삼으려는 전개 또한 애니메이터 신카이 마코토 본인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너의 이름은.’은 자연 재해와 죽음조차 뛰어넘는 운명적이며 신화적인 사랑을 묘사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요소들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요소들도 여전합니다. SF 판타지 로맨스는 ‘별의 목소리’, ‘초속 5센티미터’, ‘별을 쫓는 아이’ 등에서 제시된 장르입니다. ‘별의 목소리’와 ‘초속 5센티미터’ 등에 제시된 압도적인 색감의 화려한 하늘 및 우주의 아름다움은 ‘너의 이름은.’에도 계승됩니다.

타키를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 도쿄는 ‘초속 5센티미터’, ‘언어의 정원’ 등에서 강조된 바 있습니다. 산골 소녀 미츠하는 대도시 도쿄의 도회적 삶을 동경합니다. 신주쿠 역 주변, 도쿄 타워, 롯폰기 힐스, 요츠야 역 등 도쿄의 곳곳이 자주 등장합니다. 타키가 아르바이르를 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IL GIARDINO DELLE PAROLE’은 ‘언어의 정원’을 뜻합니다. 신카이 마코토가 자신의 전작 제목을 레스토랑 이름으로 활용한 유희입니다.

결말을 장식하는 도쿄 신주쿠구 스가 신사의 계단은 ‘초속 5센티미터’의 결말의 공간적 배경인 도쿄 요요기 산구바시의 건널목을 연상시킵니다. 두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인연을 강조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스치는 공간이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접속’에서도 두 주인공이 레코드샵 계단에서 스쳐가는 장면이 유명합니다.

두 주인공이 스쳐가는 가운데 긴가민가하면서도 서로를 확인하지 못한 ‘초속 5센티미터’와 달리 ‘너의 이름은.’에서는 서로 스친 후 뒤를 돌아보며 제목 그대로 “너의 이름은?”이라 물으며 진정한 만남의 시작을 강조합니다. ‘초속 5센티미터’의 절절한 비극은 ‘너의 이름은.’에서 해피엔딩으로 바뀝니다.

익숙한 요소들을 맛깔스레 버무리고 유머 감각에 해피 엔딩을 더한 매끈한 대중성이 ‘너의 이름은.’을 일본의 기록적 흥행은 물론 한국의 흥행 돌풍으로 이끈 원동력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초속 5센티미터’의 애절함에 이끌렸다면 ‘너의 이름은.’의 대중성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연상녀와 남자 주인공의 해피 엔딩은 ‘언어의 정원’과의 공통점입니다.

미츠하가 거주하는 가상의 산골 마을 이토모리는 ‘별을 쫓는 아이’의 산골마을을 연상시킵니다. 도쿄와 촌락을 뚜렷이 대조하는 공간적 배경 설정은 ‘초속 5센티미터’ 등에서도 활용된 바 있습니다. 배경을 정밀하게 강조하는 작화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데뷔작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부터 활용된 바 있습니다. 정밀하게 작화한 배경은 뜬금없이 한두 컷 삽입하는 연출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영향도 엿보입니다.

교복 입은 10대 소년소녀가 주인공인 학원물 요소는 ‘별의 목소리’, ‘초속 5센티미터’ 등에도 활용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가 풋풋한 10대가 아닌 진정한 어른의 사랑을 보여줄 날이 올지는 의문입니다.

내레이션을 통한 전개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이래 신카이 마코토가 즐겨 사용한 연출 방식입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가 중요한 비중의 소품으로 활용되는 것 역시 ‘별의 목소리’부터 제시된 바 있습니다. 타키의 방 안에는 프라모델 박스가 보입니다.

‘무스비’와 제목의 마침표

‘너의 이름은.’의 흥미로운 점은 원제(‘君の名は。’)부터 마침표가 붙었다는 점입니다. 극중 대사에 자주 인용되며 한글 자막으로도 일본어 발음 그대로 활용된 ‘무스비(結び)’와 연관 지을 수 있습니다. 무스비는 일단 ‘매듭’으로 해석됩니다.

서술어가 붙지 않아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은 제목에 ‘무스비’, 즉 ‘매듭’이 붙었다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일본어에서는 ‘무스비’가 문장의 호응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호응이 완성되지 않은 어색한 제목에 역설적으로 매듭이 붙은 것입니다.

미츠하의 붉은색 머리끈, 즉 매듭은 두 사람의 인연과 사랑을 상징합니다. 한글 자막을 통해 ‘이어짐’으로 강조한 것과 연관됩니다. 미츠하가 머리를 짧게 잘라 머리끈을 매지 않게 되자 두 주인공의 몸은 더 이상 뒤바뀌지 않게 됩니다. 두 사람이 이어지지 않게 된 것입니다. 미츠하는 도쿄를 직접 방문해 3년 전 중학생이던 타키에게 자신의 머리끈을 전하며 자신을 잊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이어짐을 원한 것입니다.

두 주인공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지만 시공간 속에서 어긋나 기억에 실패합니다. 제목 ‘너의 이름은’에 마침표가 붙은 이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침표는 잠시 끊어진 두 사람의 인연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두 주인공은 죽음마저 넘나드는 우여곡절 끝에 결말에서 만납니다. 서로의 이름을 묻는 마지막 대사 “너의 이름은.”으로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작품의 마침표, 즉 매듭이 찍히는 셈입니다. 동시에 타키와 미츠하의 진정한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되기에 ‘이어짐’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2달에 한 번 씩 개최되는 일본의 전통 씨름 스모에서는 하루 동안의 마지막 경기를 ‘무스비’로 부릅니다. 하루를 마무리 짓는 ‘매듭’이자 동시에 다음날 경기로의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잎’으로 명명된 미츠하 집안 여자들

극중에는 ‘무스비’가 전통 매듭으로 설명되는 과정에서 거미줄과 함께 나뭇잎이 한 컷 삽입되어 강조됩니다. 나뭇잎의 잎맥은 물관과 체관을 통해 물과 무기양분을 전달하는 생명줄입니다. 실의 매듭과도 비견될 수 있으며 생명으로 ‘이어지는’ 잎맥입니다.

미츠하 집안 여성들의 이름과 잎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신사를 관리하는 할머니의 이름은 첫 번째 잎을 의미하는 ‘一葉’, 즉 히토하(ひとは)입니다. 사망한 어머니의 이름은 두 번째 잎을 뜻하는 후타바(二葉 ; ふたば)입니다. 후타바의 두 딸이자 히토하의 두 손녀는 각각 세 번째 잎과 네 번째 잎을 뜻하는 미츠하(三葉 : みつは)와 요츠하(四葉 ; よつは)입니다. 미츠하 집안의 네 명의 여자는 선대에서 후대로 잎맥처럼 ‘이어지며’ 신사를 지키는 일을 물려받습니다.

타키가 거주지는 요츠야(四ツ谷)입니다. ‘하나, 둘, 셋, 넷’으로 이름 붙여진 미츠하 집안의 여자들의 이름과 묘한 접점이 엿보입니다. 타키(瀧 ; たき)의 이름은 ‘폭포’를 뜻하는데 미츠하 집안의 성 미야미즈(水宮)에도 ‘물’을 뜻하는 ‘水’자가 포함되어 두 주인공이 천생연분임을 암시합니다. 타키와 미츠하가 시공간을 교차해 만나는 장소는 나가노현의 스와호를 모델로 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 정상입니다.

두 가지 의문 남아

서사에는 궁금증이 남습니다. 첫째, 몸이 자주 뒤바뀌자 스마트폰 등을 통해 나름의 규칙까지 정한 두 주인공이 왜 서로 만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합니다. 두 사람이 대면했다면 규칙을 정하는 것도 훨씬 손쉬웠을 것입니다.

미츠하가 중학생이던 타키를 찾아가는 장면이 제시되고 결말에는 두 사람의 우연한 만남으로 마무리되지만 이전까지 두 사람은 만나자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결말 직전까지는 두 사람을 굳이 만나지 않게 하려면 약속을 잡지만 어긋나도록 각본을 준비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둘째, 타키는 무의식중에 호수의 그림을 그린 뒤 미츠하의 고향 이토모리를 찾으러 떠납니다. 하지만 극중의 호수 실물과 거의 흡사한 타키의 그림을 보고도 알아보는 이가 늦게야 등장하는 전개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혜성 낙하로 숱한 사망자가 발생한 공간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망자가 다수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깊이 각인되기 마련입니다. 타키의 노력이 힘겨워지도록 하기 위한 연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초반에 타키의 몸에 미츠하가 빙의되었을 때 타키가 무릎을 꿇고 앉는 등 여성적 행동을 하는 장면에서 목소리를 맡은 카미키 류노스케가 여성적 연기로 뒷받침해 인상적입니다. 타키가 짝사랑하는 미키는 나가사와 마사미가 목소리를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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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spawn 2017/01/22 11:09 # 삭제

    왜 안 올라오나 했는데 드디어 올리셨네요. 재미있는 리뷰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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