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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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코드 - '푸코의 진자'의 쥬니어 버전

성배 찾기에 관한 서양인들의 집착은 실로 대단합니다. ‘아서 왕 이야기’에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3’나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에 이르기까지 실체조차 불분명한 성배에 대한 그들의 집착은 광적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이렇듯 서양인들의 잠재적 정신 세계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수수께끼 중 하나인 성배,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술 작품, 극단적 가톨릭 종파 오푸스 데이와 시온 기사단이라는 비밀 결사의 대립, 그리고 밀교적 성(性) 의식과 음모 이론을 혼합해, 하버드 대학의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이 미모의 여수사관 소피 느뵈와 함께 의문을 풀어나가는 소설 ‘다 빈치’ 코드‘는 현재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다 빈치 코드’에서도 중시되는 비밀 결사나 음모 이론이 최근 각광을 받는 이유는 우선 거대하고 철저한 조직 사회의 시스템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압박감와 좌절감 때문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일(전쟁, 대통령 탄핵, 직장에서의 해고, 변심한 아내 등)이 생겨버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서야, 퍼즐을 꿰어 맞추듯 전후과정을 깨닫게 되는 방식이 음모 이론과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음모 이론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동경입니다. 자신이 모르는 거대한 조직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숭배죠. 동경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처럼, 합리의 탈을 쓴 채 비합리적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 대해 느끼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 빈치 코드’는 결코 난해하거나 복잡한 작품이 아닙니다. 작자 댄 브라운이 처음부터 헐리우드에서 영화화(그래서인지 소설에서는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과 마틴 스콜세지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되는 것을 염두에 집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적당히’ 지적이며 ‘적당히’ 비틀어 놓았죠. 따라서 ‘스승’의 정체나 몇몇 반전들은 너무나 전형적이어서 별다른 암시 없이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결말도 그 정도의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되더군요. 대중 소설에서 파탄적인 결말이 나거나 이 세상을 뒤집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 리는 만무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터미네이터3’의 파탄적인 결말을 높이 평가합니다.)

일부에서는 지적 깊이가 없다며 ‘다 빈치 코드’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온당한 비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유치원 학생에게 다차 방정식을 가르칠 수 없듯이 인문학적 소양이 결여된 현대인들에게 난해한 에코의 소설을 처음부터 들이밀 수는 없는 법이죠. 따라서 인문학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벼운 소재를 바탕으로 재미있게 소설을 쓴 댄 브라운에 대한 비판은 가혹한 것입니다. 차라리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부르짖는 에코에 비해 철학적 깊이가 결여된 것을 비판한다면 모를까 말입니다.

이렇듯 ‘다 빈치 코드’가 철저히 헐리우드 스릴러의 구조를 가졌기에 이미 영화화가 확정되었고 랭던 역으로 탐 행크스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어서 소설을 읽을 때에는 쉽게 연상하며 작품을 읽을 수 있었스니다. 탐 행크스의 최신작 ‘터미널’ 때문인지 소피 역으로는 캐서린 제타 존스를 생각하며 읽었습니다만 아마도 캐스팅 작업에서는 프랑스 여배우나 프랑스어에 유창한 헐리우드 여배우가 캐스팅되겠지요. 사실 ‘다 빈치 코드’를 다 읽고 나서는 추후의 영화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미 한 번 읽고 책장 한 구석에 방치해 둔 에코의 소설들에 다시 눈이 가더군요. 최근 워너의 가격 인하 정책으로 저렴한 가격에 풀린 ‘장미의 이름’ dvd도 구입해 다시 보고 싶어졌고요. 영화 ‘장미의 이름’이 아무리 에코의 원작 소설에 누를 끼쳤다해도 그 지적 수준과 진지한 묵시록적인 분위기만큼은 ‘다 빈치 코드’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덧글

  • 제리스 2004/12/29 23:57 #

    저는 아직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극찬'을 해서 한편으로는 읽기 두려운 작품입니다.
  • anakin 2004/12/30 00:12 #

    으음... 제가 너무 기대하고 책을 읽었나 봅니다. 디제 님의 글을 읽고 나서도 속았다는 기분을 씻기가 힘드네요 :(
  • 마빈 2004/12/30 02:09 # 삭제

    우리나라에서 책이 성공한 건 마케팅의 힘이라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단권으로도 낼 수 있는 책을 두 권으로 쪼개서 낸게 아쉽더라고요. 뭐랄까.. 너무 상술의 냄새가 짙게 풍긴 책이었어요. 책 읽으면서 저도 조금 실망했거든요^^; 그렇지만 영화는 기대되요. 내셔널트레져가 성공한 것처럼 왠지 이 영화도 기대해봐도 좋을 거 같아요.
  • hardboiled 2004/12/30 02:30 #

    내내 읽어보긴 봐야지 하고 있는 책입니다. 어째서 이토록 정이 생기지 않는지 모르겠소.
    아마, 작품성을 인정하지 않는 글을 많이 봐서는 아닌지 싶소.

    님의 글에서는 애정과 여유가 느껴집니다.
    이 몸이 느끼는 대로, 글을 쓰고 느낌을 적는데 부담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내내 풍요로우시길 바랍니다.
  • TITANESS 2004/12/30 09:17 #

    '푸코의 진자' 주니어인가요? ^^; ('장미의 이름'과 비교되는 얘길 들어봐서.^^)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뭐라 언급하기 힘들지만, 웬지 읽어보고싶기도 하고 아닐것 같기도 하는군요.
  • 마르스 2004/12/30 09:30 #

    소피역에 에바 그린 강력 추천합니다. 하지만, 톰 행크스와 커플이 되기엔 나이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군요. 그리고, 톰 행크라고 쓰셨네요 ^^
  • 재롱바라기 2004/12/30 10:11 #

    아직 2권을 읽지 않았고... 대충 내용이.. 심란해요 저는;;
  • 디제 2004/12/30 10:31 #

    제리스님/ 가벼운 마음으로 보셔도 될만한 작품인 것 같은데요.
    anakin님/ 그런 기대는, 혹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에코의 소설들을 읽으시면 충족될 것 같은데요.
    마빈님/ 마케팅의 힘만은 아닐 겁니다. 전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고 재미를 부인할 수는 없으니까요. 책 쪼개 내기는 한국 번역 출판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죠.
    hardboiled님/ 킬링 타임용 대중 소설입니다. 그저 재미로 읽으시면 될 듯 합니다. hardboiled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TITANESS님/ '푸코의 진자'와 비슷하다고 한 것은 밀교라든가 기사단이라든가 성배 같은 주제가 현대적 관점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마르스님/ 사실 소설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은 40대인데 탐 행크스는 50을 바라보죠. 로맨틱하기 보다는 좀 코믹한 이미지이고요.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니 무난한 캐스팅이겠지만 말입니다.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재롱바라기님/ 재롱바라기님께는 어려우셨나 보군요.
  • 닥터지킬 2004/12/30 10:33 #

    <장미의 이름> 영화가 소설에 누를 끼쳤던가요? 오히려 대중들 입장에선 소설보다 영화가 더 가까웠을텐데.
    <다빈치코드>는 선 자리에서 다 읽었었죠. 재미있기도 하고 오래 끌 책도 아니어서...
  • 마리 2005/01/05 17:25 #

    이상하게 정이 안갑니다....-.-;
    푸코의 추[제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제목이 이렇습니다^^;]나 마저 읽어야겠어요.
  • 잠본이 2005/01/06 22:43 #

    푸코의 진자는 성배 얘기가 한두 페이지 나오다가 말죠...(먼산)

    사실 음모론을 소재로 했다는 걸 빼면 전혀 관계없는 소설인데;;
  • 디제 2005/01/07 09:47 #

    닥터지킬님/ 에코의 팬들은 영화 '장미의 이름'에 상당히 실망했다고 합니다. 저는 숀 코너리와 뽀송뽀송한 크리스챤 슬레이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특히 KBS의 더빙판에서 유강진님이 맡았던 숀 코너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마리님/ 아마도 '다 빈치 코드'가 깊이가 없기 때문이겠죠.
    잠본이님/ '푸코의 진자'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음모론과 성당 기사단 아닐까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 겠습니다.
  • Ritsuko 2005/08/20 20:32 #

    소피역은 오드리 뚜트가 역으로 케스팅 된 걸로...
    그리고 소설은 마음에 안들었지요... 그 소설에서 나온 것 중 반정도는 사전에 다른 책들에 의하여 알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봐라라는 압력을 넣어서 봤습니다만 상당히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반전도... 책 중반정도에 누구누구가 범인같아라고 예측을 했더니 실제로 그렇게 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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