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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클럽 - 치기어린 마초이즘, 현란하게 비판 영화

※ 본 포스팅은 ‘파이트 클럽’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척 팔라닉의 소설을 데이빗 핀처 감독이 영화화한 1999년 작 ‘파이트 클럽’이 재개봉되었습니다. 소심한 화이트 컬러인 내레이터(에드워드 노튼 분)가 카리스마 넘치는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 분)에 이끌려 비밀 조직 파이트 클럽 창설에 협력한 뒤 대형 테러를 감행한다는 줄거리입니다.

프레임 삽입

‘파이트 클럽’은 후반의 반전으로도 유명합니다. 극도로 대조적인 성향의 내레이터와 타일러가 실은 동일인물로 타일러가 내레이터의 이중인격임이 드러납니다. 버디 무비의 전체적인 얼개를 일거에 뒤집는 반전입니다. 내레이터가 사용하는 가명 코르넬리우스, 루퍼트, 트래비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이 초반에 일찌감치 드러나지만 타일러 또한 내레이터의 실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레이터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타일러로 자아가 분열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초반에 타일러는 본격 등장하기 전까지 4번에 걸쳐 한 프레임 씩 삽입됩니다. 내레이터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복사기 장면, 내레이터가 의사에 불면증을 호소하는 장면, 내레이터가 실내 농구장 모임에 참석하는 장면, 그리고 말라(헬레나 본햄 카터 분)의 뒷모습 장면에 타일러가 한 프레임 씩 삽입됩니다. 내레이터의 잠재의식 속에 타일러가 싹트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어 내레이터와 타일러가 공항의 무빙 워크에서 엇갈리며 타일러의 본격 등장이 시작됩니다.

데이빗 핀처가 인물을 단 한 프레임 삽입하는 장난기는 1995년 작 ‘세븐’에서 먼저 선보인 바 있습니다. 형사 밀스의 아내 트레이시가 연쇄살인마 존에 의해 살해되었으며 잘린 목이 택배로 도착했음을 밀스가 인지하자 트레이시의 미소 짓는 얼굴이 한 프레임 삽입되었습니다. 참으로 섬뜩한 편집입니다.

‘파이트 클럽’에서 타일러의 모습이 한 프레임 삽입되는 이유는 극중에서 암시됩니다. 밤에 수면을 취하지 않고 영사기사로 일하는 타일러가 가족 영화에 남성 성기와 같은 포르노를 한 프레임 삽입하는 장난기가 있다고 제시됩니다. 이 장면에서는 필름의 릴을 연결하기 위한 소위 ‘담배 구멍’이 설명되는데 영화관의 디지털 상영이 일반화되면서 ‘담배 구멍’은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했습니다.

결말에도 프레임 장난은 이어집니다. 내레이터와 말라가 손을 잡고 신용 카드 회사의 빌딩들이 폭파되어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하는 장면에서 남성 성기가 한 프레임 삽입됩니다.

대형 빌딩이 폭탄 테러로 줄줄이 붕괴하는 결말은 물론 여객기 사고가 상세히 묘사되는 초반 장면, 그리고 주인공이 비밀 조직 결성에 나서 테러를 획책하는 줄거리의 ‘파이트 클럽’은 2001년 9.11 테러 이후였다면 제작되지 못했거나 혹은 각본이 변경되어 보다 밋밋한 영화로 탄생되었을 듯합니다.

마초이즘 비판

‘파이트 클럽’은 타일러의 대사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대량 소비 및 물질 만능 주의를 비판합니다. 무위를 강조하는 도가 사상과의 유사점도 엿보입니다. 내레이터가 몽유병을 통해 만든 허상 타일러는 호접지몽으로 빗댈 여지도 있습니다.

2000년 작 ‘메멘토’와 마찬가지로 자아의 분열과 불확실성을 강조해 서양을 지배한 합리론에 대한 현대의 반론으로 풀이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은커녕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이 진정 비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치기어린 마초이즘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초자아가 아니면 섹스조차 할 수 없는 남성의 나약함을 풍자합니다. 어쩌면 내레이터는 타일러로 화하지 않으면 발기 불능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내레이터는 자신의 집을 꾸미는 데 아낌없이 돈을 쓰지만 결혼은 물론 연애에 대한 욕구는 전혀 없습니다. 말라가 내레이터와 섹스를 즐기면서도 그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내레이터와 타일러, 그리고 말라가 하나의 장면에 동시에 등장하는 않는 연출도 타일러가 허상임을 암시합니다.

파이트 클럽에 가담하는 남성들 또한 모두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되는 것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조차 없으며 타일러의 레밍스와 같습니다.

파이트 클럽 규칙의 모순

내레이터의 치기와 망상의 극단적 산물인 테러 집단 파이트 클럽은 역설적 조직입니다. 타일러가 만든 규칙 중 1번과 2번은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로 동일합니다. 비밀 조직의 성격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원의 발설을 금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규칙 4번은 ‘처음 온 자는 무조건 싸운다’입니다. 신입 조직원의 존재를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파이트 클럽은 미국 전역에 지부를 둘 정도로 조직이 급성장합니다. 입소문을 통한 파이트 클럽의 확장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규칙 1번 및 2번 규칙을 고지식하게 수용하지 않고 ‘믿을 만한 이에게는 파이트 클럽의 존재를 알리고 가입을 권유하라’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4번 규칙 및 조직 확장과는 분명한 모순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대사 리듬감 압도적

내레이터의 대사 및 내레이션과 더스트 브라더스의 배경 음악은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마치 내레이터가 랩을 하듯 리듬감이 넘칩니다. 비유법과 욕설이 어우러진 대사도 독특합니다. 139분의 러닝 타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는 현란한 편집과 더불어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타일러가 파이트 클럽의 조직원들을 독려하는 대사는 실제로 음악이 입혀져 랩과 같이 OST에 포함되었습니다. OST의 마지막 18번째 곡 ‘This is your life’입니다.

파이트 클럽의 어린 조직원 앤젤 페이스는 개봉 당시 28세였던 자레드 레토가 연기했습니다. 현재의 깡마른 모습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통통하고 금발로 염색한 모습입니다. 자레드 레토의 이름은 타이틀 시퀀스부터 제시되지만 극중에서 대사는 거의 없습니다.

한글 자막 ‘테일러’?

재개봉된 ‘파이트 클럽’의 한글 자막은 ‘타일러(Tyler)’를 ‘테일러’로 번역했습니다. 1999년 극장 개봉 당시 자막은 물론 국내 출신 블루레이 자막에도 ‘타일러’로 표기되었는데 어색합니다. 극중에서도 등장인물들은 테일러가 아닌 타일러로 발음합니다. ‘테일러’로 발음이 되려면 ‘Tailor’로 표기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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