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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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 디테일 돋보이나 영화적 힘은 부족 영화

※ 본 포스팅은 ‘아가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기단의 일원인 숙희(김태리 분)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 분)의 하녀로 신분을 위장해 저택으로 보내집니다. 숙희는 일당인 백작(하정우 분)과 히데코의 사이가 가까워지도록 유도합니다. 하지만 히데코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에 숙희의 마음이 흔들립니다.

볼거리 많아

박찬욱 감독의 3년 만의 신작 ‘아가씨’는 영국의 작가 세라 워터스의 2002년 작 소설 ‘핑거스미스(Fingersmith)’를 원작으로 합니다. ‘소매치기’를 뜻하는 제목과 같이 소매치기 출신의 젊은 여성이 사기를 위한 음모에 가담하지만 오히려 범죄 대상인 귀족 여성에 사랑을 느껴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로 시공간적 배경을 옮기고 등장인물들을 한국인과 일본인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주된 공간적 배경인 저택이 동서양의 건축 양식을 혼재한 데다 동떨어진 숲속에 위치해 비현실적이어서 판타지에 가깝습니다. 디테일을 중시하는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답게 세트, 의상, 분장, 소품 등은 공들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타이틀 롤 아가씨가 일본인이며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 일본어 대사, 기모노, 일본 춘화 등 일본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또 다른 볼거리는 철저한 성인용 스릴러다운 배우들의 과감한 노출 연기입니다. 두 여배우 김민희와 김태리는 음모를 제외한 거의 모든 신체를 주저하지 않고 드러냅니다. 동성애를 소재로 했으며 두 여성 등장인물의 사랑과 섹스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만큼 노출 수위는 파격적입니다. 하정우는 엉덩이를 노출합니다. 문소리의 특별 출연 장면은 흥미롭습니다.

히데코의 이모부이자 히데코와의 결혼을 노리는 코우즈키(조진웅 분)는 성애 소설과 춘화를 수집합니다. 그는 히데코를 앞세워 귀족 남성들을 불러다 ‘금병매’ 등 성애 소설의 낭독회를 개최합니다. 코우즈키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숨겨진 지하실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지하실의 실체는 궁금증을 증폭시킵니다.

밋밋한 캐릭터

‘아가씨’는 디테일과 노출 연기로 인해 상당한 볼거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힘은 부족합니다. 3부 구성을 통해 1부는 숙희의 시점, 2부는 히데코의 시점, 그리고 3부는 결말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정신 병원 수감 장면으로 종료되는 1부와 2부는 시점 변화에 따라 사건의 실체가 다르게 제시되는 구성입니다. 누구의 의도와 주도에 따라 사건이 전개되었는가가 반전 포인트입니다.

하지만 중요 등장인물 4명 중 히데코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입체감이 결여된 평면적인 인물입니다. 히데코의 마음은 2부를 통해 변화를 거쳤음이 드러나지만 숙희, 백작, 코우즈키는 밋밋할 정도로 변화가 없습니다. 코우즈키는 감정 이입이 불가능하며 분량도 미미한 악역입니다. 백작은 비중은 크지만 히데코와의 사랑 놀음에도 내적 갈등이 전혀 없는 사기꾼입니다. 따라서 두 남성에게는 반전 포인트가 거의 없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약점은 숙희의 일편단심입니다. 원작의 제목이 말해주듯 소매치기로서 범죄에 닳고 닳은 인물이 숙희이지만 히데코에 마음을 빼앗긴 뒤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기에 가담한 자신이 범죄의 대상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없습니다. 소매치기로서 갈고 닭은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합니다. 관객도 그녀가 소매치기 출신이라는 사실을 잊고 하녀라는 현 위치에 집중하게 됩니다. 145분으로 러닝 타임은 충분하지만 숙희의 심리 변화는 갑작스러울 뿐입니다. 긴 러닝 타임이 지루합니다.

‘아가씨’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에 도달합니다. 반전을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비슷한 소재의 에로틱 스릴러 ‘바운드’나 ‘와일드 씽’에 비하면 서사와 반전이 심심합니다. 유머 감각이 없지 않으나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배경과 하녀라는 주인공의 신분을 감안하면 정치적, 사회적 함의도 반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두 여성의 사랑에 집중해 페미니즘 영화로 해석될 여지를 제외하면 정치적, 사회적 함의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에 기대했던 ‘힘’은 부족

주인공의 하녀 신분은 김기덕 감독의 1960년 작으로 임상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바 있는 ‘하녀’를 연상시킵니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을 연상시키는 요소도 있습니다. 중요 소품인 신발은 ‘스토커’, 공간적 배경인 정신 병원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떠올리게 합니다. 강인한 여주인공은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에도 제시된 바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연출작이 지닌 엄청난 박력은 사실상 ‘올드보이’가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시작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토커’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이었습니다. ‘박쥐’만큼의 힘을 유지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 듯합니다. ‘아가씨’는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반면 대사를 포함한 디테일에 집중해 작위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볼거리가 숨겨진 듯했던 지하실의 실체도 공개된 뒤에는 실망스럽습니다. 코우즈키가 소장한 춘화에 등장한 거대 문어가 지하실에 숨겨져 있지만 어항 속에서 벗어나지 않아 정적입니다. 맥거핀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누군가의 실수로 문어가 어항 밖으로 나와 춘화의 장면을 코우즈키 혹은 백작에 고스란히 재현했다면 볼거리가 늘어났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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