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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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Report 프로야구 필자, 전 스포츠조선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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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 동서양 오컬트 요소의 혼성 호러 영화

※ 본 포스팅은 ‘곡성’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남 곡성에서 독버섯에 의한 것으로 의심되는 광기로 인해 살인사건이 발생합니다. 일본인 노인(쿠니무라 준 분)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마을에 나돕니다.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 종구(곽도원 분)의 외동딸 효진(김환희 분)이 광기에 빠지자 무당 일광(황정민)이 굿판을 벌입니다.

‘엑소시스트’ 연상시키는 줄거리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제목에 한자로 ‘울음소리(哭聲)’임을 병기합니다. 동시에 공간적 배경이 전남 곡성(谷城)입니다. 엔딩 크레딧에서 영화가 특정 지역을 지정한 것이 아님을 명시하지만 본편에서는 동음이의어를 절묘하게 활용해 ‘곡성(谷城)에서 터지는 곡성(哭聲)’을 묘사합니다. 마을 전체를 광기와 의문의 살인이 뒤덮어 아비규환의 울음소리로 가득합니다.

주인공 종구는 일본인 사내를 의심합니다. 일본인이 산 미끼를 낚싯바늘에 물리는 첫 장면은 그가 마을 전체를 낚아 올리려는 의도를 암시합니다. 원인 불명의 피부병에 시달리던 효진은 광기에 휘말려 옆집 할머니에 자상을 입힙니다. 일광은 일본인이 던진 미끼를 효진이 물었다며 종구에 거액의 돈을 요구해 굿판을 벌입니다. 하지만 효진이 고통스러워하자 종구는 굿판을 중단시킵니다.

귀신들린 소녀와 그녀의 가족의 고통, 그리고 초자연적 힘으로 소녀를 구하려는 주술사를 소재로 해 1973년 작 걸작 호러 영화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곡성’입니다. ‘엑소시스트’는 주술사를 신부가 맡았지만 ‘곡성’에서는 무당이 대신합니다. 신부(이인철 분)는 종구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합니다. ‘엑소시스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선을 긋습니다.

부제(副祭) 이삼(김도윤 분)이 종구를 돕지만 완성되지 않은 성직자답게 심약한 인물입니다. 이삼은 일본어가 가능해 일본인과의 의사소통의 유일한 창구이기도 합니다. 일본인은 일본 전통 도깨비 가면을 소장하고 있으며 일본식 주술을 시도합니다. 그는 죽음을 앞둔 자들과 그들이 죽은 뒤의 사진을 촬영하는 잔혹한 취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산송장처럼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어 가족마저 무참히 살해합니다. 극중에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단어이지만 좀비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좀비는 흔치 않은 소재임을 감안하면 과감한 시도입니다. 피와 흙, 오물로 뒤범벅된 ‘곡성’의 좀비 분장은 서양의 좀비 영화와는 차별화되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편 종구에게 살인 범죄에 관해 구체적으로 제보한 목격자인 의문의 젊은 여성은 소복 입은 귀신임이 드러납니다. 천주교, 굿, 귀신, 일본식 주술, 그리고 좀비까지 ‘곡성’은 동서양 공포 영화의 오컬트 요소를 모두 우려낸 혼성이자 잡탕입니다.

두 번의 교차편집

‘곡성’의 클라이맥스는 두 번의 교차 편집입니다. 첫 번째는 일광이 일본인을 노리고 한 1천만 원짜리 굿판입니다. 일광은 흰색 옷을 입고 흰색 닭을 제물로 한 채 일본인에 ‘살을 날리려’ 합니다. 일본인은 시장에서 구한 검정 닭을 제물로 일광의 굿에 맞서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에 앞서 일광이 마을에 첫 등장할 때 종구 집의 장독대를 깨뜨려 저주를 위해 숨겨진 까마귀를 찾아냅니다. 일본인이 효진을 저주하기 위해 까마귀를 숨겨 놓았다는 암시입니다. 일본인은 검정색 개를 키우는데 분노한 종구가 개를 죽이자 까마귀들이 날아와 개의 시체를 먹습니다. 일광은 백색, 일본인은 흑색으로 두 캐릭터는 선명히 대조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는 종구와 귀신, 이삼과 일본인이 각각 만나는 장면입니다. 귀신은 종구에게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집에 들어가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닭이 울 때까지 예수를 세 번 부정했던 베드로를 연상시킵니다. 종구는 효진을 비롯한 가족들이 걱정된 나머지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에 앞서 일광은 종구에게 일본인이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구원자라고 자신의 말을 바꾼 상황입니다. 종구와 친구들의 일본인 습격 장면은 종구 일당을 광기에 휘말린 짐승처럼 포착한 반면 일본인을 동정적으로 묘사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역전시킨 바 있습니다. 일광은 귀신에 의해 밀려나 상경하려다 마음을 바꿔 곡성으로 되돌아옵니다. 종구는 일광과 귀신 사이에서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망설입니다.

이삼은 일본인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그의 동굴로 잠입합니다. 종구 일당의 습격으로 일본인은 부상을 입은 채입니다. 이삼은 일본인이 순순히 정체를 고백하면 용서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의 손바닥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상흔이 노출됨과 동시에 손에는 악마의 손톱이 드러납니다. 그의 얼굴은 그가 소장했던 일본 도깨비 가면과 비슷해집니다. 본편이 시작되기 전 자막으로 삽입된 루가 복음의 예수의 부활이 부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괴한 방식으로 재해석됩니다. 그에 앞서 종구와 이삼에게 일본인이 “(나의) 목적을 말해줘도 믿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 대사와도 상통합니다. 악마임이 밝혀진 일본인은 이삼의 사진을 촬영합니다. 겁이 많았지만 용기를 냈던 이삼의 희생을 암시합니다.

일광의 정체

종구는 귀신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닭이 세 번째 울기 전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미 아내(장소연 분)와 장모(허진 분)를 살해한 효진이 종구 또한 살해합니다. 귀신은 종구만이라도 살리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광이 찾아와 카메라를 꺼내 종구 일가의 살해 현장을 촬영합니다. 일본인이 불태웠다고 거짓말하지만 종구가 아궁이를 뒤졌을 때 흔적조차 없었던 희생자들의 사진을 일광이 소장 중입니다. 즉 일광이 일본인과 동일인물이거나 혹은 한패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에 앞서 일광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 일본인이 산중에서 입는 일본 전통 속옷 훈도시를 착용한 장면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극중에는 일본에 대한 지식을 보유한 인물이 없어 ‘훈도시’라는 단어 자체가 제시되지 않은 채 ‘기저귀’로 언급되지만 일광의 훈도시 착용 장면은 이미 그가 일본인과 동일인물이거나 최소한 한패라는 강력한 단서입니다. 일광이 백색, 일본인이 흑색으로 대조를 이룬 색상 역시 트릭이었습니다.

‘곡성’의 카피 문구이자 종구에 대한 조언으로 대사로 제시되는 “절대 현혹되지 마라”는 실은 관객을 향한 것입니다. 영화의 교차 편집은 동일 시간대에 발생한 사건이라는 고정관념을 ‘곡성’이 산산조각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일본인과 일광이 동일인물로 해석된다면 두 번째 교차 편집은 모두 트릭에 불과합니다. 첫 번째 교차 편집의 일광이 일본인에 ‘살을 날리려’ 했던 굿과 일본인이 일광으로부터 방어하려는 듯한 주술 역시 의도 혹은 시간대가 다르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서사 의문점 적지 않아

배우들의 연기는 압권입니다. 베테랑 배우 쿠니무라 준의 산중의 알몸 연기, 정확히 러닝 타임 절반에 첫 등장하는 황정민의 굿 연기, 그리고 아역 배우 김환희의 광기 연기는 힘을 불어넣습니다. 등장 분량은 많지 않지만 천우희의 연기는 으스스하며 카리스마 넘칩니다. 더불어 러닝 타임 중반까지는 상당한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곡성’은 힘이 넘치지만 결코 친절하지 않으며 사실적인 영화도 아닙니다. 일본인의 마을 습격 원인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하필 소읍 곡성을 선택해 파멸시키려 한 것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연관된 설정이 삽입되지 않나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곡성’에서 과거 시점으로의 플래시백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해 인간은 현상만 볼 뿐 원인은 규명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을 상징하는 주제의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서사의 측면에서도 의문은 있습니다. 종구는 일본인의 여권 정보를 입수합니다. 하지만 그의 출입국 기록이나 전과 여부를 조회하는 장면은 제시되지 않습니다. 효진이 이웃집 할머니에 자상을 입히지만 경찰 조사를 받는 장면조차 없는 점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마을 일대에 원인 불명의 피부병이 돌고 연쇄 살인이 발생하며 신문에도 보도되지만 중앙 정부 차원의 개입이 없는 전개도 납득이 어렵습니다. 1년 전 메르스 사태에 대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초반부에는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장면이 많습니다. 음향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5세 관람가 판정도 납득이 어렵습니다. 유혈이 낭자한 것은 물론이고 머리에 농기구 네기가 박히는 장면이 제시되며 결말에서는 초등학생 소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이 제시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지 않은 관대한 심의는 납득이 어렵습니다.

추격자 - 잔인한 살인마, 더욱 잔인한 공권력의 무능
황해 - ‘추격자’ 의식, 강박관념에 갇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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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kiekie 2016/05/28 17:20 #

    꼼꼼한 감상문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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