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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임진왜란에 대한 진솔한 자기고백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경험한 조선 시대 명재상 유성룡의 진솔한 자기고백입니다. 1607년 사망한 유성룡의 아들인 유진이 1633년 유성룡의 생전의 글을 모아 간행한 ‘서애집’에 수록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의 ‘징비(懲毖)’는 시경 구절에서 인용한 것임을 서문에 해당하는 ‘자서(自序)’에서 유성룡이 밝히고 있습니다. ‘징비’는 ‘징계(懲戒)하여 후환을 삼가다(毖)’를 의미합니다. 즉 일본으로부터의 전대미문의 대규모 침략이었던 왜란에 대해 자기반성하며 후대에는 동일한 잘못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유성룡의 간절함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병자호란과 일제 강점기에서 동일한 역사적 비극은 반복됩니다.

일본 관련 부정확한 서술

본문 제1권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직전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부정확한 내용도 없지 않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왜국으로 흘러들어간 중국인’으로 전해진다며 잘못 소개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국왕이 불러 군대에 넣었다’로 언급되는데 실은 일왕이 아니라 일본 전국 시대 통일의 초석을 마련한 오다 노부나가입니다. ‘징비록’에는 아시카가(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이름은 언급되지만 오다 노부나가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습니다. 일왕과 막부 쇼군의 독특한 관계 및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유성룡의 구체적 지식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집권 과정에 대해서도 오류가 드러납니다. 도요토미가 ‘아시카가의 왕권을 빼앗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는 서술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시카가가 다른 사람에게 시해 당하자 히데요시가 그 사람을 죽인 다음 왕위에 올랐다고도 한다’는 서술은 아케치 미츠히데가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해 살해한 ‘혼노지의 변’의 내용이지만 인물 관계는 틀렸습니다. ‘징비록’의 집필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아 유성룡에게 주어진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 조선 통신사의 일본 방문 과정에서 조총이 조선에 처음으로 전래됩니다. 만일 이때 조선이 조총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면 임진왜란 초기 참패의 가능성은 낮아졌을 것입니다.

아비규환의 지옥도

‘징비록’이 묘사하는 임진왜란 발발 당시의 조선은 아비규환의 지옥도입니다. 어린 아이가 죽은 어미의 젖을 빨다 군인들에 의해 거둬집니다. 정부가 새롭게 군인을 선발해 쌀을 지급하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장정들이 모여들지만 관아 밖에서 기다리다 굶어죽습니다.

왜군 침략을 척후병이 알리지만 거짓 보고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합니다. 아군을 학살한 자는 공을 세운 것으로 둔갑되는 반면 공을 세운 자는 서신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억울하게 처형됩니다. 이순신에 대한 원균 등의 모함을 비롯해 국난 앞에서도 단결되지 못하고 정쟁으로 사분오열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의 연속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멸망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우유부단한 이여송

명군의 개입으로 조선이 멸망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성룡이 묘사하는 명군 제독 이여송은 매우 우유부단한 인물입니다. 조선은 왜군의 격멸을 갈망했던 반면 명은 제3국 원정이었던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교전을 꺼렸습니다. 따라서 이여송은 유성룡의 인품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격을 끊임없이 주장한 류성룡을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당대 인물에 대한 유성룡의 냉정한 평가는 이여송에게만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개전 초기 탄금대에서 참패해 죽은 신립에 대한 평가도 박합니다. 조총을 앞세운 왜군을 상대로 활을 가진 조선군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숲 속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이 정석이라고 유성룡은 주장합니다. 유성룡은 문신 출신이지만 병법은 물론 병기와 축성 등 무에 관련해서도 상당한 지식을 ‘징비록’에서 펼쳐보입니다.

신립은 조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오합지졸을 이끌고 배수진을 펼치다 완패합니다. 전술의 기본조차 모른 채 개활지에서 무모한 총력전을 펼친 것입니다. 이여송조차 신립을 비판합니다. 김천일과 권율에 대한 유성룡의 평가 또한 후하지 않습니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기초해 임금에 충성을 바쳤던 유성룡인 만큼 조선 시대를 통틀어 손꼽히는 암군(暗君) 선조에 대한 비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선조의 무능이 나라꼴이 엉망진창이 된 근본 원인 중 하나이지만 유성룡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간결한 서술 돋보여

역사적 비극의 생생한 목격담이지만 유성룡은 감정 개입을 자제하고 차분함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간결한 문장을 바탕으로 핵심을 찌릅니다. 단락을 서술하며 첫 번째 문장에서 결론을 제시한 뒤 이후에 전개 과정을 밝히는 서술 방식을 활용합니다.

‘징비록’은 전쟁 전부터 종전까지 약 10여 년의 세월을 묘사합니다. 하지만 전쟁 발발 전부터 평양성 탈환까지의 초반은 상세하게 서술되는 반면 이후 교착 상태는 압축해 서술됩니다.

전후 처리 및 복구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습니다. 왜란이 종료되기 전 유성룡이 탄핵을 받아 낙향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낙향 후 유성룡은 선조의 부름을 거부한 채 집필에 몰두하다 1607년 사망합니다.

본문 번역 누락?

올재 클래식스가 2014년 발간한 ‘징비록’은 현대의 독자를 돕는 각주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각주가 부족하거나 오류가 드러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발발 직전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어린아이’를 안고 나왔다고 ‘징비록’은 언급합니다. ‘어린아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요도와의 사이에서 1589년 태어났지만 1590년 사망한 도요토미 츠루마츠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어쩔 수 없다 해도 번역자의 각주에서도 도요토미 츠루마츠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100페이지 각주 2의 이시언은 생몰연도 중 사망연도에 오류가 있습니다. 1682년 사망한 것으로 표기되었는데 1628년 사망했습니다. 출생연도가 1545년임을 감안하면 1682년까지 살 수는 없다는 점은 퇴고 혹은 교정 과정에서 쉽게 찾아냈어야 합니다.

150페이지 각주 4의 조조는 한자가 틀렸습니다. 오초칠국의 난을 유발하게 된 법가 사상의 정치가는 조조(晁錯)이지만 한글 발음이 동일한 ‘삼국지’의 조조(曹操)로 잘못 표기되었습니다. 조조(晁錯)는 조조(曹操)보다 약 300년 전에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본문 누락의 의심을 남기는 부분도 있습니다. 115페이지 말미의 ‘제독은 나를 만나주지 않고 통역을 통해 이렇게 일렀다’라고 언급된 뒤 ‘제독(이여송)’이 ‘나(유성룡)’에게 무엇이라 일렀는지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은 채 새로운 단락인 ‘서울을 수복하다’로 넘어갑니다.

26페이지 본문에는 博多를 ‘하카다’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하카타(はかた)’가 옳습니다. 32페이지 각주 30의 ‘사부유서’에서 ‘책입자’는 ‘책임자’의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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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6/05/21 08:32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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