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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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하 - 연쇄적인 죽음, 타협 모르는 결말

※ 본 포스팅은 ‘악령’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축제의 끝, 파멸의 시작

미하일로브나는 마을 축제를 개최합니다. 표면적 이유는 여성 가정교사를 위한 후원금 모집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위세 과시가 실제 목적입니다. 귀족은 물론 평민까지 두루 참가할 수 있는 축제는 표뜨르와 리뿌진에 의해 엉망이 됩니다. 레뱌드낀은 예의 술주정으로 축제를 망칩니다.

축제의 클라이맥스인 무도회 도중 마을에서 대화재가 발생합니다. 광기에 빠진 렘브께는 화재 진화 도중 사망합니다. 렘브께의 죽음은 ‘악령’ 제3부의 연이은 죽음의 신호탄입니다. 화재가 진화된 뒤 레뱌드낀과 마리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됩니다. 남매의 죽음은 페지까가 저질렀으며 표뜨르가 사주한 것임이 드러납니다. 페지까 또한 살해됩니다. 등장인물들의 연쇄적인 죽음은 악령이 든 돼지 떼가 호수에 뛰어들어 죽은 에피그래프에서 암시된 바 있습니다.

그날 밤 리자는 약혼자 마브리끼가 보는 앞에서 스따브로긴이 소유한 마차에 탑승합니다. 리자는 스따브로긴의 집으로 가 그와 동침합니다. 표뜨르의 계략의 결과물입니다.

다음날 아침 리자는 스따브로긴과 다툰 후 그의 집에서 나옵니다. 마브리끼는 스따브로긴의 집 밖에서 밤을 샌 뒤 리자를 데리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마브리끼의 리자에 대한 일편단심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작중에서는 어리석인 사내로 묘사됩니다.

리자는 마을을 떠나는 스쩨빤과 조우합니다. 리자는 화재 현장에 갔다 분노한 군중에 구타당해 사망합니다. 스따브로긴은 뻬쩨르부르그로 떠납니다.

샤또프, 희극에서 비극으로

표뜨르는 럄신을 비롯한 무정부주의 조직원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립니다. 샤또프를 격문의 주동자로 몰아 살해한 뒤 끼릴로프를 범인으로 뒤집어씌우려 합니다. 초인 사상에 심취한 끼릴로프는 자살을 열망해왔기에 증거 인멸에 안성맞춤입니다.

샤또프의 집에 그의 아내 마리가 만삭의 몸으로 3년 만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마리가 임신한 아이는 스따브로긴의 자식입니다. 샤또프는 동네방네 소란을 피운 뒤 5인조 중 한 사람인 비르긴스끼의 아내이자 산파인 쁘로호로브나를 데려옵니다. 쁘로호로브나는 제1부에서의 첫 등장에서 속물스런 인물로 묘사된 것과 달리 능숙한 솜씨로 마리의 아이를 받습니다.

마리가 출산하게 되자 샤또프는 자신의 아들이 아님에도 행복감에 젖습니다. 마리는 아이의 이름을 이반이라 짓습니다. 샤또프는 아이를 키우겠다며 세 사람이 함께 하는 미래를 꿈꿉니다.

행복감에 젖어있는 샤또프를 유인해 표뜨르가 계획대로 살해합니다. 5인조는 살해 및 사체 유기 과정을 돕지만 꺼림칙하기 짝이 없습니다. 샤또프가 누명을 쓴 것은 물론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타협하지 않는 大家

‘악령’은 유머와 잔혹함이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샤또프가 마리의 출산을 둘러싸고 동분서주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뒤 곧바로 그가 살해되고 호수에 던져지는 잔혹한 전개는 매우 강렬합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냉정함과 더불어 ‘악령’의 범죄 소설로서의 요소가 극에 달하는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해피엔딩에 대한 강박이나 대중과의 타협까지 끼어들 경우 등장인물을 과감히 퇴장시켜야 하는 시점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작품의 주제의식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악령’의 등장인물들은 광기에 휘말려 차례차례 참혹한 죽음으로 내몰립니다. ‘모두 죽이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에 대해 연민조차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손아귀에 쥔 신과 같습니다. 대가(大家)는 문학적 완성을 위해 냉정하고 가차 없는 최후를 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강조합니다.

끼릴로프의 자살

샤또프 살해를 숨기려는 표뜨르는 자살을 예고한 끼릴로프에게 유서에 샤또프를 죽였다고 명시하고 자살할 것을 독촉합니다. 샤또프와 끼릴로프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동고동락했지만 러시아에서는 같은 집 위아래 층에 살면서도 서로를 외면했습니다. 두 사람이 동성애에서 비롯된 애증 관계로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끼릴로프는 쉽게 자살하지 않아 표뜨르의 애간장을 태웁니다. 결과적으로 끼릴로프는 자신이 샤또프를 죽였다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자살하지만 최후 직전에 표뜨르의 손을 깨물어 상처를 입힙니다. 끼릴로프는 자신을 숭고한 사상으로 무장한 인물로 여기고 있으나 그의 사상과 죽음은 우스꽝스럽습니다. 끼릴로프의 자살은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갖춘 희비극적 요소가 매우 강해 현대 영화에 비유하면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스쩨빤의 객사

정처 없이 홀로 방랑을 떠난 스쩨빤은 성경 판매 행상 소피야와 조우합니다. 경박한 스쩨빤은 소피야에 사랑을 고백하고 함께 살자고 요구합니다. 스쩨빤의 돌출 행동은 콜레라 발작으로 인해 광기에 휘말린 탓입니다.

오두막에서 발병한 스쩨빤은 에피그래프에 제시된 루가 복음의 ‘악령’을 언급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깁니다. 죽음을 앞둔 이가 진심을 말한다는 말처럼 스쩨빤은 자신이 평생 거짓말만 일삼았다고 인정합니다.

스쩨빤의 발병 소식을 접한 뻬뜨로브나는 발 벗고 오두막으로 찾아옵니다. 뻬뜨로브나가 보는 앞에서 스쩨빤은 숨을 거둡니다. 뻬뜨로브나는 스쩨빤이 죽기 전 사랑을 고백합니다. 심각해야 할 죽음 직전 콧대 높은 귀족 부인의 사랑 고백은 애절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럽습니다. 남에게 빌붙어 호강을 누린 스쩨빤이 객사하는 귀결도 역설적입니다. 역시 ‘악령’의 희비극적 요소가 강조됩니다.

뻬뜨로브나는 소피야를 거둬주고 함께 성경 행상으로 나섭니다. 뻬뜨로브나는 자신에게 아들이 없다고 언급해 스따브로긴의 비극적 최후를 암시합니다.

인과응보의 열외자

표뜨르는 자신의 범행이 노출되지 않을 것이라 믿고 마을을 떠납니다. 샤또프의 사체는 돌에 묶어 호수에 던졌고 공범인 5인조에게는 신신당부해 발설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5인조는 동시다발적으로 자신들의 범행을 자백합니다. 근본적으로 사상적 무장이 탄탄하지 않았던 데다 나약한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갓 얻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대한 양심의 가책도 작용했습니다. 샤또프의 죽음을 직감한 마리는 산후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죽고 갓난아기 이반도 병사합니다. 샤또프 일가의 몰살입니다.

‘악령’의 숱한 인물들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한 표뜨르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는 법의 심판을 받거나 누군가에게 살해당하지 않습니다. 인과응보의 열외자가 됩니다. 독자들은 진정한 악인인 그가 생존하는 결말에 찜찜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악령’이 권선징악이나 윤리적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강렬한 비극임이 드러나는 표뜨르의 행방입니다. 잘못된 이념과 그것에 부화뇌동한 인간들을 ‘악령’으로 규정한 ‘악령’에서 가장 악령에 근접한 인물은 표뜨르입니다.

스따브로긴의 선택

스따브로긴은 댜사에 편지를 보내 자신의 정신적 혼란에 대해 고백하고 스위스에서 함께 살자고 합니다. 다샤는 스따브로긴의 제안을 따르려 합니다. 다샤는 ‘악령’에 등장하는 여성 중 가장 순수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존재감은 매우 약합니다. 아마도 작품 전체가 그야말로 악령에 물들어 순수한 다샤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미미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따브로긴은 자신의 집으로 갑자기 돌아와 다락방에서 자살합니다. 부검 결과 온전한 정신 상태에서 행한 자살임이 드러납니다. 다샤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살의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끼릴로프에 이어 두 번째로 자살한 인물이 됩니다.

최종장인 악령 제3부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1부와 제2부보다 많은 분량이지만 군상들이 속속들이 휘말리는 파멸의 힘에 독자는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말로 치달으며 등장인물의 생사가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은 물론 그 죽음의 형태 또한 다채롭습니다.

고백

‘악령’의 발표 당시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찌혼의 암자에서’는 스따브로긴과 전 대사제 찌혼의 만남을 묘사합니다. 시간적으로는 제2부의 중간에 해당합니다. 샤또프의 권유에 의해 스따브로긴은 찌혼을 찾아간 것입니다.

스따브로긴은 자신의 악행을 고백한 글을 찌혼에 제시합니다. 방탕한 생활을 영위했던 뻬쩨르부르그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세 들었던 집의 14세 소녀 마뜨료사에게 누명을 씌워 어머니에게 구타당하게 만든 스따브로긴은 마뜨료샤를 성폭행합니다. 마뜨료샤는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자살합니다. 스따브로긴은 마뜨료사의 자살을 말릴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인 자살이었기에 방관합니다.

무고한 소녀가 부모에게 학대당하다 주인공에 성폭행당한 뒤 자살하는 전개는 ‘악령’ 본편에 제시되는 숱한 죽음들보다 더욱 잔혹합니다. 자괴감과 쾌감 사이에서 광기에 휘말린 스따브로긴이 마리야와 위악적이면서도 장난스런 비밀결혼식을 올린 이유가 마뜨료샤의 성폭행과 자살 유도입니다. ‘망가진 인생, 될 대로 되어라’는 심리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따브로긴은 자신의 글을 인쇄해 대중에 공개하려 합니다. 찌혼은 스따브로긴의 긴 글을 읽은 뒤 진심으로 고해할 생각이 있다면 수도사가 되어 속죄하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스따브로긴은 거부합니다. 이때 스따브로긴은 자살을 결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번역자에 의한 스포일러

781페이지 각주 238은 리자의 죽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스포일러입니다. 리자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 각주를 달고 781페이지와 연관 짓는 편이 바람직했습니다. 870페이지 ‘외부의 끔찍한 힘에 의해 조정당하고 있다’에서 ‘조정’보다는 ‘조종’이 자연스럽습니다.

1025페이지 ‘경련적인 흐느낌’에서 ‘경련적’은 부자연스럽습니다. ‘경련과 같은 흐느낌’이 어땠을까 싶습니다. 1079페이지 각주 300의 6번째 줄의 ‘갈라테이’는 오타입니다. ‘갈라테아’가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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