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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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 극도의 건조함, 외려 서늘한 감동 유발 영화

※ 본 포스팅은 ‘헝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IRA의 조직원들은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처우할 것을 요구하며 담요 시위와 샤워 거부에 나섭니다. IRA 재소자들의 리더 보비(마이클 패스벤더 분)는 보다 강도 높은 단식 투쟁을 준비합니다.

주인공 첫 등장까지 30분 기다려야

‘헝거’는 1981년 영국 메이즈 교도소를 배경으로 영국 정부에 저항했던 IRA 재소자 리더 보비 샌즈의 실화를 영화화했습니다. ‘셰임’과 ‘노예 12년’의 스티브 맥퀸 감독의 2008년 장편 영화 데뷔작으로 한국에는 뒤늦게 개봉되었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은 자신의 장편 영화 3편에 모두 마이클 패스벤더를 기용했습니다. 스티브 맥퀸 감독과 마이클 패스벤더 콤비의 원점이 ‘헝거’입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한 주인공 보비가 등장하기까지는 약 30여 분을 기다려야 합니다. 주인공 등장에 앞서 조연들을 중심으로 메이즈 교도소의 현실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전체 러닝 타임이 96분으로 길지 않음을 감안하면 이색적인 연출입니다.

가해자의 고통을 조명하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교도관 레이몬드 로한(스튜어트 그레이엄 분)입니다. 서두에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손의 상처가 부각됩니다. 한적한 교외의 집에서 출근하며 자신을 향한 암살 및 테러를 경계합니다. 그가 출근한 뒤에는 세면대 위에 또 다시 그의 다친 손과 함께 큼지막한 가위가 제시됩니다. 이후 거의 모든 장면의 공간적 배경은 교도소 내부에 국한됩니다.

오물로 가득한 감옥에 갇힌 죄수들의 충격적인 비주얼이 공개됩니다. 레이몬드는 거부하는 죄수들을 강제로 이발하며 그 와중에 구타하는 인물임이 드러납니다. 레이몬드를 비롯한 교도관들에 마구 얻어맞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이발하는 장면을 통해 보비가 뒤늦게 첫 등장합니다. 레이몬드의 교도소 내 보직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보비가 첫 등장하는 연출은 관객의 두 가지 궁금증, 즉 레이몬드는 무엇을 하는 인물인가, 그리고 주연 마이클 패스벤더는 언제 등장하는가를 동시에 해소하는 영리함이 돋보입니다.

재소자의 구타에 나서는 것은 교도관들뿐만 아닙니다. 전투 경찰 또한 방패와 곤봉을 갖추고 나타나 재소자들을 구타합니다. 성기마저 노출된 채 알몸으로 구타당하는 재소자와 권력을 상징하는 제복을 입은 교도관 및 전투 경찰은 선명히 대비됩니다.

하지만 교도관과 전투 경찰을 악인, 재소자를 선인으로 규정하는 편리하고도 선명한 이분법에 의존하지는 않습니다. 로한이 홀로 생각에 잠긴 채 담배를 피우는 장면과 구타 현장의 뒤에 숨어 전투 경찰이 오열하는 장면을 통해 그들 역시 일말의 양심을 지닌 인간임을 암시합니다. 가해자의 고통을 간과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악은 교도관 및 전투 경찰 개인이 아닌 그들에 제복을 입힌 영국 정부라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서두에서 동료들에게 어머니를 소재로 한 상스러운 농담을 늘어놓습니다. 그는 양로원에서 알츠하이머 투병 중인 자신의 어머니를 방문하는 와중에 IRA에 의해 참혹하게 암살됩니다. 어머니를 소재로 한 그의 농담은 그가 어머니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암시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레이몬드의 죽음은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하는 편에 가깝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신념

보비는 천주교 신부 도미닉 모란(리암 커닝햄 분)에게 자신들이 단식에 들어갈 것을 통보합니다. 보비와 도미닉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압도적인 길이의 롱 테이크로 촬영되었습니다. 보비가 두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동안의 긴 대화는 고정된 카메라에 담겨 관객에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이어 보비가 세 번째 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클로즈업으로 전환되면서 버금가는 롱 테이크 장면이 제시됩니다. 구타 및 가혹 행위가 제시되는 장면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고정적이며 롱 테이크가 많습니다.

보비와 도미닉의 대화는 가벼운 사담으로 시작해 보비의 어린 시절 크로스컨트리 경력을 거쳐 죽음을 각오한 단식 시위에 나서는 신념 표현으로 마무리됩니다. 보비가 왜 리더가 되었는지 크로스컨트리 대회 참가 일화를 통해 엿볼 수 있습니다. ‘헝거’는 전체적으로 대사가 절제되어 그 양이 적은 편이지만 보비와 도미닉의 엄청난 양의 대화는 단식의 의미를 전달하는 주제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후반부는 보비가 단식 투쟁에 나서 체중이 감소해 쇠약해져가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마이클 패스벤더의 감량은 처절합니다. 깡마른 보비가 튀어나온 자신의 갈비뼈 끝을 매만지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압축합니다. 보비의 부모가 죽음을 앞둔 그를 면회하지만 단식 중단을 종용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극도의 고통, 담담하게 조명

스티브 맥퀸 감독은 극도의 육체적 고통을 조명하면서도 담담함과 건조함을 견지합니다. 신파로 흐르거나 슬픔을 강요하지 않아 외려 서늘한 감동을 유발하는 연출은 ‘셰임’과 ‘노예 12년’으로 계승됩니다. 각각의 장면이 분절적이며 설명이 많지 않아 불친절한 연출이 오히려 매력인 것도 세 작품의 유사점입니다.

‘헝거’와 ‘노예 12년’은 감금 상태에서 인권이 짓밟힌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면서도 자막 삽입 등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헝거’에서 시간의 흐름은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재소자들이 상처가 나고 아무는 분장을 통해서, 후반부터 결말까지는 보비가 단식에 나선 뒤 체형의 변화를 통해 드러납니다.

IRA와 관련된 재소자의 수감 실화를 묘사했다는 점에서는 1993년 작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무고했던 주인공이 결말에서 해피엔딩을 맞이했던 것과 달리 ‘헝거’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 과정을 일관되게 묘사합니다.

보비가 숨이 멎는 장면은 그의 소년 시절 크로스컨트리의 독주 도중 숨을 헐떡이는 장면과 오버랩 되어 대조를 이룹니다. 꿈 많았던 소년 시절을 간직했던 소중한 생명이 저항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안타까운 결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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