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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 3 - 공동체 약화 틈탄 사생활 강화

공동체 약화, 국가의 강화

프랑스 학자들의 집단 저술 ‘사생활의 역사 3’은 ‘르네상스부터 계몽주의까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중세 봉건제 종식으로부터 프랑스 혁명 발생까지의 근대 유럽의 사생활의 형성 과정을 설명합니다.

근대는 지방 영주의 힘이 약화되고 중앙집권제가 정착되면서 국가 권력의 개입이 강화되는 시기였습니다. 중세부터 이어진 영주, 성직자, 이웃 등 공동체의 간섭에 지쳐있던 가족 혹은 개인은 국가 권력의 개입을 환영했습니다. 원칙에 의거해 개인이 보호받는다는 만족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치의 껍데기를 쓴 국왕의 절대적 권한 행사에 개인은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고 결국 국왕을 몰아내는 혁명으로 연결됩니다.

근대 초기에는 봉건적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특히 정치는 사생활의 영역에서 좌우되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개인적 친분에 따라 정치 집단이 형성되었고 어떤 줄을 잡느냐에 출세 여부가 달렸습니다. 상급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종교, 읽기쓰기

종교는 역설적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을 통해 중세를 종식시키는 데 앞장선 개신교보다 오히려 가톨릭이 개인적 구원에 가까웠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가톨릭은 고해 성사를 중시한 반면 개신교는 개인의 고해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개신교는 포교를 위해 집단적 성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지 순례를 위한 여행은 인기가 있었는데 그 실제적 이유는 종교적 감화를 얻기 위함보다는 낯선 이들과 어울려 교제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성과의 하룻밤 만남이 가능했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타락의 장으로 활용 및 변질된 경우입니다.

인쇄술의 발전에 지배층과 피지배층은 모두 경계했으나 이유는 달랐습니다. 지배층은 피지배층의 지식 확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도서정가제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습니다. 피지배층은 문서를 앞세운 소송 및 세금의 강화를 통한 경제적 손실을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대세인 인쇄술의 발전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문맹 비율은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읽기와 쓰기는 엄연히 다른 능력이었습니다. 읽기는 가능하지만 쓰기는 불가능한 이들이 많았습니다. 읽기 또한 낭독은 가능해도 묵독은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묵독의 보급으로 인해 개인적 책읽기, 즉 사색이라는 사적 욕구를 위한 독서가 식자층에서 강화된 것은 분명합니다.

예절서의 유행

근대에는 예절서가 대유행했습니다. 시초는 에라스무스의 ‘어린이를 위한 예절서’였습니다. 이 책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고 추가적인 내용이 자의적으로 첨가되어 유럽 전체에 확산되었습니다. 타인 앞에서 배설하거나 분비물(콧물 등)을 흘리는 중세적 습관을 탈피하는 것을 모든 연령층에 요구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목이 말해주듯 예절이 어린이에 강요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개인화되었습니다. 후손을 잇는 공동체 소속의 인간이 아닌 부부의 자식으로 사랑받아야 할 개별적 인격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예절서의 유행에 반발해 궁정인이 되려는 자들의 인위적이며 딱딱한 예절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근대 말에는 본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기계적인 예절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근대에는 개인의 사물을 배우자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숨겨두는 공간 혹은 함이 유행했습니다. 침실 옆의 작은 방, 침실 안의 열쇠 딸린 가구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론 불륜과 관계된 것입니다. 개인 사물이 사랑 혹은 우정의 징표로 활용된 것은 더욱 개인화된 시대상을 상징합니다.

미식과 식도락의 구분

식사 문화도 개인화되었습니다. 손과 공동 접시 사용에서 개인 포크 및 개인 접시 사용을 통해 위생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세까지 당연하던 손과 공동 접시 사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미식을 추구하는 풍토도 형성되었습니다. 식도락, 즉 폭식은 비판받은 반면 예술을 향한 심미안에 비견되는 미식은 찬양되었습니다. 신분이나 타고난 신체적 능력과 달리 미식은 신분과 무관하게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따라서 백조, 두루미 등 커다랗고 깃털이 화려한 새를 먹는 식습관은 쇠퇴하고 상대적으로 작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며 특정 부위를 선호하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즉 양보다는 질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음식 맛을 낼 때도 지나친 향료 첨가는 배척되기 시작했습니다. 원 재료의 맛을 중시하게 된 것입니다. 귀족이 신흥 세력인 부르주아를 배척하고 차별화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사생활 숨기기

중세적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의 통제가 감소한 대신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자 개인은 그 틈 사이에 숨어 사생활을 추구했습니다. 반동적이라 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도 나타나 배설을 비롯한 생리 현상을 까발리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생활이 완벽하게 정착된 것은 아닙니다. 회고록과 가정 일지에는 개인적 소회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요소는 극도로 자제되었습니다. 부부 간의 불화나 자식에 대한 애정은 기록에는 철저히 숨겨졌습니다. 개인의 성격도 회고록 등에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고 신중을 기하던 시대였습니다. 아내 혹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그들이 사망한 날의 회고에서만 간략히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일기의 경우 프랑스인은 감정을 절제했지만 영국인은 상대적으로 솔직했습니다. 영국인과 프랑스인에 대한 스테레오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던 것이 이채롭습니다.

장 자크 루소는 매우 선구적인 글쓰기를 실행에 옮겼습니다. 솔직하고 신랄한 사적인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타인을 독자로 의식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만을 위한 글을 썼습니다.

소설은 서간체 형식을 통한 엿보기를 통해 불륜을 묘사했습니다. 21세기에도 영화의 원작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쇼데를로 라 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가 바로 이 시대의 산물입니다. 작자는 서간체를 통해 적나라한 묘사로 독자를 자극하면서도 언제든지 허구의 영역으로 도망치는 영리한 줄타기가 가능했습니다.

우정은 동성애를 암시했습니다. 남편끼리의 동성애와 아내끼리의 동성애는 부부간에 서로 묵인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중첩된 동성애 관계도 없지 않았습니다. 물론 동성애가 출세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비밀결사 프리메이슨도 등장했습니다. 여성의 자유로운 출입이 가능했으며 집 내부에 존재했던 살롱과 달리 집 밖에서 남성들만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술집보다 건전한 남성 모임인 카페도 등장했습니다. 여성이 모임에서 배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College’의 원형이 된 콜레주(collège)는 사춘기 소년소녀들이 가족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교였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소년소녀들이 사적인 우정을 쌓는 공간이었습니다. 소년들의 경우 학연의 근원으로써 출세가도에 영향을 준 것은 물론입니다.

농촌에서 상당수의 농가는 가족이 한 방에 하나의 침대에 뒤엉켜 잠이 들었습니다. 사생활이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르주아 농가의 경우 본가 옆에 새로운 집을 짓고 아들들을 분가시켰습니다. 거주 방식은 가족 구조와도 밀접한 연계가 있었으며 지방마다 차이가 있었습니다. 장자 상속은 둘째 이하의 아들에게는 전혀 재산을 분할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평등 상속이나 막내 상속도 존재했습니다.

샤리바리에 대한 저항

3부 ‘촌락 공동체, 국가, 가정 : 동향과 갈등’의 4장 ‘가정, 사생활과 관습의 대립’은 유머러스해 쉽게 읽히는 부분입니다. 중세 이후 유럽에서 공동체의 규범을 위반한 자에게 젊은이들이 몰려가 단죄하고 돈을 뜯어내는 풍습인 샤리바리(charivari)를 설명합니다. 하지만 샤리바리에 대한 용어 정의가 각주 처리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사생활의 역사’ 3권을 통해 샤리바리라는 용어를 처음 접한 이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샤리바리의 대상은 불륜을 저지른 이들, 혹은 나이 차가 큰 부부의 결혼식이었습니다. 청소년과 젊은 남성들이 앞장서 그들에 망신을 주고 돈과 술, 음식 등을 뜯어냈습니다. 하지만 결혼 질서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실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역설적 행태에 피해자들은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국가 권력과 성직자에 호소해 개입을 이끌어냈습니다. 공동체의 약화와 국가 권력의 강화라는 근대적 변화는 샤리바리에도 드리워진 것입니다.

샤리바리의 예에서 드러나듯 명예는 귀족이나 부르주아뿐만 아니라 서민층도 중시했습니다. 모욕을 견딜 수 없어했으며 모욕, 즉 악소문은 쉽게 퍼져 당사자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자력구제 수단인 결투는 거의 사라지고 국가 권력에 호소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서민층은 국가 권력의 개입을 환영했습니다. 추문이 새나가는 것을 국왕의 봉인장이 막아줬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왕권의 형성에는 귀족과 부르주아의 팽팽한 긴장 및 균형 상태도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하지만 왕권의 전제적 행사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차츰 가시화되었습니다. 혁명을 거치며 봉인장의 힘은 사라졌습니다. 이후 혁명 세력 내부에서 가족 재판소 설립에 대한 격론이 일었습니다. 가족 내부의 문제를 가족에 맡겨야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법의 지배에 따라야 하는지 논란이 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체벌이 인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가장의 체벌은 폭력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생활의 역사 4 - 혁명은 여권을 신장시키지 못했다
사생활의 역사 5 - 이념에서 섹스까지 서구 현대 풍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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