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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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 혁명의 피바람 속에 꽃핀 기사도

※ 본 포스팅은 ‘두 도시 이야기’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런던의 은행원 로리는 18년 간 바스티유에서 옥고를 치른 의사 마네트를 영국으로 데려옵니다. 마네트는 외동딸 루시와 행복한 삶을 누립니다. 변호사 스트라이버와 조수 카턴 덕분에 목숨을 구한 귀족 출신 어학교사 다네이는 루시와 결혼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광기

‘두 도시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 혁명의 광기를 묘사한 찰스 디킨스의 1859년 작 장편 소설입니다. 제목의 ‘두 도시’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를 뜻합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한국어 번역본 303페이지에는 ‘두 도시의 언어’라는 표현이 제시됩니다.

마네트와 다네이는 과거를 숨긴 프랑스인이지만 영국으로 이주해 봉건 체제의 악습과 혁명의 피바람으로부터 거리를 두려 합니다. 하지만 다네이가 과거와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그는 물론 마네트, 루시, 로리까지 프랑스의 공포정치의 격랑에 휘말립니다.

마네트는 구체제에 저항했던 과거를 발판으로 사위 다네이의 구출에 한 번 성공하지만 두 번째는 실패합니다. 사형 집행을 앞둔 다네이를 구원하는 것은 다네이와 꼭 닮은 사내인 카턴입니다. 루시가 다네이와 결혼하기 전부터 그녀를 사랑했던 카턴은 루시가 유부녀가 된 뒤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루시의 가정을 지켜냅니다. 자신과 꼭 닮은 다네이를 대신해 카턴은 단두대에 오릅니다.

‘레미제라블’과의 비교

‘두 도시 이야기’는 1862년 작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상당한 유사점이 드러납니다. 프랑스 혁명을 묘사한 장편 서사시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고하게 옥고를 치른 노신사와 그의 외동딸, 그리고 귀족 가문의 구혼자, 혁명에 휘말리자 사위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주인공, 비참했던 민중의 삶 등 서사구조 및 요소는 두 작품이 동일합니다.

‘두 도시 이야기’보다 ‘레미제라블’이 분량이 긴 것과는 별도로 두 작품의 관점은 차이점이 보다 두드러집니다. ‘두 도시 이야기’는 구체제에 대해 비판적이며 혁명의 필연성을 인정했으나 민중의 피 잔치에 또한 비판적입니다. 무덤을 파내는 시체 도굴꾼인 영국인 크런처가 차라리 프랑스 혁명 세력보다 낫다고 암시합니다.

다네이의 아버지와 숙부로 인해 어린 시절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드파르주 부인이 다네이는 물론 마네트와 루시마저 죽이려다 오히려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은 사필귀정입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은 구체제의 반격에 의해 희생된 민중에 초점을 맞춥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찰스 디킨스가 영국인,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인이기에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두 도시, 런던과 파리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계급 및 빈부 격차를 선명히 드러내지만 영국적인 것과 부르주아적인 것의 옹호가 드러납니다. 프랑스 민중의 시끄럽고 과격한 혁명을 영국 런던 소호의 고즈넉한 골목과 대조합니다. 귀족과 노동 계급 모두에 비판적인 찰스 디킨스입니다.

두 나라, 두 도시의 대조가 선명한 공간은 법정입니다. 런던의 법정에서 다네이는 미국 독립 혁명을 지지한 반역자로 몰려 사형을 선고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스트라이버와 카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다네이는 다시는 런던의 법정에 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파리에서 다네이는 두 번이나 법정에 서게 되고 두 번째는 사형 선고를 피하지 못합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사법 체계의 차이를 부각시킵니다.

카턴, 진정한 주인공

결말 직전까지의 비중은 마네트와 다네이보다 작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카턴입니다. 그가 다네이와 빼닮은 외모가 드러나며 루시에 대한 사랑을 맹세하는 중반까지를 통해 카턴이 다네이를 대신해 희생하는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합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표지의 단두대 일러스트는 너무나 확실한 스포일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턴의 숭고한 희생으로 장식되는 결말에 대한 감동이 반감되지는 않습니다.

카턴은 마네트와 찰스와는 차별점이 분명합니다. 마네트와 다네이에는 숨겨진 과거가 있으며 이는 후반부에 모두 밝혀집니다. 바스티유에 오랜 세월 감금된 비밀스런 죄수 마네트의 처지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1847년 작 ‘철가면’의 주인공 철가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마네트의 과거를 숨겨둬 미스터리 요소를 강조한 것은 ‘두 도시 이야기’가 잡지 연재소설로 최초 발표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등장인물의 결정적인 과거를 숨겨둔 뒤 클라이맥스에 노출시키는 기법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카턴은 방탕한 대신 유능한 변호사 조수라는 현재가 드러나지만 구체적인 과거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외형적으로는 카턴이 신비스러운 인물로 보입니다. 실상은 무능한 변호사인 스트라이버를 유능하게 만드는 카턴의 업무 과정은 마치 21세기 소설 및 영화에서 프로페셔널을 묘사하는 것처럼 세련되게 포착됩니다. 그가 핵심을 찌르는 인물임을 부각시키는 업무 과정은 결말의 희생을 위한 치밀한 준비와도 연결됩니다.

대신 마네트와 다네이의 심리 묘사는 제한적입니다. 그들의 과거를 꼭꼭 숨기기 위함인지 두 사람의 내면은 세세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반면 단두대에 오르기 전날 밤 비밀스러운 계획에 얽힌 카턴의 내면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카턴의 외모가 아무런 혈연관계도 없는 다네이와 빼닮은 설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현대적 관점에서는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카턴을 신화의 주인공이며 예수를 연상시키는 구원자임을 감안하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카턴은 예수가 남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요…’의 성서 구절을 단두대 위에서 외칩니다. 그렇다면 단두대는 십자가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랑하는 유부녀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는 기사도의 현신이기도 합니다. 카턴의 사후 다네이와 루시 부부가 아들을 낳아 카턴의 이름 시드니를 따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에필로그는 카턴이 천국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점으로 묘사됩니다.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

디킨스의 작가적 역량은 ‘두 도시 이야기’를 압축한 데서 분명해집니다. 40여 년의 세월을 묘사하지만 작품의 분량은 긴 편이 아닙니다. 장황한 듯한 문체 속에서도 중요한 복선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습니다.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구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2부 제13장과 제14장의 제목은 역설적입니다. 13장 ‘섬세하지 못한 사나이’에서 카턴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루시에 청혼하지만 거절당합니다. 하지만 루시는 카턴에 대한 인간적 신뢰를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카턴이 루시를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약속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섬세하지 못한 사나이’는 카턴을 뜻하는 제목이지만 실은 카턴의 섬세한 영혼이 드러나기에 블랙 유머라 할 수 있습니다.

14장 ‘정직한 장사꾼’은 크런처가 오밤중에 무덤에서 시체를 파내 판매하는 시체 도굴꾼임이 드러납니다. ‘정직한’ 역시 블랙 유머입니다. 크런처가 파헤친 무덤에는 주인이 없는데 후반 전개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됩니다.

펭귄클래식 코리아의 ‘두 도시 이야기’는 리차드 맥스웰의 풍성한 작품 해설과 실제 역사적 사건과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을 병치한 연대표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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