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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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③ [完] - 상징적으로 죽은 옛 연인을 회상하며

일상에서 판타지로 ‘키노’

키노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술집 ‘키노’를 도쿄의 외딴곳에 차립니다. ‘키노’는 서서히 손님을 늘려가며 안착하지만 주변에 뱀이 나타나는 이변이 발생합니다. 키노는 단골손님 카미타로부터 잠시 술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다녀오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다섯 번째 단편 ‘키노’는 장편 ‘양을 쫓는 모험’을 연상시킵니다. 아내와 이혼한 뒤 고독에 침잠한 남성이 기괴한 사건에 휘말리며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판타지적 전개가 유사합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영화를 여러 편 몰아 관람하고 호텔에서 건너편 사무실을 바라보며 하루를 멍하니 보내는 주인공의 행위도 동일합니다. ‘키노’에서 갑자기 술집을 경영하게 된 키노의 신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본격적인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재즈 카페 ‘피터 캣츠’를 운영하게 된 과거와 일치합니다.

주인공 키노(木野)와 동명의 그의 술집은 독일어 ‘KINO’, 즉 ‘영화’ 혹은 ‘영화관’을 연상시킵니다. 가깝게는 영화관을 전전하면 키노의 행위를, 멀게는 영화처럼 상궤에서 벗어나 점입가경의 사건에 휘말리는 키노의 삶과 연관이 있는 작명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키노에 도움을 주는 우호적인 사나이 카미타(神田)는 그가 신(神)임을 강력히 암시합니다.

키노는 아내의 불륜과 이혼의 상처를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홀로 감내합니다. 비슷한 상황을 비슷한 방식으로 버텼던 첫 번째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의 주인공 카후쿠와 비슷한 성격의 인물입니다. 극도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분노와 상처를 억누르며 타인에게 호소하지 않고 홀로 삭히는 등장인물은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 요소입니다. 키노는 운동선수 출신이지만 재즈를 사랑하는 LP 애호가인데 이 또한 하루키의 취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키노가 묵은 비즈니스호텔의 문을 누군가 강하게 두들기는 결말은 ‘1Q84’에서 텡고의 아버지로 보이는 NHK 수금원이 아오마메의 은신처의 현관문을 두들기는 부분과 흡사합니다. 문을 두들기는 타인은 견고한 껍질을 지닌 주인공의 자아를 뒤흔드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키노’ 역시 네 번째 단편 ‘세헤라자데’와 마찬가지로 장편의 초반처럼 뒷이야기를 생략합니다. 키노는 도쿄의 자신의 술집으로 되돌아가 평온한 삶과 다시 마주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깁니다. 두 작품 모두 판타지 요소를 지녔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옛 연인의 상징적 죽음 ‘여자 없는 남자들’

새벽 1시에 모르는 남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나’는 중학생 시절의 연인 ‘엠’의 자살을 통보받습니다. 나는 엠과 처음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14세 때의 생물 수업을 회상합니다. 내가 지우개를 빌리려 하자 엠은 자신의 지우개를 흔쾌히 반으로 잘라 주었던 것이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입니다.

여섯 번째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은 단편 소설집의 제목과 동일해 타이틀 톨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비교적 균일한 분량의 지닌 앞선 다섯 편의 단편과 달리 분량이 현저히 짧습니다. 1인칭 주인공 ‘나’는 ‘사실보다 본질에 집중’하려는 의도를 드러내는데 그로 인해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은 사건을 묘사하는 소설보다는 사념적인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단편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총론과 같은 단편이기도 합니다.

나는 자신과 사랑했던 여성 중 엠이 자살을 선택한 세 번째 인물이라고 회고합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오코와 하츠미가 연이어 자살했던 전개를 연상시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여자 없는 남자들’의 ‘나’가 동일인물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도 두 작품의 공통점입니다.

‘그렇게 예쁜 여자는 본 적이 없다’는 나의 회고가 말해주듯 엠은 나의 첫사랑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사실보다 본질에 집중했다’는 구절이 암시하듯 엠은 단순히 14세부터 약 2년 간 사귄 여성 한 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듯합니다.

엠은 섹스를 할 때 나의 성기가 잘 생겼다고 칭찬하는데 10대 중반의 중학생 커플보다는 성인 커플에 어울리는 장면입니다. 나는 엠과 드라이브를 할 때 그녀가 좋아하던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회고합니다. 10대 중반의 나이로는 운전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설정처럼 보입니다. 따라서 엠은 여성 한 명이 아니라 나를 거쳐 간 다수 여성들의 은유적 집합체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엠의 남편과 동질의식을 느낍니다. 동일한 여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서 ‘공모 -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연적과 더불어 사랑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한다. 이 이미지는 이상하게도 그에게 어떤 공모의 즐거움을 야기한다’는 구절을 연상시킵니다. 옛 연인을 잃은 나와 아내를 잃은 엠의 남편의 슬픔은 정도의 차이는 큽니다. 하지만 둘 모두 여자를 잃은 남자들이라는 공통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작품이 제목이 단수인 ‘여자를 잃은 남자’가 아니라 복수인 ‘여자를 잃은 남자들’이 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내가 있지만 그것이 엠의 죽음에 위안이 되거나 상실감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은 부고와 망자에 대한 회고로 무겁게 출발합니다. 하지만 엠이 상징적 존재이며 그녀의 죽음이 옛 사랑에 대한 망각을 상징함이 드러난 뒤에는 하루키 특유의 유머 감각과 발랄함을 되찾습니다.

여자 없는 남자들 ① - 치유, 그리고 어긋난 커플
여자 없는 남자들 ② - 하루키의 여성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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