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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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 첨단 액션으로 포장된 다층 철학 텍스트 영화

매트릭스 한정판 dvd 박스

두 여자가 폐소공간과 같은 비좁은 집안에서 악당들과 맞서는, 지나 거숀 주연의 ‘바운드’를 봤을 때의 느낌은 신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코엔 형제를 능가하는 워쇼스키 형제의 등장’이라는 호들갑스런 문구에 대해서는 당시 별로 동의하지 않았지만 범상치 않은 데뷔작을 만든 특이한 이름을 가진 형제 감독에 대해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1999년 ‘매트릭스’가 개봉했을 때, 당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어떤 이유였는지 심하게 다투고 나서 제대로 화해하지도 않고 명동 중앙 시네마의 가장 비좁은 관에서 비디오방같은 화면으로 보았었기 때문에 영화는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엔딩에서 네오가 전화로 매트릭스에 선전포고를 하고 하늘로 날아오르며 끝나자 들었던 느낌은, 허황한 액션을 주고받는 만화 같은 어린애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전작인 ‘바운드’보다 못하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하지만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작년에 극장에서 보고 매료(저는 지금도 ‘매트릭스’ 3부작 중 ‘매트릭스 리로디드’가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된 이후 다시 찾아서 본 ‘매트릭스’는 처음 볼 때와는 완전히 작품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다층 철학 텍스트가 있었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더군요.

‘매트릭스’의 액션은 이후 수많은 영화들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블레이드’, ‘이퀼리브리엄’, ‘스워드 피시’, ‘언더 월드’에 이르기까지 이루 다 손꼽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매트릭스’의 액션이 아무리 이후의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많이 주었다 해도 독창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는 ‘공각기동대’를 비롯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홍콩의 쿵후 영화에, 탄피가 흩날리는 홍콩 느와르가 뒤섞여 있음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실 ‘매트릭스’ 속에서 벌어지는 백인들의 쿵후 액션은 성룡이나 이연걸 영화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는 좀 어설프죠.) 하지만 ‘매트릭스’의 위대함은 저 세 장르의 액션을 조화롭게 혼합시켰다는 점입니다. 비빔밥에 들어갈 여러 고명들이 아무리 제각각 맛이 있다하더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비빔밥으로서 낙제점이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매트릭스’가 장르의 혼합을 꾀했다 하더라도 영화 속에서 겉돈다면 ‘매트릭스’는 평범한 3류 액션 영화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교과서적인 액션 영화로 길이 남게 되었죠. 조화,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의 위대함입니다. 그러나 액션이 전부는 아닙니다. 감상 회수가 늘면서 ‘매트릭스’의 액션은 점점 작아져만 가고 그 이면의 철학적 배경에 더 눈길이 가는군요.

등장 인물들의 이름도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앤더슨(Anderson)’이라는 평범한 이름을 가지고 있던 시절에는 매트릭스 속에서의 조작된 삶을 수동적이라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새로운’이라는 뜻의 ‘네오(Neo)'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이후 과거의 수동적인 삶을 벗어던지고 구세주(The One ; 'Neo'의 철자를 조합하면 ’One'이 됩니다. 결국 네오는 의도적인 언어유희적이며 중의적인 작명이죠.)로서의 새 삶을 살게 됩니다.
네오를 인도하는 것은 ‘모피어스(Morpheus)’로 그는 그리스 신화의 꿈의 신입니다. 잠들어 있는 네오를 깨워 매트릭스로부터의 꿈같은 해방을 도모하는 전사죠.
'트리니티(Trinity)'는 크리스트교의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말합니다. 트리니트는 자신의 네오에 대한 신앙과 같은 절대적 믿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네오와 모피어스, 그리고 자신을 묶은 삼위 일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탑승하는 호버 크래프트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은, 구약 성서의 예레미야 서에 등장하는 바벨론의 왕으로, 하느님이 만드는 미래의 왕국을 꿈꾼 사람입니다. 즉, 매트릭스가 파괴되고 미래에 건국될 인간들만의 국가를 구현할 매개체에 걸맞는 이름입니다.
인간들이 기계를 피해 거주하는 ‘시온(Zion)’은 구약 성서의 다윗이 자신의 도성으로 삼은 도시입니다. ‘하느님의 도시’라는 뜻이죠.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닙니다. 궁금해서 찾아본 것 뿐이죠. 오해없으시길.)
할머니의 외양을 갖춘 예언자 '오라클(Oracle)'은 고대 그리스의 신탁(神託)이나 성서의 예언을 말하기도 합니다. 직선적이고 노골적인 작명이죠.
모피어스를 비롯한 느부갓네살의 승무원들을 배신하는 ‘사이퍼(Cypher ; Cipher로도 표기)’는 암호 해독관이라는 뜻도 있지만 동시에 하찮은 사람, 꾸며 맞춘 문자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애당초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를 가진 캐릭터이죠. (재미있는 것은 사이퍼 역의 조 판톨리아노와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가 나란히 함께 ‘메멘토’에도 출연했다는 것입니다. ‘매트릭스’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메멘토’에서는 역전된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요원’인 '스미스(Smith)', 존스(Jones)', '브라운(Brown)'은 영미권에서 가장 흔한 이름입니다. 흔한 이름을 가진 이 요원들은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언제든 네오 일행의 곁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때문에 훈련 프로그램에서부터 네오는 주변의 흔해 보이는 어떤 사람도 모두 요원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교육받습니다.) 동시에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몰개성화된 존재이기도 합니다. (물론 스미스만큼은 ‘매트릭스’의 종반부부터 자신을 창조한 매트릭스를 혐오하며 매트릭스에서 탈출하겠다는 의외의 본색을 드러내지만 말입니다.)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세계는 모두 3개입니다. 우선 조작된 것이라 느끼지 못한 채 조작된 삶을 살아가는 매트릭스의 세계와 기계들에게 양분을 착취 당하는 진짜 세계(이곳의 지하 깊숙이 시온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탱크가 조작하는 매트릭스를 대비하기 위한 훈련용 프로그램의 세계가 있습니다. 네오는 ‘매트릭스’의 중반부까지 자신이 실재하는 세계가 어느 것인지 혼동하는데(이는 관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세 번째 쯤 보고서야 휙휙 바뀌는 영화 속 세계들이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더군요. 복장을 보면 칙칙한 복장의 실제 세계와 무채색으로 멋을 한껏 부린 옷차림의 매트릭스의 세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만, 훈련용 프로그램의 세계와 매트릭스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죠.) 이는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연상케합니다. 장자가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고 나서 깬 후에,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알 수 없다는 인생무상,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말하는 것인데 네오 역시 어느 것이 진짜 자신이고 진짜 세계인지 헷갈려합니다. 어쩌면 그 안에 ‘진짜’는 애당초 없는 것인지도 모르죠. 따라서 ‘매트릭스’는 애당초 도교적 세계관을 내포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핸드폰과 컴퓨터, 그리고 복잡한 프로그래밍으로 세계관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매트릭스’이지만 사실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매개체가 되는 것은 아날로그식 다이얼 전화기이며 모피어스는 ‘믿음’을 자꾸 강조합니다. 언뜻 보기에 첨단 테크노 액션 영화같은 ‘매트릭스’이지만 중요한 것은 기계(유물론)이 아니라 마음(유심론)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죠. 스미스에게 공격을 당한 네오를 살리는 것도 기계나 프로그래밍이 아니라 트리니티의 사랑입니다. 헐리우드의 전형적인 뻔한 결말이었다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역시 사랑, 즉 마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테마로 귀결된 것에 대해 저는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겉껍데기는 첨단 액션과 기계 문명인데 주제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매트릭스’는 더더욱 역설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긴 ‘매트릭스’의 철학에 관해 논하자면 끝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직 철학자들의 커멘터리를 보지 않았는데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할지 매우 궁금합니다. 하긴 그보다 더욱 궁금한 것은 ‘매트릭스’를 씹어대는 영화 평론가들의 커멘터리입니다만.) 예를 들어 사이퍼가 매트릭스의 진실에 대해 알고 나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미스에게 동료를 팔아넘기며 매트릭스의 감시 기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영국 경험론의 시초인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다’를 무시하며,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우리의 속담과 벤담이 제안하고 미셀 푸코가 체계화한 판옵티콘(Panopticon ; 항구적인 감시 체계. 이에 길들여지면 인간들은 자기 감시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됨. 예를 들어, 감시 카메라에 길들여진 사람은 언제나 감시 카메라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의식하고 항상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감시하게 됨.)이론을 실천하고,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며, 만족스러운 바보가 되기 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는 질적 공리주의자 밀의 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선택을 했다는 것까지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정도 분량의 장문의 감상을 써본 것도 처음입니다만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군요. 제가 너무 도취된 것일까요. 다들 이 정도는 알고 계셨죠?

덧글

  • 다인 2004/12/16 02:22 #

    제 개인적으론 매트릭스 삼부작을 합한 것보다 [바운드]가 2.735배 정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 moukatt 2004/12/16 03:28 #

    매트릭스 관련한 철학 서적도 여러 권 본 것 같습니다
    바운드는 배역이 적절해서 보는 동안 즐거웠어요
  • gaya 2004/12/16 09:38 #

    매트릭스 참말 독보적인 영화지요. 영화의 수준을 몇단계 승급시켰다고 봅니다. 전 3부작을 모두 다 좋아합니다. 매트릭스 감상문도 꽤 길게 썼지요.
    보통 매트릭스 1만이 훌륭하고 다른것은 꽝이다라고 말하는 분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셋이 다 있어야 복선과 암시가 해결되고 풀어놓은 이야기가 다 완료되지 않습니까. 전 리로디드에서는 기대와 충격을 레볼루션을 보고난 후엔 대단원의 만족감을 느꼈습니다.
  • 닥터지킬 2004/12/16 10:01 #

    저도 리로디드를 보고 나서야 1편을 인정한 경우죠. 그래도 죽었다 벌떡벌떡 일어나는 건 영 적응이 안 되더군요--;
    음... 혹시 스킨이 잠깐 바뀐 적이 있었죠? 다시 원상복귀된 건가...
  • 디제 2004/12/16 10:27 #

    다인님/ '바운드', 정말 멋진 영화였죠.
    moukatt님/ 저는 책은 구해본 적은 없습니다만... 대단한 열정이시군요.
    gaya님/ 저 역시 '매트릭스 리로디드'에 가서 처음 등장하는 시온에 대해 엉뚱한 곁가지를 속편을 만들기 위해 추가한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매트릭스'를 재감상하니 이미 만들어져 있던 설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더군요.
    닥터지킬님/ 스킨을 잠깐 바꾸었는데 가독성이 너무 떨어져 원위치시켰습니다. 회색 글씨는 저조차 읽기 불편하더라구요. 스킨 변경시키고 원위치될 때까지 알아보셨던 분은 닥터지킬님이 처음이시군요.
  • 질풍17주 2004/12/16 10:28 #

    저로선 극장에서 돈 주고 본 게 정말 아까운 영화에 매트릭스를 올려두어서요...^^;;;;;;
    개인적으론 애니메이션계에서의 에바 풍선과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디제 2004/12/17 03:25 #

    질풍님/ 그런데 그 풍선도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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