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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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 웨스트 - 인상적 캐스팅, 연출력 부족이 잠식 영화

※ 본 포스팅은 ‘슬로우 웨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상류층의 16세 소년 제이(코디 스밋 맥피 분)는 연인 로즈(카렌 피스토리우스 분)를 찾아 미국 서부로 옵니다. 제이는 미국 원주민을 학살하는 북군 군인에 살해당할 위기에 놓이지만 현상금사냥꾼 사일러스(마이클 패스벤더 분)에 의해 구출됩니다.

캐스팅 인상적

‘슬로우 웨스트’는 19세기 후반 미국을 배경으로 순수한 소년과 닳고 닳은 현상금사냥꾼의 좌충우돌을 묘사합니다. 사일러스가 제이를 돕는 이유는 제이의 연인 로즈와 그녀의 아버지가 제이의 삼촌을 살해하고 도주한 죄로 현상수배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이는 로즈 부녀에 현상금이 걸린 사실을 모르는 가운데 사일러스는 현상금을 노립니다.

사장된 장르인 서부영화를 표방한 ‘슬로우 웨스트’의 캐스팅과 서사는 인상적입니다. ‘더 로드’와 ‘렛 미 인’에서 순진한 아역이었던 코디 스밋 맥피와 전성기를 구가 중이며 개성 넘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조합은 화학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곱게 자란 소년이 거친 서부에서 추악한 현실과 직면하는 과정을 풀어나가는 서사도 인상적입니다.

‘슬로우 웨스트’는 나름의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페인(벤 멘델슨 분)이 이끄는 갱단의 노인이 옛 동료의 일화를 설명하며 립싱크 하는 장면은 ‘앤트맨’의 마이클 페냐의 립싱크 장면처럼 웃음을 유발합니다. 흠뻑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제이와 사일러스가 각각 자신들의 말 사이에 줄을 연결한 상황에서 원주민 2명이 2필의 말을 훔치려다 줄이 나무에 걸리는 장면의 아이디어는 신선합니다.

연출력 부족 두드러져

하지만 연출력 부족이 두드러집니다. 유머와 액션, 즉 오락성이 강화될 수 있었지만 각본과 감독을 맡은 존 맥클린이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유머 감각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폭소가 아닌 미소에 그치게 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로즈의 집을 둘러싼 총격전 장면은 단순하게 연출되었는데 보다 화려한 연출이 아쉽습니다.

서사 전개의 측면에서도 사일러스가 제이를 돕는 이유를 자진 고백하는 장면은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립니다. 사일러스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거나 혹은 사일러스가 숨기는 가운데 제이가 스스로 알아내 전전긍긍하는 전개가 보다 나았을 것입니다. 사일러스가 제이의 맑은 영혼에 감화되어 스스로 털어놓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반전 요소를 너무나 쉽게 포기했습니다.

마이클 패스벤더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약점입니다. 연기의 진폭이 매우 넓은 그를 평범한 캐릭터로 전락시켰습니다. 서두의 내레이션을 마이클 패스벤더가 맡은 것부터 사일러스의 생존에 대한 복선이고 중반의 제이의 꿈도 사일러스와 로즈가 한 지붕에 살게 되는 결말을 암시합니다. 사일러스가 총을 놓고 평범한 가장이 될 것이기에 내면은 상당히 부드러운 인물로 설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이 기대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와는 거리가 상당해 밋밋합니다. 클라이맥스의 총격전 장면에서 비무장 상태로 돌격해 2방의 총탄을 맞고 낄낄거리는 연기만이 마이클 패스벤더답습니다.

새로울 것 없는 수정주의

‘슬로우 웨스트’는 백인에 의한 미국 원주민 학살 역사를 비판하는 수정주의적 서부영화입니다. 하지만 1990년 작 ‘늑대와 춤을’ 이래 대부분의 서부영화가 그랬음을 감안하면 딱히 새로울 것 없는 입장을 취한 셈입니다. 그렇다고 ‘슬로우 웨스트’가 원주민 학살 역사를 깊이 있기 조명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양념에 불과합니다. 로즈와 사일러스가 제이버드라는 아들을 낳는 제이의 꿈도 죽음과 환생이라는 윤회설에 가까운 미국 원주민의 순환론적 세계관과 맞닿아 있습니다.

로즈를 돕는 유일한 외부인인 원주민 코토리(칼라니 쿠에이포 분)는 원주민보다는 일본인을 연상시키는 이름입니다. ‘작은 새’를 의미하는 일본어 ‘小鳥’와 발음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보다 인디언에 가까운 작명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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