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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 점프를 하다 - 경계선 위의 아슬아슬한 사랑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 한정판 dvd

몇 년 전 ‘번지 점프를 하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홍보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은, 이병헌과 이은주가 애매한 시선을 교차하고 있는 포스터에 어울리지 않는, 매우 언밸런스한 제목이었다는 점입니다. 시사회 이후 동성애 논란이 불거지자, 포스터와 제목과 이슈가 제각각 따로 노는 희한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당시에도 멜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고 까맣게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작년 쯤 케이블 TV에서 ‘번지 점프를 하다’를 우연히 봤을 때는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습니다. 운좋게 초반부부터 보게 되어 러닝 타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해보다가, 결국 어지간해서 멜러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는 적이 거의 없는데 인우(이병헌 분)가 금방이라고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현빈(여현수 분)을 붙잡고 “왜... 어째서,,, 너는 조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야... 왜 나만... 나는... 이렇게 널 느끼는데... 알아보는데...”하며 흐느낄 때 온몸에 소름이 주르륵 돋더군요. 그리고 ‘번지 점프를 하다’는 한국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세일을 기다리지 않고(하긴 한국 영화는 세일 잘 안하죠. 그래봤자 제가 소장한 한국 영화 dvd는 ‘8월의 크리스마스’ 하나가 전부였으니까요.) 제 값을 주고 산 유일한 한국 영화 dvd가 되었습니다.

dvd로 차분하게 재감상하며 가장 먼저 깨달았던 것은 태희(이은주 분)의 등장이 처음 봤을 때 느꼈을 때보다 훨씬 적었다는 것입니다. 인우가 태희와 만나 군에 입대할 때까지의 러닝 타임이 고작 40여분도 채 되지 않더군요. 즉, 인우가 학교에서 현빈과 얽히는 일들에 러닝 타임의 2/3 가까이 할애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태희와 현빈의 성이 같은 '임씨'라는 것도 오늘 재감상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당연히 의도적인 설정이겠죠.)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번지 점프를 하다’만이 가지는, 신파조의 최루성 멜러 영화와의 차별성입니다. 최루성 멜러 영화를 꺼리는 이유는 클리세들의 나열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해 시나리오의 허점과 구멍을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 가며 뻔한 결말에 도달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하지만 ‘번지 점프를 하다’는 인우와 태희, 그리고 현빈을 연결짓는 영화 속 장치들이 곳곳에 치밀하고도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한 장면 한 장면마다 가슴을 아리고 후벼파기에 격이 달랐습니다.

만일 현빈 역으로 조금이라도 여성적인 이미지의 남고생 스타일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면 영화는 정말로 그저그런 동성애 영화로 흘러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현빈 역으로 이병헌(실제 키는 170cm정도 밖에 안된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160cm 중반대인 이은주가 굽이 낮은 신발을 신고 나와도 둘의 키가 거의 비슷해보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이병헌과 이은주가 비오는 날 서로를 마주보는 장면을 확인하시길.)보다 키가 더 크고 덩치가 더 큰 여현수가 캐스팅되었기 때문에 동성애라는 이미지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현빈은 혜주(홍수현 분)라는 여자 친구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털어냅니다. 따라서 인우의 사랑은 동성애가 아니라 옛사랑을 되찾은 것으로 보여질 수 있었던 것이죠. 세심한 캐스팅과 시나리오가 빛을 봤다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러나 ‘번지 점프를 하다’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마치 번지 점프대에 매달려 떨어지려 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 같은 경계선의 아슬아슬함 때문입니다.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이성애와 동성애, 정상과 비정상, 남자와 여자, 스승과 제자, 이해와 몰이해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망설이고 있는 등장 인물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을 긴장으로 몰아넣기 때문입니다. 하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누군가 사랑 때문에 죽었다고 언론에 보도될 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했던 적이 더 많지 않았던가요.

이번에 리마스터링된 ‘번지 점프를 하다’의 한정판 dvd에는 이미 사진을 올렸던 것처럼 시나리오 집이 포함되어있는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개봉된 영화와는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촬영이나 편집 과정에서 시나리오가 변경된 것으로 보이는데 시나리오보다는 완성된 영화 쪽이 감정 선이나 대사가 보다 더 자연스럽습니다. 서플로는 김대승 감독이 케이블 TV에 출연해 인터뷰를 주고받는 장면이 있지만 양이 너무 적고 부실한데다(진지한 영화의 분위기와 달리 인터뷰는 가볍기 그지 없습니다.) 감독이 수줍음을 많이 타서인지, 아니면 개념을 잘 몰라서인지 코멘터리에서 10분에 한 번 정도 말할 뿐입니다. (특이한 점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자막이 모두 있고 코드0라는 점입니다. 이병헌의 일본 등지에서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일까요.) 중저음도 약한 편이고 dvd로서의 퀄리티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영화의 dvd가 칼갈이 똑떨어지는 화질에 쉴새 없이 우퍼와 리어 스피커를 울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기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건조한 일상을 ‘번지 점프를 하다’ 같은 영화가 촉촉이 적셔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덧글

  • 땡깡쟁이천유 2004/12/14 04:33 #

    안녕하세요-최근업데포스트에서 보고 왔다가 영화이야기들 잘 읽고 갑니다,살짝쿵 링크해가요:)
  • 닥터지킬 2004/12/14 10:48 #

    후후... 동성애 논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겉모양새에 집착하는지에 대한 한 반증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이 영화는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 나그네 2004/12/14 19:37 #

    원고도 끝났고 이제 슬슬 퇴고만 남았습니다.

    허접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디제 2004/12/14 22:30 #

    땡깡쟁이천유님/ 자주 놀러오세요.
    닥터지킬님/ 근데 동성애 논란에는 영화사가 고의적으로 의도한 것이라는 생각도 좀 들던 걸요.
    나그네님/ 멋진 글들 읽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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