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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뱀 - 인간과 기계의 기묘하고도 에로틱한 융합 영화

영화제 단골 작품이었으나 국내에 정식 개봉되지 못한 대표작 ‘철남 테츠오’나 ‘총알 발레’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쌍생아’가 개봉되었을 때에는 그 유명한 츠카모토 신야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극장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배경은 사극과 같았지만 인간의 신체에 집착하며 변형하거나 훼손하는 등장 인물들의 행동과 기묘한 스토리 전개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2002년작으로 국내에 지각 개봉된 ‘6월의 뱀’ 역시 인간의 신체에 집착하는 작품입니다. 심리치료센터의 상담원인 린코(구로사와 아스카 분)가 사진을 찍히고, 전화로 명령을 받으며 스토킹당하는 초반부에는,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음울한 근미래의 도시가 거친 디지털 흑백 화면으로 보여지는 것 이외에는 새로운 것이 없는, 뻔한 작품이 아닌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제가 츠카모토 신야에게 기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것이 아니라 낯설고 기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토커가 린코도 인식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려주면서 중반부 이후의 전개는 급물살을 타고 스토리는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제가 원했던 기묘함의 세계로 빠져들더군요. 사실 이쯤되면 내러티브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벽증에 걸린 남편과 욕망을 억누르는 아내, 그 둘을 스토킹하는 스토커의 이야기 속에서, 기묘한 상상력이 내러티브의 가지를 끝없이 뻗치도록 만들며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은, 마치 ‘이레이저 헤드’나 ‘로스트 하이웨이’의 데이빗 린치를 떠올리게 하며, 결국 등장하고야 마는 츠카모토 신야의 전매 특허인 신체 훼손 혹은 인간과 기계와의 융합은 ‘공각기동대’와 ‘이노센스’의 오시이 마모루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의외로 인간적입니다.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자신의 에세이에서 밝힌 ‘만족스런 섹스는 전쟁의 욕망도 잠재운다’는 식의 발언과 비슷합니다. 그런 각도로 분석하자면 수없이 등장하는 린코의 나체보다는 중반부에 갑작스레 등장하는 인간과 기계와의 융합이야 말로 더 없이 섹시하며 에로틱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짧은 머리에 중성적인 린코로 분한 구로사와 아스카가 ‘6월의 뱀’이 제작된 것이 31살 때였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저는 많아야 20대 중반으로 봤습니다만 여자, 특히 여배우의 나이를 알아맞히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군요. 이중적인 캐릭터이며 비를 억수로 맞으며 노출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텐데 잘 소화했습니다. 스토커인 이구치로 등장한 배우가 누구인지 내내 궁금했는데 엔드 크레딧을 확인하니 감독인 츠카모토 신야가 직접 출연한 것이더군요. 어쩌면 이구치는 츠카모토 신야의 내면에 자리잡은 욕망을 대리 발산하는 캐릭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낮게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더군요. 아울러 ‘키즈 리턴’, ‘소나티네’, ‘하나비’ 등 기타노 다케시 영화에서 단골로 출연했던 테라지마 스스무도 경찰로 몇 장면 나옵니다.

한국 영화가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색깔의 감독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오시이 마모루나 츠카모토 신야가 버티고 있는 일본에 비해 상상력을 동원하는 SF는 뒤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소녀들의 심리를 집요하리만치 파고들기에, 어릴 시절 순정 만화를 보고 자란 것이 아닌가 싶은 이와이 슈운지나 냉혹한 야쿠자의 세계를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코믹스럽게 묘사하는 기타노 다케시까지, 현재 일본 영화계가 한국에 비해 상업적으로는 어렵지만 이토록 다양한 세계관을 지닌 감독들이 건재하다는 점에서 한국 영화가 일본 영화를 추월했다는 식의 감정적이고 자아도취적인 언론의 호들갑은 지양했으면 좋겠습니다.

덧글

  • flowith 2004/12/13 21:18 #

    와...역시 뭘 알고 봐야 하는 걸까요? 저는 단순하게 영화가 참 황당하네라고 생각하면서 영화관을 나왔는데 말이죠. 일본 영화나 만화 등을 점점 많이 접하게 되면서 그 분위기에 상당히 친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해 안 되는 부분, 저와 맞지 않는 정서적 코드가 많아요. 무라카미 류도 그렇고, 디제님의 글을 보니 이 영화도 그런 이유로 제게 어필하지 않은 것 같네요.
  • 디제 2004/12/13 21:33 #

    flowith님/ 저는 사실 '6월의 뱀' 리뷰를 쓰면서 이 글에는 덧글이 전혀 안 달릴 줄 알았습니다.
    볼 사람이 거의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flowith님이 보셨다니 좀 의외군요. 그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노센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인간이 점점 기계를 몸에 붙이고 다닌다면서 안경, 보청기, 핸드폰 등을 예로 들고 나중에는 '공각기동대'나 '이노센스'에서처럼 뇌나 팔, 다리를 기계로 바꾸는 날이 올 거라고 했는데 츠카모토 신야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인간의 몸이 기계로 바뀐다는 것도 '은하철도 999'를 비롯해 드물지 않은 발상이지요. 참고로 제 개인적인 취향이나 정서는 무라카미 류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더 가깝습니다.
  • 자이젠 2004/12/14 14:04 #

    남자와 여자의 궁극적인 차이는 역시,신체의 차이에서 나온다는, 단순해보이는 사고방식이 그리 헛되고 보잘것 없는 주장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영화더군요.

    결국은 신체의 손상과 질환과 욕망 추구의 불가능함이 인간에게 이 세상 그 무엇의 문제들보다도 가장 두려운 사실이라는 점에 승복한 남자와 여자가 오묘하게 화해하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하더군요.

    남편이 아내의 절개된 가슴을 상상하며 끌어안다가 결국 절개되지 않은 가슴임을 알고 통곡하는 장면이...인상적이었습니다. 통속적이라면, 그 반대의 경우, 그러니까, 절개되지 않는 가슴을 상상하다가 절개된 가슴을 보고 통곡하는 것이 상례일텐데요.

    뭐....쌍생아만큼은 아니었지만 좋았습니다...
  • 디제 2004/12/14 22:32 #

    자이젠님/ 아무리 세상이 디지털화되어도 몸에 집착하는 영화들은 여전히 좋더군요. 인간의 실존은 몸을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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