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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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문레이커 - 우주 SF를 열망했던 제임스 본드 영화 영화

※ 본 포스팅은 ‘007 문레이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주왕복선 문레이커가 영국으로 이동 중 공중 납치됩니다. MI6는 007 제임스 본드(로저 무어 분)를 미국으로 파견합니다. 본드는 드랙스 사의 사주 드랙스(마이클 론스데일 분)를 의심합니다.

우주 SF가 되고 팠다

1979년 작 ‘007 문레이커’는 시리즈 11번째 영화이자 루이스 길버트 감독의 세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작입니다. 전작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엔딩 크레딧에 후속작으로 예고된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뒤로 밀린 대신 ‘007 문레이커’가 제작되었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1977년 작 SF 영화 ‘스타워즈’의 폭발적 흥행에 자극받았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길버트 감독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작인 1967년 작 ‘007 두 번 산다’가 우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했지만 제임스 본드는 우주에 올라가려다 실패해 우주는 양념에 불과했습니다.

Q(데스먼드 르웰린 분)의 만화적 신무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듯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SF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냉전 현실에 기초한 첩보 영화가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와 대등한 SF 영화가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007 문레이커’는 미국 캘리포니아, 이탈리아 베니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과테말라의 마야 유적지 티칼 등의 공간적 배경을 훑어나간 뒤 클라이맥스가 되어서야 드랙스가 비밀리에 건설한 우주정거장을 제시합니다. 드랙스의 저택은 공간적 배경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촬영 장소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비콩트 성입니다.

제목 ‘문레이커(Moonraker)’는 드랙스가 제작한 우주왕복선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달(Moon)로 사람을 긁어모으다(Rake)’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서 노아의 방주에 착안한 드랙스의 계획은 선남선녀를 선발해 우주정거장에 집결시킨 뒤 지구상에 독가스를 살포해 절멸시켜 우성 인간들의 후손만을 남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달은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되지 않기에 ‘문레이커’라는 제목과 우주왕복선의 이름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엔딩 크레딧에는 로케이션으로 ‘우주 공간(Outer Space)’을 명시하지만 농담이며 실제로는 모형과 세트를 활용했습니다. 우주정거장의 외관 모형과 내부 세트는 ‘스타워즈’보다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8년 작 걸작 SF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연상시킵니다. 참고로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제작을 위해 영국 런던 근교의 파인우드에 대형 세트 ‘007 스테이지’가 건설되었을 때 스탠리 큐브릭이 방문해 조명에 관한 기술적 조언을 한 바 있습니다.

미 공군과 나사의 협조 하에 제작된 만큼 ‘007 문레이커’의 우주정거장 내부 세트는 상당히 정교하며 무중력 상태까지 재현했습니다. 하지만 전투 장면의 레이저 총 발사 장면 연출은 현 시점에서 보면 조악합니다. ‘007 문레이커’의 개봉 당시만 해도 우주왕복선은 실제로 우주를 향해 발사된 적이 없을 만큼 최첨단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모두 퇴역할 정도로 상당히 세월이 흘렀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본드가 베니스의 드랙스의 실험실에 잠입할 때 입력하는 비밀번호의 벨소리는 1977년 작 SF 영화 ‘미지와의 조우’에서 거장 프랑소와 트뤼포가 분했던 과학자 클로드가 외계인과 교신할 때 사용한 음악소리와 동일합니다. ‘미지와의 조우’에 대한 오마주입니다. 본드가 남미에 숨겨진 MI6의 지부를 향할 때는 1960년 작 ‘황야의 7인’의 메인 테마가 배경 음악으로 삽입됩니다. 본드가 ‘정의의 총잡이’임을 강조합니다.

본드가 드랙스를 우주정거장 바깥으로 내보내며 살해할 때 “인류를 위한 거대한 발걸음(Take a giant step back for mankind)”이라는 농담은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처음으로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의 명언 “한 사람에게는 조그만 한 발짝에 불과하지만, 전 인류에게는 하나의 큰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의 패러디입니다.

전편 요소들의 반복과 변주

시리즈 사상 SF의 요소가 가장 강한 ‘007 문레이커’이지만 전작의 요소들 또한 충실히 답습합니다.

타이틀 시퀀스를 장식하는 동명의 주제가 ‘Moonraker’는 ‘007 골드핑거’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주제가를 부른 셜리 배시가 다시 맡았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박력 넘치는 전작 두 편의 주제가와 달리 ‘Moonraker’는 개봉 당시 반응이 미지근했고 현재도 잊히다시피 한 발라드입니다. 타이틀 시퀀스의 발라드 버전보다는 엔딩 크레딧의 디스코 버전이 나으며, 그보다는 배경 음악으로 활용된 연주곡 버전이 낫습니다.

본드는 CIA의 여성 요원 홀리 굿헤드(로이스 차일스 분)와 티격태격하면서도 임무를 공동 수행합니다. ‘성스럽고(holy) 머리가 좋다(Good head)’의 의미로 읽히는 ‘홀리 굿헤드(Holly Goodhead)’의 독특한 작명은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굿나잇, ‘007 언리미티드’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묘한 본드 걸 작명과 유사합니다. 굿헤드는 본드가 전혀 모르는 우주왕복선의 조종법까지 숙지하고 있습니다.

본드가 타국 여성 요원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협력하는 관계는 ‘007 위기일발’과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제시된 바 있습니다. 본드가 타국 여성 요원과 알몸이 된 채 사랑을 나누고 M(버나드 리 분) 등이 이 장면을 목격하는 결말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반복입니다. 결말의 본드 걸과의 섹스 장면은 본드가 섹스를 탐닉해도 될 만큼 세계가 평화를 되찾았다는 의미입니다.

페미니즘 비평을 의식해 타국 요원인 본드 걸이 본드와 대등한 능력을 지닌 설정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이어 반복되었습니다. 하지만 본드 걸이 인질로 붙잡히고 본드가 구출하는 전개 또한 어쩔 수 없이 반복됩니다. 지상의 인류를 절멸시키고 신세계를 여는 창조주가 되는 것이 목적인 악역 또한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의 공통점입니다. 소련 KGB의 수장 고골(월터 고텔 분)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이어 재등장했습니다.

007 위기일발’의 결말을 장식한 공간적 배경 베니스가 ‘007 문레이커’의 초반을 장식합니다. 베니스의 상징 산마르코 광장은 2006년 작 ‘007 카지노 로얄’에도 재등장합니다. ‘007 문레이커’에는 베니스와 남미 아마존 강에 걸쳐 두 번의 보트 추격전 장면이 삽입되는데 ‘007 죽느냐 사느냐’,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에 이어 재등장한 것입니다. 보트 추격전은 숀 코네리의 제임스 본드 영화에는 없었던 장면이지만 로저 무어 주연의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에 첫 등장한 이래 세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베니스에서 커플이 탑승한 곤돌라가 절반으로 갈라지는 장면은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의 태국 보트 추격전 장면의 재탕입니다. 본드의 곤돌라가 호버 크래프트처럼 육상으로 오르는 장면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잠수함 겸용 자동차 로터스 에스프리의 상륙 장면의 반복입니다. 어뢰를 비롯한 첨단 무기를 장착한 모터보트는 ‘007 골드핑거’의 애스턴 마틴 DB5의 보트 버전입니다.

본드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보드카와 마티니를 젓지 않고 흔들어 혼합한 특유의 칵테일을 대접받습니다. 리우 카니발 장면은 ‘007 썬더볼’의 바하마 나소 축제 장면의 반복입니다. 본드의 여성 조력자 마누엘라(에밀리 볼튼 분)는 죠스의 습격을 받지만 카니발 군중에 의해 목숨을 건집니다. 연약한 여성이 거구의 죠스에 의해 목덜미를 물어 뜯겨 죽는 장면이 제시될 경우 잔인한 정도가 심하다는 의식의 반영으로 보입니다.

본드와 굿헤드, 그리고 죠스의 리우데자네이루 케이브카 액션 장면은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의 알프스 케이블카 액션 장면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 이어 재등장한 죠스는 우주정거장에서 본드를 구출하고 두 편의 제임스 본드 영화를 통틀어 유일한 대사를 남깁니다.

본드가 드랙스의 연구소에서 원심분리기에 탑승해 G를 시험하다 창(스가 토시로 분)에 의해 죽음에 내몰리는 장면은 ‘007 썬더볼’에서 본드가 물리치료를 받다 죽음에 내몰린 장면의 확장판입니다. 클라이맥스의 우주 공간 액션은 이색적 공간의 집단 격투라는 점에서 ‘007 썬더볼’의 수중 격투 장면의 변주입니다.

본드가 리우데자네이루를 배경으로 응급차의 비좁은 내부에서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007 위기일발’’ 이래 전통이 된 열차 객실 격투의 재해석입니다.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는 엘리베이터와 여객선 객실로 공간적 배경이 변형되어 재해석된 바 있습니다. 본드가 드랙스의 숨겨진 거처에 잠입한 직후 보아뱀과 수중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면은 ‘007 썬더볼’과 ‘007 죽느냐 사느냐’의 식인상어, ‘007 두 번 산다’의 피라냐 장면의 변주입니다.

발사되는 우주왕복선의 부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기 직전 본드는 세이코 시계에서 와이어를 뽑아내 비상구를 폭발시켜 탈출합니다. 이 장면의 시계는 ‘007 위기일발’에서 스펙터의 킬러 그랜트가 사용한 교살용 시계의 변형입니다. ‘007 여왕 폐하 대작전’에는 조지 레이젠비가 연기한 본드가 자신의 사무실 책상에 기념품으로 그랜트의 시계를 보관 중인 장면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007 문레이커’에는 세이코를 비롯해 크리스찬 디오르, 세븐업, 말보로, 영국항공(british airways) 등의 간접 광고가 노골적으로 등장합니다.

설정과 서사에 궁금증 다수 남겨

리우데자네이루의 케이블카에서 만난 본드와 굿헤드는 죠스의 습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본드와 굿헤드는 권총조차 지니지 않아 고전합니다. 죠스를 손쉽게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으려는 연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본드와 굿헤드, 둘 중 한 명이라도 권총을 꺼내려다 죠스에 저지당하는 장면 연출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입니다. MI6와 CIA 요원 둘 모두 권총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은 어색합니다.

본드와 굿헤드, 드랙스 등은 우주왕복선 문레이커의 조종석에 앉아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정거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헬멧조차 착용하지 않으며 별다른 G도 받지 않습니다. 대기권을 벗어날 때의 엄청난 G를 감안하면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연출은 어색합니다.

우주정거장은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는 장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드랙스가 6기의 문레이커를 우주로 쏘아 올리지만 미소 양국이 모른다는 점입니다. 우주정거장이야 특별한 장치로 인해 존재를 숨길 수 있다 해도 6기의 우주왕복선이 발사될 때 미소가 포착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드랙스의 경호원으로 본드의 목숨을 노리는 일본인 캐릭터 창은 ‘007 골드핑거’의 한국인 캐릭터 오드잡의 변주입니다. 하지만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일본 검도의 목검을 휘두르는 창의 존재는 생뚱맞습니다. 드랙스가 일본과는 아무런 접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007 두 번 산다’에서 일본을 주요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했던 루이스 길버트의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창(Chang)’이라는 중국식 이름도 일본인 캐릭터에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오리엔탈리즘이 두드러집니다.

블루레이 본편의 한글 자막은 창을 ‘차’로 잘못 번역했습니다. 블루레이 부가 영상에서는 창 역의 스가 토시로를 소개할 때 ‘아이기도’라는 정체불명의 한글 자막을 제시합니다. ‘합기도(合気道)’의 일본어 발음 ‘あいきどう’를 그대로 옮겨 놓은 자막입니다. ‘합기도’가 옳습니다.

‘007 문레이커’의 엔딩 크레딧 말미에는 ‘007 포 유어 아이즈 온리’가 다시 한 번 후속편으로 예고됩니다.

007 살인 번호 - 제임스 본드 기념비적 첫 영화
007 위기일발 - 본격 오락영화로 발돋움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007 골드핑거 - 한국인 악역 오드잡 등장
007 썬더볼 - 본격 해양-수중 블록버스터
007 두 번 산다 - 제임스 본드, 일본서 결혼하고 유람하다
007 여왕 폐하 대작전 - 역대 가장 이질적인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숀 코네리의 마지막 제임스 본드
007 죽느냐 사느냐 - 로저 무어 매력적이나 인종차별 두드러져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 - 본드 vs 스카라만가 1:1 대결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 ‘007 두 번 산다’와 너무 닮았다

007 카지노 로얄 - 새로운 본드의 탄생
007 퀀텀 오브 솔러스 - 살이 찢기는 생생한 액션, 터프한 블록버스터
007 스카이폴 IMAX - ‘어머니’ 업보와 싸우는 본드
007 스카이폴 - 옛것과 새것, 절묘한 줄타기

[블루레이 지름] 007 50주년 기념 한정판
[사진] 007 제임스 본드 50주년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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