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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홍상수 감독의 평행세계 속 운명론 영화

※ 본 포스팅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 춘수(정재영 분)는 자신의 연출작의 상영회를 위해 수원을 방문합니다. 행궁을 관람하던 그는 화가 희정(김민희 분)과 우연히 만납니다. 희정의 작업실과 저녁 술자리를 거쳐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1부와 2부의 평행세계

길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제목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의 17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주인공 춘수와 희정의 1박 2일 여정은 수원 화성 행궁 입구에서 출발해 수원 호스텔, 행궁 복내당, 카페, 횟집, 카페 시인과 농부, 희정의 집이 위치한 골목, 그리고 이튿날 춘수의 영화가 상영되는 문화원으로 이어집니다.

우연히 만난 남녀가 술을 마시는 가운데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는 못 이기는 척 줄다리기하는 줄거리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마다 되풀이되는 외형적인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의 시퀀스가 하나의 씬으로 구성되는 롱테이크, 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뜬금없는 대사 또한 변함없습니다. 내레이션으로 시공간과 인물을 설명하는 초반도 유사합니다.

홍상수 감독의 진정한 장기인 오묘한 변주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그의 연출작치고는 긴 러닝 타임인 121분의 2부작 구성을 통해 엇비슷한 사건이 반복되지만 과정과 결과에서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1부와 2부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타이틀이 중간에 삽입되는 것을 기점으로 한 편의상 구분입니다.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 1998년 작 ‘슬라이딩 도어즈’와 유사한 구성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결과를 완전히 가르는 ‘슬라이딩 도어즈’와 달리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언행들이 누적되어 결과가 달라지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동일해 보이는 사건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위치나 움직임도 1부와 2부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홍상수 감독의 운명론?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지금’은 1부, ‘그때’는 2부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부에서 춘수는 희정의 마음을 얻기 위해 미사여구를 동원합니다. 희정의 그림에 ‘순수하다’ 찬사를 보냅니다. 신사적인 척하는 춘수는 자신이 유부남인 사실도 숨깁니다. 하지만 유부남인 사실이 들통 나 희정의 마음을 얻지 못하며 동침에도 실패합니다.

2부의 춘수는 솔직합니다. 희정의 그림에 대해 ‘자기연민’에 빠져 있으며 ‘상투적’이라고 비판합니다. 2부에만 등장하는 희정의 작업실 옥상 장면에서 춘수는 희정이 ‘귀엽다’고 속내를 드러냅니다. 희정은 춘수에게 ‘말을 함부로 한다’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춘수는 횟집 술자리에서 희정에 ‘사랑한다’면서도 자신이 유부남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사실을 고백합니다. 결과적으로 춘수는 희정과의 동침에는 실패하지만 그녀로부터 가벼운 키스를 받으며 끝까지 호의적인 감정을 유지하게 됩니다. 1부에서만 해도 옳은 것으로 보였던 노력들이 2부를 통해 틀린 것으로 드러나 제목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와 연결됩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 영화의 전형적 요소 중 하나인 남녀 간의 섹스 장면은 물론 암시조차 배제된 진귀한 작품입니다. 춘수는 섹스를 원하고 희정의 태도는 애매하지만 1부와 2부를 통틀어 두 사람은 동침에 이르지 않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춘수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희정과는 동침할 수 없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전지적 시점을 통해 홍상수 감독은 인간의 노력과 무관한 운명론에 도달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습니다.

인간은 추하다

홍상수 감독의 천재성은 엇비슷한 소재와 스타일을 반복하면서도 변주를 통해 흥미를 유발해 관객을 꾸준히 극장으로 끌어 모으는 능력에 있습니다. 즉흥 대본에 의존해 촬영하지만 완성된 영화는 엄청난 디테일을 자랑합니다. 언뜻 평범한 사건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차이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 과정은 관객이 즐기는 보물찾기, 혹은 퍼즐 맞추기라 할 수 있습니다. 정답이 따로 없기에 백인백색의 해석도 가능합니다. 일상 속에 숨겨진 기괴함에 대한 관조와 통찰은 웃음을 넘어 소름끼치는 측면마저 있습니다. 극중 등장인물에 대해 웃는 수준을 넘어 관객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은 술에 취하면 숨겨진 추한 본심을 드러내는데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는 반대로 추한 본심을 드러내기 위해 술 핑계를 대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감독, 화가와 같은 예술가조차 추한 본성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듯 발가벗겨집니다.

춘수가 술에 취해 실제로 발가벗는 장면은 1부와 2부를 통틀어 가장 큰 웃음을 유발하는 클라이맥스입니다. 술에 적당히 취했을 때부터 만취해 기행을 일삼는 연기까지 다양한 단계의 정재영의 취객 연기는 압도적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처음으로 출연한 김민희는 과거의 짜증스런 공주 캐릭터에서 완전히 탈피해 차분한 발성의 사실적 캐릭터를 연기합니다. 김민희가 연기한 희정은 ‘(나는) 친구가 없다’고 고민을 털어놓지만 ‘만나는 남자는 있다’는 대사와 곧바로 수영 일행을 만나는 전개가 제시되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외로움을 호소해 춘수의 마음을 얻으려는 듯 보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전작 ‘자유의 언덕’에서 카세 료가 분한 모리의 사랑 권으로 출연했던 서영화는 머리 모양을 바꾸고 안경을 착용해 영실로 출연하는데 뇌리에 새겨지는 낭랑한 목소리는 여전합니다.

시간적 배경은 한겨울이지만 배경 음악은 가곡 ‘봄이 오면’의 연주곡인 것도 역설적입니다. 2부에서 희정의 집밖에서 그녀가 다시 나와 동침하기를 춘수가 기다리는 장면에는 한기마저 느껴집니다. ‘춘수’의 이름의 ‘춘’은 ‘봄 춘(春)’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습니다.

1부와 2부, 춘수와 희정의 관계 차이

1부와 2부의 디테일 차이는 선명합니다. 1부에서 희정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담배를 피우지만 2부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춘수의 흡연도 막습니다. 따라서 2부에는 작업실 옥상의 춘수의 흡연 장면이 삽입되었습니다. 1부에서 희정은 자신이 모델로 일했던 과거를 춘수에 말하지만 2부에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1부에서 춘수는 술자리에서 반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희정에 대한 호감을 우회적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2부의 춘수는 사랑을 고백하고 횟집 앞에서 습득한 반지를 끼워주며 두 사람이 결혼했다고 수작을 부립니다. 1부에서 둘은 시인과 농부를 끝으로 각자의 길을 가지만 2부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시인과 농부를 빠져나옵니다. 만일 희정의 어머니 덕수(윤여정 분)의 귀가 독촉 전화가 아니었다면 두 사람은 홍상수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이 그러하듯 허름한 여관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부에서 희정은 춘수의 영화에 별다른 관심을 표하지 않습니다. 대신 춘수의 영화를 좋아하는 영실이 자신의 시집에 친필 편지를 써 춘수에 선물합니다. 2부에서는 희정이 춘수가 상경하기 전 문화원을 찾아 춘수의 영화를 관람합니다. 희정은 춘수에게 그의 영화를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 약속합니다. 춘수의 영화를 관람하고 문화원을 떠나는 희정의 뒷모습이 함박눈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숙취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산뜻합니다.

주변 인물들, 1부와 2부 차이점

1부에서 춘수는 자신의 영화 연출부를 지망하는 보라(고아성 분)의 썰매를 끌어주며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춘수는 보라에 호감을 느끼지만 조심하자고 다짐합니다. 1부 결말에서 보라는 춘수를 포옹하며 친밀감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2부에는 춘수와 보라의 썰매 장면이 없습니다. 춘수는 보라에 호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2부의 결말에는 포옹 장면도 없어 두 사람의 관계는 1부에 비해 소원합니다.

시인과 농부 장면에서 1부에서는 수영(최화정 분)과 영실이 춘수가 바람둥이 유부남인지 집요하게 추궁합니다. 그들은 춘수가 늘 반복하는 달콤한 말로 희정을 유혹했다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이 자리에는 희정은 물론 중년 남성 원호(기주봉 분)도 동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부에서 수영은 ‘춘수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반듯하다’며 긍정적 태도를 취합니다. 춘수는 그들 앞에서 옷을 벗으며 심한 주정을 부리지만 희정의 대사를 통해 수영이 춘수를 용서했음이 드러납니다. 2부의 시인과 농부 술자리 장면에는 희정과 원호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춘수와 영화평론가 성국(유준상)의 관계는 정반대입니다. 1부에서 희정과의 동침에 실패한 춘수는 욕구불만 때문인지 이튿날 성국이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립니다. 문화원 밖으로 나온 춘수는 성국의 부름을 거부하고 상경합니다. 반면 2부에서 춘수는 성국과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며 화기애애합니다. 전날 술자리에서 그가 언급한대로 희정과의 관계에서 ‘할 만큼 했다’고 만족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엑스트라에 불과하지만 1부 초반에는 복내당에서 남녀 커플이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2부 초반에는 여성 3인이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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