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제의 애니와 영화 이야기

tomino.egloos.com

포토로그


메모장

KBReport 프로야구 필자/다음카카오 콘텐츠뷰/KBO 야매카툰

LG 트윈스 야구 전 경기 아프리카 생중계 http://afreecatv.com/tomino

사진, 글, 동영상 펌 금지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저작권은 해당 영화사에서 있습니다.

반말, 욕설, 비아냥, 협박 등의 악성 댓글은 삭제합니다. 비로그인 IP로 댓글 작성은 가능하지만 동일 IP로 닉네임을 여러 개 사용하는 '멀티 행위' 시 역시 삭제합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 오즈 야스지로가 연출한 ‘비포 선라이즈’ 같다 영화

※ 본 포스팅은 ‘한여름의 판타지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 태훈(임형국 분)은 영화를 구상하기 위해 통역을 맡은 미정(김새벽 분)과 함께 일본의 고조를 방문합니다. 태훈은 도쿄 출신의 지방공무원 유스케(이와세 료 분), 토박이 겐지(강수안 분)와 함께 이곳저곳을 노닙니다.

2부작 구성, 픽션 속의 픽션

장건재 감독이 각본, 제작, 연출을 맡은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이촌향도로 인해 공동화된 일본 나라현의 소읍의 한여름을 배경으로 합니다. 흑백 영상의 1부 ‘첫사랑 요시코’, 컬러 영상의 2부 ‘벚꽃우물’로 양분되는 구성입니다. 1부 결말의 불꽃놀이 장면에서 처음 컬러 영상이 제시된 직후 2부로 넘어갑니다. 2부의 결말 또한 아름다운 불꽃놀이 장면입니다.

1부와 2부의 관계는 흥미롭습니다. 1부가 태훈의 영화 착상 과정을 포착하는 데 이어 2부는 그 결과물인 한국인 여성 혜정(김새벽 분)과 일본인 청년 유스케(이와세 료 분)의 이틀간의 짧은 로맨스를 묘사합니다. 1부가 인터뷰 등을 통해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활용하지만 실상은 픽션입니다. 따라서 1부라는 픽션이 2부라는 픽션을 끌어안는 독특한 형식의 액자 구성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1부에 초점을 맞춘다면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영화를 창작하는 이의 고뇌와 영화의 탄생 과정을 얼개로 볼 수 있습니다. 태훈이 유스케로부터 들은 한국인 여성과의 만남, 겐지로부터 들은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 요시코에 대한 회고, 그리고 숙소 주변을 밤에 산책할 때 조우한 자전거 탄 여성이 합쳐진 결과물이 2부 ‘벚꽃우물’입니다. 1부 결말의 불꽃놀이 장면은 2부 결말의 불꽃놀이 장면과 연결됩니다.

1부와 2부의 주연은 겹칩니다. 김새벽이 1부의 미정에 이어 2부의 혜정을, 이와세 료가 1부의 공무원 유스케에 이어 2부의 농부 유스케를 연기합니다. 동일한 배우들이 1부와 2부에서 다른 배역을 맡은 것은 마치 1부의 태훈이 미정과 공무원 유스케를 캐스팅해 2부 영화를 촬영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남깁니다.

전반적으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배우들의 클로즈업도 제한적입니다. 1부에서 태훈, 유스케, 겐지는 물론 시노하라의 노파도 얼굴 클로즈업이 제시되지만 미정만큼은 클로즈업을 아낍니다. 2부에서 동일한 배우가 여주인공 혜정을 연기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낀 것으로 보입니다.

정교한 퍼즐

‘한여름의 판타지아’는 결코 대중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공백이 많은 백지와 같은 드라마로 보입니다. 하지만 1부와 2부를 재조합하면 상당히 정교한 퍼즐임을 알 수 있습니다.

1부에서 도쿄에서 배우로서 연기를 시도했던 유스케의 과거는 2부의 혜정의 직업 배우로 연결됩니다. 1부에서 태훈이 노파의 손을 잡는 장면은 2부에서 유스케가 작별 직전 혜정의 손을 잡고 키스하는 장면으로 연결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1부 폐교 장면에서 겐지는 복도에 붙은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에 주목하며 요시코를 추억합니다. 태훈은 교실에서 실로폰을 연주하다 요시코와 만나는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태훈이 자신을 겐지에 대입한 것입니다. 이 장면은 2부의 혜정과 유스케가 폐교를 방문한 장면으로 연결됩니다. 유스케가 복도의 사진에 아버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술회합니다. 겐지가 유스케의 아버지의 모티브가 된 것입니다. 1부에서 태훈이 연주한 실로폰을 혜정과 유스케가 합주합니다.

오즈 야스지로와 ‘비포 선라이즈’

거의 내내 고정적인 카메라가 움직이는, 두 개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첫째, 2부에서 혜정과 유스케가 고조 역에서 신마치로 함께 걸어 나올 때의 트래킹 숏입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의 관계가 친밀하게 발전할 것을 암시합니다. 둘째, 다음날 아침 혜정과 유스케가 카페에서 만날 때 혜정의 얼굴에서 유스케의 얼굴로 카메라가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혜정의 마음이 유스케에게 전달되는 듯한 감각을 전합니다.

2부가 여정에서 비롯된 남녀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점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비롯한 비포 삼부작에 비견되는데 상황만 놓고 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와도 유사점이 있습니다. 1부까지 감안하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를 연상시킵니다. 출연 배우들의 외모가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대사는 일상적이며 정서도 담담합니다. 카메라의 움직임 또한 보수적입니다.

수채화와 같은 영상을 감싸는 이민휘의 몽환적 음악도 훌륭합니다. 특히 혜정과 유스케의 두 번째 날 저녁 술자리의 배경 음악이 인상적입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영화의 긴 여운을 남기는 데 일조합니다.

http://twitter.com/tominodije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