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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두 번 산다 - 제임스 본드, 일본서 결혼하고 유람하다 영화

※ 본 포스팅은 ‘007 두 번 산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로켓이 우주에서 의문의 거대 로켓에 의해 납치됩니다. 미국 정부는 소련을 의심하지만 소련 정부는 부인합니다. 거대 로켓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영국 정부는 007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 분)가 홍콩에서 사망한 것으로 자작극을 꾸민 뒤 그를 일본에 파견합니다.

시리즈 사상 최초로 우주 제시

루이스 길버트 감독이 연출한 ‘007 두 번 산다’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 다섯 번째 영화입니다. ‘007 살인 번호’부터 ‘007 썬더볼’까지 4편의 제임스 본드 시리즈 영화들이 1년 간격으로 개봉되었지만 ‘007 두 번 산다’는 전작 ‘007 썬더볼’로부터 햇수로 2년 뒤인 1967년에 개봉되었습니다.

‘007 두 번 산다’는 시리즈 사상 최초로 우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제시합니다. Q와 악역들의 기발한 무기를 통해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SF 판타지의 요소를 갖춰왔는데 ‘007 두 번 산다’는 SF의 전형적 공간인 우주로 지평을 넓혔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경쟁이라는 당시의 시대상을 본격 반영한 것입니다.

카고시마의 화산 속에 숨겨진 스펙터의 우주선 발사 기지의 대형 세트는 영국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 제작되었는데 5년 전 ‘007 살인 번호’의 제작비에 필적하는 1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습니다. 기지 내부에 실제 작동되는 모노레일까지 갖추고 있어 ‘007 두 번 산다’의 엄청난 물량 공세를 실감케 합니다. 클라이맥스의 대미를 장식하는 기지 폭파 장면의 스케일도 큽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선을 납치하는 스펙터의 대형 습격 로켓은 ‘007 두 번 산다’의 개봉으로부터 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구현되지 못한 수직이착륙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정교한 CG에 길들여져 있는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로켓이 등장하는 장면의 특수 효과는 매우 어색하고 조악해 귀엽기까지 합니다.

제임스 본드는 우주로 나가려다 실패해 지구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서두에 죽음을 위장하는 장면에서 해군 장교임이 부각되는 본드는 ‘꼬마 넬리’로 불리는 1인용 헬기 자이로콥터도 능수능란하게 조종하지만 우주 비행사 훈련은 받지 않았음이 드러납니다.

스펙터 1호의 첫 등장

‘007 두 번 산다’에서 본드 시리즈 사상 역시 처음으로 제시되는 공간적 배경은 홍콩과 일본, 즉 아시아입니다. 서두에서 본드는 홍콩에서 여자와 동침하다 살해된 것처럼 위장됩니다. 스펙터를 속인 채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서입니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스펙터의 1호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트(도날드 플레전스 분)는 즉은 줄 알았던 본드가 면전에 나타나자 “당신은 (한 번 죽었다 살아났지만) 두 번까지만 살 수 있다”며 본드에 죽음을 선고합니다. 스펙터의 이 대사가 원제 ‘You Only Live Twice’에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제목의 ‘두 번 산다’의 유래가 된 대사의 정확한 의미는 ‘두 번이나 살았다’가 아니라 ‘세 번은 살 수 없다’, 즉 ‘더 이상은 살 수 없다’에 가깝습니다.

블로펠트는 그의 상징인 하얀 고양이와 함께 등장하는데 기지 내부가 폭발하는 장면에서 고양이가 놀라는 모습이 카메라에 여과 없이 담겼습니다. 아무래도 인간과 달리 고양이가 놀라움을 숨기는 ‘연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작진은 폭발에 놀라 도망친 고양이를 찾는 데 이틀이 걸렸다고 합니다.

스펙터 11호 헬가 브랜트(카린 도르 분)는 블로펠트가 키우는 피라냐의 먹잇감이 됩니다. ‘007 썬더볼’에서 라르고가 키우는 식인상어에 그의 부하가 희생된 연출의 재탕입니다.

세계 평화의 수호자, 영국 정부

서두의 본드의 죽음은 ‘007 위기일발’에도 묘사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시퀀스의 끝에서 사망자가 본드가 아니라는 반전이 제시되는 ‘007 위기일발’과 달리 ‘007 두 번 산다’에서는 해당 시퀀스가 종료되고 타이틀 시퀀스가 삽입된 이후에야 본드의 죽음이 위장임이 드러납니다. 관객을 보다 오랫동안 긴장시키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는 연출입니다.

M(버나드 리 분)과 머니페니(로이스 맥스웰 분)는 영국 런던의 MI6 사무실이 아니라 영국 해군의 잠수함에 탑승해 아시아로 파견되어 본드와 조우합니다. 영국 정부는 미국과 소련 사이를 중재하며 거악 스펙터에 맞서는 사려 깊은 세계 평화 수호자를 자처합니다.

본드가 ‘아버지’라 부르는 Q(데스먼드 르웰린 분)는 일본 현지로 파견되어 본드에게 ‘꼬마 넬리’라 부르는 1인승 전투 헬기를 전달합니다. 4개의 대형 가방 안에 수납된 부품만으로 조립이 가능하다는 설정입니다. 본드는 꼬마 넬리에 탑승해 스펙터의 헬기 4기를 격추합니다.

주된 공간적 배경, 일본

타이틀 시퀀스는 매우 일본적입니다. 왜냐하면 본드가 스펙터의 우주선 기지가 소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일본에 파견된 초반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공간적 배경은 내내 일본에 국한되기 때문입니다.

본드는 일본 정부의 정보부 수장 타이거 타나카(탐바 테츠로 분), 여성 요원 아키(와카바야시 아키코 분)의 도움을 받으며 도쿄와 고베, 효고의 히메지성, 그리고 카고시마의 키리시마 화산과 미나미사츠마의 작은 마을 아키메 등 일본 열도를 질주합니다. 일본도, 기모노, 사케, 젓가락, 스모, 산요의 TV 박스, 네온사인, 도쿄 타워, 도쿄 만, 긴자, 뉴 오타니 호텔 등 온갖 일본적인 소품과 공간들이 등장합니다. 타이거는 도쿄에 전용 지하철과 지하에 숨겨진 비밀 집무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화적인 설정입니다.

아키는 토요타의 오픈카 2000GT에 탑승해 본드를 구출합니다. 일본이 생산한 차량이 본드 카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는 2000GT의 대시보드에는 소니의 모니터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전후해 고도 성장기를 누리던 일본을 서양 관객들을 위한 눈요깃거리로서 제시합니다. 블루레이의 깨끗한 화질로 복원된 50년 전 일본의 풍경은 현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 기묘함을 자아냅니다.

철저한 오리엔탈리즘도 노출됩니다. 타이거의 대사를 통해 일본은 남존여비의 나라로 규정됩니다. 일본 여성의 남성에 대한 순종적 태도도 강조됩니다. 타이거가 히메지성에서 대규모의 닌자 부대를 비밀리에 양성해왔다는 설정은 실소를 유발합니다.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닌자 대부대는 스펙터에 맞서 일본도를 휘두르고 수리검을 던집니다. 본드도 닌자 수업을 받으며 클라이맥스에서 닌자의 수리검을 활용합니다. 서양의 관객들 중에는 닌자가 20세기 중반에도 실존하는 것으로 여긴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 여성 외모 비하

아키가 본드와의 동침 도중 스펙터의 자객에 의해 독살되자 본드는 새로운 여성 요원 키시(하마 미에 분)와 짝을 이룹니다. 단순히 파트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 혼례를 올려 부부로 위장합니다. 본드 시리즈에서 본드의 결혼 장면이 처음 제시된 것입니다. 본드는 아키의 죽음에 그다지 슬퍼하는 기색도 없이 키시에 빠져듭니다. 본드가 기존의 본드 걸의 사망에 개의치 않고 새로운 본드 걸에 빠져드는 전개는 전형적입니다. ‘007 골드핑거’에서 질과 틸리 자매의 연이은 죽음에 개의치 않고 본드가 푸시에 빠져든 전개와 마찬가지입니다.

타이거는 키시의 외모가 돼지와 같다고 그녀가 등장하기 전부터 비하합니다. 키시를 연기한 배우 하마 미에의 이국적 외모에 대한 평가일 수 있으나 도에 지나칩니다. ‘007 두 번 살다’가 20세기 후반에만 개봉되었어도 논란이 되기에 충분한 여성의 외모에 대한 비하입니다. 그것도 서양의 오락 영화에 등장한 아시아 여성이기에 더욱 심각하게 들리는 대사입니다.

적을 비롯해 숱한 본드 걸과 섹스를 나누는 본드이지만 결혼식을 올린 상대인 키시와는 섹스하지 않는 것도 흥미로운 연출입니다. 키시가 섹스를 거부하자 본드도 강요하지 못합니다.

‘007 두 번 산다’는 온갖 일본적인 요소들을 오리엔탈리즘에 입각해 서양 관객들에 제시하기 위한 의도가 지나치게 부각되어 서사의 짜임새와 액션의 재미는 떨어지는 편입니다. 본드의 신분 위장을 위함이지만 결혼 장면에 러닝 타임을 할애해 미국과 소련의 세계대전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한가하게 보여 긴박감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숀 코네리는 얼굴에 시술까지 받고 구부정한 자세로 키가 작아보이도록 하며 간단한 일본어 대사를 소화해 일본인을 가장하지만 외모와 체구 모두 전혀 일본인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백인 남성이 일본에서 벌이는 일대 모험을 묘사한 오락 영화라는 점에서 ‘007 두 번 산다’는 1989년 작 ‘블랙 레인’과 2013년 작 ‘더 울버린’에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영웅적인 주인공이 일본 현지 여성과 사랑에 빠지며 한가하게 일본을 유람한다는 점에서 ‘007 두 번 산다’와 ‘더 울버린’은 상당히 닮았습니다. 본드가 일본 정부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007 두 번 산다’의 일본 현지 로케이션은 일본의 대형 영화사 토호의 협조 하에 이루어졌습니다.

‘007 두 번 산다’의 촬영 도중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과 팬의 지나친 관심, 바쁜 스케줄로 인한 사생활 실종에 지친 숀 코네리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로부터 하차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007 두 번 산다’의 엔딩 크레딧에서는 후속작 ‘007 여왕 폐하 대작전’을 예고합니다.

‘007 두 번 산다’의 블루레이에는 ‘일본해’로 표기된 한글 자막이 눈에 띕니다. ‘동해’가 옳습니다.

007 살인 번호 - 제임스 본드 기념비적 첫 영화
007 위기일발 - 본격 오락영화로 발돋움한 시리즈 두 번째 작품
007 골드핑거 - 한국인 악역 오드잡 등장
007 썬더볼 - 본격 해양-수중 블록버스터

007 카지노 로얄 - 새로운 본드의 탄생
007 퀀텀 오브 솔러스 - 살이 찢기는 생생한 액션, 터프한 블록버스터
007 스카이폴 IMAX - ‘어머니’ 업보와 싸우는 본드
007 스카이폴 - 옛것과 새것, 절묘한 줄타기

[블루레이 지름] 007 50주년 기념 한정판
[사진] 007 제임스 본드 50주년 특별전

http://twitter.com/tominodijeh

덧글

  • 포스21 2015/08/27 10:58 #

    흥미롭군요. 과연 50년전 일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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